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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아닌 人情소설? 사건보다 사람이 미스터리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 교보문고 판매순위 베스트 10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 교보문고 판매순위 베스트 10

최근 10년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은 뭘까.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집계 사상 최초로, 출간 이후 5년 이상 차트에 머물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60)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2012·이하 ‘나미야’)이다. 이 책은 지난해에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7년만에 낸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를 누르고 외국소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지금까지 한국에서만 80만부, 전세계 1000만부 이상 판매됐다. 28일에는 동명 영화가 개봉한다. 
 
노벨상 후보에 오르내리는 하루키와는 결이 다르지만, 히가시노는 일본 대중소설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다. 1985년 데뷔 이래 30여 년간 86권을 냈고, 국내 출간된 74권은 나오는 족족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월 넷째주 현재도 교보문고 외국소설부문 베스트셀러 15위권에 1위(『연애의 행방』), 2위(『나미야』), 4위(『그대 눈동자에 건배』) 등 6권이 그의 책이다. 『나미야』로 대표되는 ‘히가시노 월드’엔 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흔히 ‘추리소설 작가’로 불린다. 그래서 좀도둑 3인방이 우연히 숨어든 폐가에서 30년 전 사람들의 고민상담을 해주며 스스로 성장하는 이야기 『나미야』는 결이 다르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를 일반적인 의미의 ‘추리작가’라 부르기엔 작풍이 방대하고, 『나미야』는 그 도저한 흐름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그의 책 16권을 번역한 양윤옥 번역가에 의하면 “『나미야』는 사건 미스터리가 아니고 스토리 미스터리”다. 한 인간과 시대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여러 에피소드가 교묘히 짜여진 구조 자체가 미스터리란 것이다. 
 
시작은 추리소설이었다. 데뷔작 『방과후』를 비롯해 『백마산장 살인사건』(86)『11문자살인』(87)『가면산장 살인사건』(90) 등 초기작들은 밀실 트릭 등 수수께끼를 풀어 범인을 찾는 ‘본격파’ 미스터리였다. 다른 작가들과 차별화가 안돼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는 점차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조명하는 ‘사회파’ 미스터리를 아우르고 인간 묘사에 천착하면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했다. 베일에 싸인 주인공의 인생 전체에 미스터리를 던져가다 충격적인 반전 끝에 인간적 감동으로 마무리하는 게 그만의 공식이다. 
 
판타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제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받은 출세작 『비밀』(98)은 교통사고로 죽은 아내의 영혼이 함께 사고를 당한 딸의 몸에 빙의하는 ‘판타지 미스터리’였다. 태어나지도 않은 25년 후의 아들과 만나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파헤쳐 가는 『도키오』(02)와 30년 세월을 넘어 교신하는 『나미야』도 같은 계열인데, 퍼즐조각 맞추는 쾌감과 생생한 인간 드라마의 감동이 긴밀히 일체화되어 가는 것이 매력이다. 『나미야』가 추리소설 매니어를 넘어 남녀노소의 고른 지지를 얻는 이유다. 
 
마성의 테크닉, 강력한 흡인력
히가시노는 2012년 『나미야』로 중앙공론문예상을 수상하며 “어렸을 때 독서를 엄청 싫어했던 나같은 독자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며 “책을 사는 사람에게 그 가치에 걸맞는 즐거움을 제공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그래선지 그는 ‘페이지터너’로 불린다. 페이지를 술술 넘기도록 하는 마성의 테크닉을 발휘한다. 
 
그 비밀은 시대를 가로질러 등장하는 방대한 인간 군상을 통해 증폭되는 수수께끼와 누구 편에 치우치지 않는, 저마다의 시점으로 골고루 뿌려지는 깨알복선이다. 『백야행』(99)『환야』(04) 『유성의 인연』(08) 『기도의 막이 내릴 때』(13) 등 대표작들은 모두 등장인물 규모나 시대 배경이 대하드라마 수준에, 수사관과 피해자와 범인의 시점을 모두 포괄하는 묘사 테크닉을 쓴다. 
 
양 번역가는 이런 구조를 ‘소설공학’이라 표현하며 “작가가 작품과 거리를 두는 방식”이라고 했다. “인물의 내면 묘사가 아니라 행동을 단문으로 속도감있게 진행하며 머릿속에 장면을 그대로 그려지게 하는 것이 손에서 놓기 힘든 재미를 준다”는 것이다. 팟캐스트 ‘원기범박인곤의 THE 히가시노 게이고’를 운영하는 박인곤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여러 개의 에피소드를 연결해 궁금증을 유발하다 마지막에 무릎 치게 하는 기가 막힌 구조”라고 풀이했다. 
 
