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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방남 막으려다 허탕 친 천안함 유족들 "정부가 유족 보듬어야"

이성우 천안함 유족회장이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면담을 촉구하며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오원석 기자

이성우 천안함 유족회장이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면담을 촉구하며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오원석 기자

"김영철은 군사도로로 들어왔대요."

 
25일 정오 경기도 일산의 한 식당. 천안함 유족 40여명이 식사를 하던 중 누군가 풀 죽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누군가 "북한 사람들은 거기로 다니고 우리는 못들어가고, 이게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새나왔다. 이들은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 폐막식에 천암함 사건 배후로 알려진 김영철 부위원장을 보낸다는 소식을 듣고 전날 부랴부랴 전국 각지에서 올라왔다. 
 
그러나 김영철 일행의 방남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경기도 일산의 한 모텔에서 밤을 보내고 이날 새벽같이 북한대표단이 건널 것으로 예상되는 통일대교를 찾았지만 허탕을 쳤다. 김 부위원장을 포함한 북한대표단은 이날 오전 9시53분쯤 출입사무소에 도착, 자유한국당과 유족들이 농성 중인 통일대교 대신 인근 전진대교로 우회했다.
 
북한대표단이 빠져나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유족들의 의견은 '평창으로 가자'와 '청와대로 가자'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지만 이내 '평창에 무작정 가서 김영철을 만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청와대행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전날 청와대에 전한 서한에 대해 '답변을 들어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청와대행을 정하고 유족들이 몸을 싣은 전세버스 안 공기는 냉랭했다. 버스 앞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서는 평창 겨울올림픽 소식을 전하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유족들은 누구하나 입을 떼지 않고 무거운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이따금 응시했다. 혹시나 김영철 일행에 대한 소식이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청와대로 이동 중인 천안함 유족들을 실은 전세버스의 모습. 텔레비전에서는 평청 겨울올림픽 소식이 흘러나왔지만 유족들은 김영철 방남 소식을 듣기 위해 뉴스를 켜두었다. 오원석 기자

청와대로 이동 중인 천안함 유족들을 실은 전세버스의 모습. 텔레비전에서는 평청 겨울올림픽 소식이 흘러나왔지만 유족들은 김영철 방남 소식을 듣기 위해 뉴스를 켜두었다. 오원석 기자

유족들은 청와대에 전달할 서한도 버스 안에서 작성했다. 이성우(57) 유족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청와대 상황실에서 관계자가 나온다고 한다. 관계자가 나오면 발표할 내용을 정리했는데, 들어보시고 의견 있으면 알려달라"고 안내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유족은 "서한 내용이 너무 약한 것 아니냐. 대통령을 강한 표현으로 규탄해야 한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이에 이 회장은 "우리의 아들들은 군인이었다. 아이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기본적은 도리와 예의를 다하자"고 다독였다. 
 
한시간여를 달린 버스는 오후 2시 35분쯤 청와대 앞에 도착했다. 유족들은 전날 준비한 김영철의 얼굴과 구호를 담은 피켓을 들고 버스에서 내려 청와대 분수대 앞으로 이동했다. 이성우 회장은 대표로 낭독한 서한을 통해 “천안함 폭침 주범인 김영철이 우회 도로를 통해 대한민국의 땅을 밟은 참담한 현실에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답변을 듣고자 한다”며 “어제 유족들이 전달한 서한을 읽었다면 답변을 해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이어 “‘폭침 주범이 김영철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정부 관계자의 발표는 정부가 김영철을 비호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고 정부를 규탄했다. 
 
아들 고(故) 이용상 하사를 잃은 이인옥(56)씨는 "우리 가족들은 명예를 위해 단 한 번도 시위를 하거나 그러지 않았지만 김영철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가슴이 떨리더라"면서 "이 자리에 서지 않게끔 현 정부에서 유족들을 보듬어줬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가족들은 또 청와대 앞에 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천안함 유족들은 오후 3시쯤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하다가 이를 가로막는 경찰과 약 10여 분간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청와대에서는 오후 3시 20분에 정무수석실 행정관이 나와 유족들의 서한을 받았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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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