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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대표가 방으로 부르더니…" 전북 연극계도 '미투운동'

"단원들과 선배들에게 도와 달라고 말했지만 '강간을 당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며 그들은 침묵했습니다."
전북 지역에서도 여성 연극배우가 극단 대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국내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전북까지 불붙은 것이다. 해당 여배우는 당시 극단 동료들에게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모두 외면했다며 눈물을 쏟았다.  

12년차 배우 송원씨, 실명 폭로
극단 '명태' 최경성 전 대표 지목
8년 전 대천 MT서 "성추행 당해"
최 대표도 사실 인정…"사죄한다"

8년 전 극단 '명태' 대표였던 최경성(50)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연극 배우 송원(31·여)씨. 오른쪽은 송씨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함께 나온 권지인 연극 연출가. 전주=김준희 기자

8년 전 극단 '명태' 대표였던 최경성(50)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연극 배우 송원(31·여)씨. 오른쪽은 송씨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함께 나온 권지인 연극 연출가. 전주=김준희 기자

 
26일 오후 1시 30분 전북경찰청 기자실. 본인을 '전주연극협회 소속 12년 차 배우'라고 소개한 송원(31·여)씨는 "저는 8년 전 극단 '명태' 대표 최경성(50)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다. 전북 지역 첫 '미투 운동' 사례다.  
 
8년 전 극단 '명태' 대표였던 최경성(50)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연극 배우 송원(31·여)씨. 오른쪽은 송씨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함께 나온 권지인 연극 연출가. 전주=김준희 기자

8년 전 극단 '명태' 대표였던 최경성(50)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연극 배우 송원(31·여)씨. 오른쪽은 송씨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함께 나온 권지인 연극 연출가. 전주=김준희 기자

가해자로 지목된 최씨는 1997년 극단 '명태'를 창단한 유명 연출가다. 지난 2015년 극단 대표에서 물러난 뒤 현재는 전주시 우아문화의집 관장을 맡고 있다. 송씨는 "(최근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최씨가 성화 봉송을 했다는 기사를 보고 폭로를 결심했다"고 했다. "저와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그분(최씨)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에 지역사회 현실이 너무 냉혹하고 암담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송씨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10년 1월 15일 충남 대천의 한 모텔에서 최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극단 '명태'가 단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만든 전북 지역 모 대학 뮤지컬 동아리 MT(야유회)에서였다. 2006년 12월 극단에 입단한 송씨는 당시 스물세 살이었다.
 
8년 전 극단 '명태' 대표였던 최경성(50)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연극 배우 송원(31·여)씨. 오른쪽은 송씨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함께 나온 권지인 연극 연출가. 전주=김준희 기자

8년 전 극단 '명태' 대표였던 최경성(50)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연극 배우 송원(31·여)씨. 오른쪽은 송씨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함께 나온 권지인 연극 연출가. 전주=김준희 기자

최씨는 그날 MT 행사를 마치고 '극단의 앞날에 관해 얘기하자'며 송씨를 모텔로 억지로 데려 갔다고 한다. 단둘이 횟집에서 저녁을 먹은 직후였다. 송씨가 거절했지만 최씨는 '무슨 상상을 하는 거냐'며 외려 타박했다고 한다. 휴대전화 문자로 도움을 요청한 남자 단원이 최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소용없었다.
 
모텔에 송씨를 끌고 간 최씨는 침대 옆자리를 두드리며 '자는 모습만 쳐다볼 테니 옆에 누워서 자라'고 했다. 또 송씨의 귓불을 만지며 '네 태도가 귀엽다'며 희롱했다. 최씨는 송씨가 머뭇거리자 '동아리 학생들에게 사우나에서 잤다고 해야 한다'며 샤워를 강요했다고 한다. 그리고 머리만 감고 나온 송씨의 머리를 말려주겠다며 송씨의 몸을 더듬었다.   
 
8년 전 극단 '명태' 대표였던 최경성(50)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연극 배우 송원(31·여)씨. 오른쪽은 송씨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함께 나온 권지인 연극 연출가. 전주=김준희 기자

8년 전 극단 '명태' 대표였던 최경성(50)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연극 배우 송원(31·여)씨. 오른쪽은 송씨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함께 나온 권지인 연극 연출가. 전주=김준희 기자

최씨는 본인 얼굴을 송씨 얼굴 앞에 갖다 대며 유혹했지만 송씨가 완강히 거부해 성폭행은 피했다고 한다. 송씨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 공포였다"며 "최씨가 잠들 때까지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버텼다"고 회상했다.
 
앞서 최씨는 당시 전주에서 대천까지 이동하는 동안에도 본인 승용차 조수석에 탄 송씨의 허벅지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다고 한다. 대화도 '너와 단둘이 여행 가는 기분이다' '나에게 시집 오면 잘해주겠다' 등 불쾌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고 송씨는 주장했다.  
 
미투 운동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미투 운동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송씨의 악몽은 MT 이후 극단 동료들에 의해 재현됐다. 단원들에게 최씨의 성추행 사실을 알리며 도와 달라고 호소했지만 모두 침묵했다고 한다. 충격을 받은 송씨는 집안 사정을 핑계로 극단을 탈퇴했다. 하지만 최씨는 단원들에게 '송씨가 남자관계가 복잡해서 극단에서 내쫓았다'는 거짓말로 송씨를 매도했다고 한다. 4년 넘게 해당 극단에서 8개의 작품에 배우와 스태프로 참여하며 연기자의 꿈을 키워 온 '초보 배우'의 몸과 맘이 극단 대표의 성추행과 동료들의 외면으로 무너진 것이다.  

 
송씨에 따르면 최씨는 MT를 가기 전에도 송씨에게 이성 교제 문제 등을 상의하는 등 '이상 징후'를 보였다. 새벽에도 수시로 '술을 마시자'며 송씨 집과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까지 찾아 왔다고 한다. 송씨는 "당시엔 대표님(최씨)의 연락을 피하는 것은 건방진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묵묵히 들었다"고 했다.    
  
미투 운동. [연합뉴스]

미투 운동. [연합뉴스]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송씨는 "최씨는 권력을 이용해 상황을 모면하고 외려 제 인격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악의적인 소문을 내는 등 지금까지 아무 반성도 하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최씨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 여성이 3명은 더 있다"고 폭로했다. 이날 송씨와 함께 기자실을 찾은 권지인 프리랜서 연출가(여)는 "후배인 서씨가 경찰에 최씨를 고소하려 했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고소장 접수를 거부당했다"고 전했다.
 
당시 충격으로 송씨는 한동안 연극계를 떠나야 했다. 가족과 지인의 도움으로 1년 반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는 송씨는 "당연히 받아야 할 사과를 요구하는 것에 이토록 많은 용기와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현실에 눈물이 난다"며 "저 외에 또 다른 피해자들을 숨게 만들어 버린 지역사회 내 그릇된 조직의 권력과 폐쇄성이 높은 벽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제 발언이 연극계의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이 지난 22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스토킹·데이트폭력 피해 방지 종합대책'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히고 있다. [뉴스1]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이 지난 22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스토킹·데이트폭력 피해 방지 종합대책'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히고 있다. [뉴스1]

이날 송씨 주장에 대해 최씨는 "저로 인해 상처받은 분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 변명하지 않겠다"며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그 일을 가볍게 생각했던 저의 무지를 후회하고 반성한다. 당사자에게 직접 사과를 구하겠다.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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