『나미야』도 좀도둑들에게 상담 편지를 보내는 30년 전 사람들과 30년 후 사람들에게 감사 편지를 받는 잡화점 주인장이라는 투트랙이 교차되니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궁금해진다. 그러다 여러 이야기에 흩어져있던 복선이 모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퍼즐을 완성시키며 거대한 대하 드라마로 반전되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 넘나드는 무한 상상력
『나미야』는 타임슬립과 평행우주의 컨셉이 적용된 판타지다. 32년간 86권을 쓴 ‘책공장’ 히가시노는 소재에 한계가 없다. 전기공학 전공자다운 전문적 과학지식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1998년 시작한 갈릴레오 시리즈는 유체이탈, 폴터 가이스트 등 초현실적 현상을 가장한 범죄를 물리학 지식을 이용해 해결하는 새 영역을 개척했는데, 『용의자X의 헌신』(05)은 물리학 교수와 수학자의 치열한 두뇌싸움으로 대중소설 최고 권위의 나오키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박 교수는 “유례없이 많이 쓰지만 책마다 다른 소재를 발굴하는 특별한 작가”라며 “이번 책에선 또 뭘 다룰까 하는 호기심이 신작을 읽게 한다”고 했다. 그런데 첨단과학과 의학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이유는 소재의 다양성 추구를 넘어선다. 바로 자본과 기술발전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염려다. “과학 발전이 예견 가능한 이과 출신의 장점을 살려 20년 앞선 문제제기를 한다”는 게 박 교수의 말이다. 초기작 『브루터스의 심장』(89)『레몬』(93)『천공의 벌』(95)『패러랠월드 러브 스토리』(95) 등에서 이미 인공지능 로봇의 폭력성과 클론의 도덕성, 원전 위험, VR 세계에서의 정체성 같은 21세기적 문제의식을 보여줬다. 뇌과학 서스펜스 『숙명』(90)『변신』(91)『라플라스의 마녀』(13)『위험한 비너스』(17), 유전공학 소재 『조인계획』(89)『아름다운 흉기』(92) 등도 SF와 현대 의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기술발전이 향하는 디스토피아를 통해 휴머니즘을 끌어내는 구조다.  
 
28일 개봉하는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28일 개봉하는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추리보다 인간관계 성찰
“인간 묘사도 못하는 작가가 명탐정 따위 만들려고 하지마라”. 『어느 밀폐된 눈의 산장에서』(92)에 나오는 대사다. 그는 『숙명』 출간 때 이미 “본격 미스터리 공식을 졸업하고 인간에 관한 소설을 쓰겠다”며 ‘인간’이라는 더 큰 수수께끼를 던지기 시작했다. ‘누가’‘어떻게’가 아니라 ‘왜 그랬나’가 문제인 것이다. 박 교수는 “추리소설에서 왜 그럴 수밖에 없었나 라는 인간적 정서를 다루니 재미있다. 범인에게 감정이입하게 되고, 범인이 안 잡혔으면 하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게 그만의 테크닉”이라고 했다. 
 
『백야행』에서 기상천외한 범죄를 벌이는 엽기 커플이 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소년소녀를 공범자로 만든 불행한 사연 때문이다. 『나미야』처럼 동네 사람들 각자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사건을 이루는 『신참자』(09)에서도 한 여인을 죽인 범인의 정체보다 그녀가 왜 이 마을에 왔고 누구를 사랑했고 무엇을 꿈꿨는지가 중요하다. 살인 사건 하나를 두고 동네 가정사를 다 파헤치는 형사의 시선에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담아낸 것이다. 
 
이는 한국을 넘어 중국·대만 등 범아시아쪽에서 그의 인기가 뜨거운 이유기도 하다. 강태웅 광운대 교수는 “일본 추리작가협회 쪽에서는 ‘그의 작품이 추리소설이 아니라 인정소설’이라며 ‘미스터리 작가라 부르지 말라’고도 한다”면서 “추리보다 인간관계를 파고드니 사건 해결의 쾌감은 적지만, 트릭의 정교함보다 사람 이야기를 좋아하는 동양인들에게 어필한다”고 분석했다.  
 
전개는 미스터리, 결말은 감동
미스터리 매니어들은 히가시노 월드에서 『백야행』『용의자X의 헌신』 등을 최고로 꼽는다. 하지만 『나미야』의 꺼지지 않는 열기는 보편적 소구력 때문이다. 지난해 전국 도서관에서 15~40세 독자가 가장 많이 대출한 도서로 꼽혔으니 애어른 할 것 없이 본단 얘기다. 강 교수는 “미스터리는 약해도 판타지에 감동을 더했기에 아이들도 필독도서처럼 읽는다”면서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국내 개봉 일본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것과도 비슷하다. 시공간을 넘어 죽은 사람을 만나는 순환적 세계관이 동양인에게 어필한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도 “히가시노 작품은 인간관계의 끈을 다시 묶어주는 감동코드가 있고, 『나미야』에서 그게 극대화됐다”면서 “부족한 사람들끼리 서로 해결해주려 노력하는 모습이 치열한 경쟁사회에 지친 이들에게 위안을 준다”고 진단했다. 
 
무엇이 그리 감동적일까.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대문학의 지속적 화두를 대중적 미스터리 코드로 풀어내는 히가시노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천착한다. 학원폭력 소재 『기린의 날개』(11), 연극 소재 『기도의 막이 내릴 때』, 환경보호 소재 『한여름의 방정식』(11) 등은 모두 반전 끝에 아버지의 사랑으로 귀결된다.  
‘부모의 사랑으로 내가 있다’는 자각은 곧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로 향한다. 『나미야』의 좀도둑들이 풀게 되는 수수께끼도 자신들의 원점인 보육원에 얽힌 사람들의 삶의 자취다. 이미 30년 전에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기적이 시작됐고, 그 기적이 지금도 나를 지켜봐주고 있다는 깨달음이다. 
 
‘판타지 미스터리라는 재미로 포장된 인생 지침서’라면 어떨까. 하루키의 『1Q84』등 200여 권의 일본 서적을 소개한 양 번역가도 『나미야』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했다. “자극적이지 않되 감동의 크기는 진한 착한 대중성이 만인의 사랑을 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하루키처럼 예술혼이 심오하진 않지만 보통 사람의 삶에 깃든 심오함은 『1Q84』 못지 않아요. 현실의 삶에서 꼭 필요한 지침이 담겨 있죠. 이 책의 문장들을 삶의 나침반으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 경우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믿어야 합니다’란 한 줄이에요. 어떤 선택을 앞두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어디까지 노력해 봤는가’에 대한 기준이 되기도 하죠.” 양씨의 말이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신인섭기자·현대문학·에이원엔터테인먼트, 일러스트 이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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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