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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성범죄 비난하는 당신도 성범죄자일 수 있습니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연극배우 이모씨는 지난 22일 트위터에 '배우 이○○입니다…저는 그 이윤택 연출가의 딸이 아닙니다. 본의 아니게 동명이인이라 오해의 댓글로 마음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부디 잘못된 정보로 인한 오해 없으시길 부탁드립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대통령 지인인 연극계 원로가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업고 저지른 추악한 성폭력 사건이 피해자의 폭로로 밝혀진 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작 가해 당사자가 아니라 범죄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딸(심지어 진짜 딸도 아닌 동명이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몰려가 댓글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이윤택 연출가 딸과 동명이인인 한 배우가 고통을 호소하며 트위터에 올린 글. [트위터 캡처]

이윤택 연출가 딸과 동명이인인 한 배우가 고통을 호소하며 트위터에 올린 글. [트위터 캡처]

이씨 뿐만이 아니다. 배우 조민기의 성폭력 사건이 불거지자 사람들은 미국 유학중인 딸의 인스타그램에까지 달려가 악플을 달았다. 그래서인지 뒤이어 조재현 관련 의혹이 터지자마자 배우인 그의 딸은 인스타 계정의 댓글 기능을 아예 해제해 버렸다. 물론 이들이 아버지와 같은 영역에서 일을 하고 있거나 동반 TV 출연 등으로 대중에 얼굴이 알려졌다고는 하나 아버지 잘못에 대한 죄값을 대신 치뤄야할 아무런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자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이유로 역시 여자인 딸이나 아내를 모욕하고 망신주지 못해 안달이다. 이런 사건이 벌어졌을 때 아들을 걸고 넘어가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사실 이번만이 아니다. 주류 남성 기득권 권력이 성과 관련한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화살은 이렇게 남자 본인뿐 아니라 남자의 아내나 딸에게로 향한다. 2017년초 표창원 의원이 당시 박근혜 대통령 누드를 그린 '더러운 잠'을 국회에 전시하며 문제를 일으켰을 때도 그랬다. 표 의원의 여성혐오(여혐) 행위를 비난하겠다며 '표 의원 집 앞에서 딸 누드 사진 전시회를 하겠다'는 식으로 이 일과 무관한 딸을 모욕했다. 
2017년 2월 새누리당 전국여성의원협의회가 국회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사건과 무관한 아내를 모욕하는 문구를 담았다. [뉴시스]

2017년 2월 새누리당 전국여성의원협의회가 국회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사건과 무관한 아내를 모욕하는 문구를 담았다. [뉴시스]

2차 피해가 성범죄의 직접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의 여성 가족에게도 일어나는 셈이다. 이○○배우가 간절하게 호소한 포스팅에도 '딸X은 누군가? 대를 이어 망신을 주어야 하는데'라는 류의 댓글이 붙는다. 심지어 당사자를 향해 직접 비난할 때조차 '피해자 아빠한테 네 딸 줘라'라거나 '네 딸이 당해봐야 고통을 안다'는 식으로 댓글을 달며 아무 상관없는 가족을 성적으로 모욕한다. 
왜 잘못은 남자가 저지르고 비난은 여자가 받아야 하나. 서지현 검사로부터 촉발한 미투운동이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우리 사회를 바꾸는 긍정적 계기로 향해야할 판에 때마침 누군가를 욕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 분출구 정도로만 소비되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만약 정말 몰라서 그런 거라면 이참에 제대로 배울 필요가 있다. 성범죄자의 딸이나 아내를 욕보이는 댓글도 성폭력이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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