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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녀 민정 “나를 위해 7번 이사, 세상 최고의 엄마”

평창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2개 딴 최민정(오른쪽)이 든든한 지원을 해준 어머니 이재순씨와 손 하트를 만들며 활짝 웃고 있다. [우상조 기자]

평창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2개 딴 최민정(오른쪽)이 든든한 지원을 해준 어머니 이재순씨와 손 하트를 만들며 활짝 웃고 있다. [우상조 기자]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의 유일한 2관왕, 여자 쇼트트랙 에이스 최민정(20·성남시청)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 있었다. 옆에 있던 어머니 이재순(54)씨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을 바라봤다.
 
지난 24일 강원도 평창군 용평리조트 P&G 하우스에서 최민정과 그의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 이씨는 “22일 1000m 경기를 마친 직후부터 감기몸살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 왼쪽 다리에는 보조기를 차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민정은 “1년에 한 번 정도 감기에 걸린다. 다행히 올림픽 경기 일정이 다 끝나고 감기가 왔다”며 “다리도 큰 부상이 아니라 다행이다. 며칠 푹 쉬면 낫는다고 한다. 이 정도는 부상 축에도 못 낀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갓 스무살이 된 최민정은 백 년은 살았던 사람처럼 초연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이씨 눈가는 더욱 촉촉해졌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이씨는 틈날 때마다 절을 찾아 기도했다. 바람은 ‘딸이 무사히 올림픽 마치게 해달라’는 것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첫 경기였던 500m부터 일이 생겼다. 2위로 들어오고도 비디오 판독 끝에 실격당했다. 스케이트를 처음 신었던 6살 때부터 최민정은 전국대회를 휩쓸며 ‘신동’ 소리를 들었다. 국제대회에서도 승승장구하며 실패를 겪은 일이 없다. 그런 최민정에게 자국에서 열린 올림픽 무대에서 가장 큰 시련이 찾아왔다. 이씨 마음도 철렁했다. 정신적으로 흔들려서 마음고생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때 최민정에게 힘이 되어준 게 어머니 이씨가 보내준 손글씨 편지였다. 최민정은 “엄마가 올림픽 개막 전에 선수촌으로 편지를 보내줬다. 그 편지를 반복해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얽매이지 말고 즐기기만 하라’던 엄마의 당부가 기억난다”고 말했다.
 
3000m 계주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뒤 주먹을 쥔 최민정. [연합뉴스]

3000m 계주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뒤 주먹을 쥔 최민정. [연합뉴스]

이씨는 자녀를 엄하게 훈육하는 ‘호랑이 엄마’가 아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인생을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치어리더 엄마’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 경제적 지원은 풍족하지 못했다. 이씨는 다른 부분에서 이를 메워주려 노력했다. 최민정은 코치가 링크를 옮길 때마다 따라서 짐을 쌌다. 그렇게 7번이나 이사를 했다. 이씨는 최민정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10년간 25만㎞를 달렸다. 이씨는 “민정이는 늘 부지런했다. 새벽 운동을 가야 할 때도 깨운 적이 없다.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아이”라며 웃었다.
 
엄마의 헌신을 최민정도 잘 알고 있었다. 어버이날이나 생신 때는 모아뒀던 용돈으로 꼭 선물을 사서 집에 갔다. 합숙으로 기념일에 함께 하지 못할 때는 택배라도 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로 ‘최고 어머니상’ 상패를 꼽은 이씨는 “중학생이었는데 그런 선물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속 깊은 아이”라고 했다. 이 상패는 최민정이 그동안 땄던 100여 개의 메달과 함께 진열장에 보관돼 있다.
 
이제 진열장 속 최고 자리는 ‘올림픽 금메달’이 차지할 것 같다. 이씨는 최민정에게 “민정아, 엄마도 아직 (메달을) 못 봤네. 올림픽 금메달은 어떻게 생긴 거니”라고 물었다. 최민정은 “엄마, 내가 받은 그 어떤 금메달보다 크고 무거워. 심지어 보관 상자까지 귀해 보여. 세상에서 제일 기쁜 금메달이야”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야 최민정은 힘든 몸을 추스르면서 배시시 웃었다. 최민정은 정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에서 2억1825만원의 포상금을 받는다.
 
1500m에서 금메달 을 딴 최민정이 동메달리스트 킴 부탱(캐나다)과 하트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 [우상조 기자]

1500m에서 금메달 을 딴 최민정이 동메달리스트 킴 부탱(캐나다)과 하트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 [우상조 기자]

최민정은 1500m 메달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딴 킴 부탱(캐나다)과 손 하트를 만들어 화제가 됐다. 최민정과 이씨에게 같은 손 하트를 부탁했다. 처음 해보는 이씨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최민정이 “엄마, 손가락에 조금 힘을 빼고 이렇게 만드는 거야. 어때, 예쁘지”라고 세심하게 설명했다.
 
최민정은 20대 초반의 또래와 달리 연예인에게 관심이 없다. 심지어 폐회식에 출연했던 남성그룹 ‘엑소’ 멤버 이름조차 하나도 모른다. 유일한 취미이자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독서다. 최근 마크 맨슨이 쓴 ‘신경 끄기의 기술’을 읽었다. 덕분일까. 올림픽을 치르면서 벌어졌던 수많은 일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책을 통해 마음을 내려놓는 법,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최민정은 “책을 읽다 보면 피로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알고 보면 최민정의 독서 습관도 어머니 이씨 덕분에 생겼다. 이씨는 “어릴 때부터 민정이한테 ‘공부해라, 훈련 열심히 해라’ 같은 얘기는 안 했다. 다만 ‘책을 많이 읽으라’고 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독서 습관을 어학 공부로 이어간 최민정은 한동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이젠 중국어에 도전하겠다고 귀띔했다. 최민정의 시선은 벌써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향하는 듯했다.
 
평창=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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