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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수자 존중”… 런웨이 물들인 무지개

16일(현지시간)부터 닷새간 열린 런던패션위크에서 버버리 컬렉션 초청장은 ‘골든 티켓’이었다. 지난해 10월 “버버리를 떠나겠다”고 공식 발표한 크리에이트 총괄 디렉터 크리스토퍼 베일리(46·사진)의 굿바이 무대였기 때문이다. 어떤 ‘피날레’가 연출될 것인가에 진작부터 관심이 쏠렸다. 
 
행사가 열린 17일 오후 5시 런던 딤코빌딩은 1300여 명 관객을 실은 차량들이 몰리면서 극심한 교통 정체를 빚었다. 하지만 막상 쇼는 정제된 메시지를 보여줬다. 무지개였다. 빨주노초파남보가 점퍼·니트·스커트·모자·드레스·가방 등 거의 모든 아이템에 적용됐다. 무지개는 통합과 포용, 무엇보다 성 소수자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쇼 직후 베일리는 공식 인터뷰에서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창의력의 근본이며 이를 말하기에 지금보다 더 나은 때가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버버리에서 나의 마지막 컬렉션은 성 소수자(LGBTQ+) 커뮤니티를 포함한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피날레는 7년 전 베일리가 발굴한 모델 카라 델레바인이 무지개 퍼 망토를 휘날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윽고 모두 숨 죽이며 고요가 깔리자, 마침내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관객들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듯 열광적으로 환호하며 기립 박수를 보냈다. 엄숙했던 패션쇼가 한순간 축구 경기장처럼 돌변하는 장관이 연출됐다. 
 
이토록 성대한 이별식이 치러질 만큼, 그는 버버리의 르네상스를 이끈 ‘구원 투수’였다. 그가 버버리로 온 2001년, 버버리의 라이선스는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다. 체크 이상의 디자인도 나오지 않았다. 이때 베일리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영국 북동부 시골 출신의 그는 런던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하고 구찌에서 일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당시 버버리의 미국 CEO였던 로즈 마리 브라보의 눈에 띄게 되고, 스물아홉에 디자인 수장으로 발탁된다. 
 
그는 버버리의 전통에 젊음과 패기를 녹여냈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트렌치 코트의 실루엣을 변화시키고 컬러를 다채롭게 입혔다. 프린트를 더하고 레이스와 플라스틱 비닐 등으로 소재를 달리하기도 했다. 이뿐일까. 웰링턴 부츠와 페어아일 니트 등을 통해 영국적 색깔도 놓치지 않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가장 영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안내자였다”고 평했다. 2009년에는 컬렉션 장소를 밀라노에서 런던으로 옮겨 바이어나 기자들을 영국으로 불러들이는 전략도 꾀했다. 
 
그는 업계의 개척자였다. 소수만이 누리던 컬렉션을 2010년 처음으로 온라인에 생중계했다. 지금은 보편화 된 컬렉션 현장직구(See Now Buy Now) 역시 2016년 그가 처음 주도했다. 6개월을 앞서가는 컬렉션을 당장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바꿈으로써 달라진 시장 환경을 반영했다. 
 
하지만 모든 도전이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2014년 그는 디자인 총괄은 물론 CEO 자리까지 오르지만 3년 만에 경영에서 손을 뗀다. 이에 대해 “아시아 시장 매출의 둔화로 실적을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파이낸셜타임스)거나 “디자이너로서 생산비를 일일이 따져야 하고 고용을 줄여야 하는 일이 어려웠을 것”(뉴욕타임스)이라는 게 공통된 분석이다. 
 
이제 남은 관심사는 하나다. 베일리의 뒤를 누가 이을 것인가. 브랜드 측의 답은 “여전히 탐색 중”이다. 소문만 무성하다. 최근 셀린느를 떠난 피비 파일로부터 메종 마르지엘라를 맡은 존 갈리아노, 코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스튜어트 베버스 등이 리스트에 올라 있다. 여기에 루이비통 남성복 디자이너로 슈프림과의 협업을 이끌었던 킴 존스도 강력한 후보로 등장했다.
 
 
런던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버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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