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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서 바퀴 달린 썰매로 훈련 … 첫 금 밑거름 됐죠

‘한국 썰매 레전드’ 강광배 교수
강광배 한체대 교수가 지난 22일 강원도 평창군의 한 카페 마당에 놓인 봅슬레이에서 ’대한민국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강 교수는 연습용으로 타던 봅슬레이를 평창 겨울올림픽 금메달을 기원하며 5년 전 이곳에 기증했다. 우상조 기자

강광배 한체대 교수가 지난 22일 강원도 평창군의 한 카페 마당에 놓인 봅슬레이에서 ’대한민국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강 교수는 연습용으로 타던 봅슬레이를 평창 겨울올림픽 금메달을 기원하며 5년 전 이곳에 기증했다. 우상조 기자

지난 22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KTX 진부역. 로비에 들어서니 우람한 체구에 서글서글한 미소를 띤 그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한국 썰매 레전드’로 불리는 강광배(45) 한국체육대 교수였다. 평창 겨울올림픽 방송 해설가로도 인기몰이 중인 그이지만 동네 아저씨처럼 수더분한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다.
 
직접 차를 몰고 마중 나온 그는 “함께 갈 데가 있다”고 했다. 10여 분을 달리니 ‘오대산가는길’이란 이름의 전원카페가 나왔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시절, 한국 동계스포츠와 썰매 종목 관계자들이 종종 모여 금메달의 꿈을 키우던 아지트였다. 제자 윤성빈이 그토록 염원하던 올림픽 우승을 확정 짓던 순간 그는 이곳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했다. 마당엔 그가 연습용으로 타던 봅슬레이 한 대가 놓여 있었다. 봅슬레이 앞에 새겨진 태극기를 어루만지며 그는 상념에 잠겼다.
 
그의 당초 꿈은 스키 국가대표였다. 1990년 무주리조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휴일에 스키를 타다 선수로 전향했다. “모든 운동선수에겐 공통된 꿈이 있어요. 국가대표가 된 뒤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는 거죠.” 그도 금메달을 꿈꿨다. 하지만 대학교 4학년 때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돼 장애 5급 판정을 받으면서 꿈은 물거품이 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여읜 데 이어 인생의 두 번째 좌절이 찾아왔다.
 
스키 타다 썰매 선수로 전향
95년 실의에 빠져 있던 중 대학 게시판의 한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루지 국가대표를 뽑는다는 거예요. 국가대표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죠. 도서관에 가서 루지가 뭔지 처음 알게 된 뒤 곧바로 지원서를 냈습니다. 누워 타는 거라 무릎 아픈 건 상관없겠다 싶었어요.” 30명 중 2등으로 상비군에 뽑혔다. 그런데 1등과 3등 했던 동료가 얼마 뒤 그만뒀다. “실업팀도 없고 비전도 없다니 말릴 수도 없었죠.”
 
이후 그는 홀로 바퀴 달린 썰매를 타고 아스팔트를 수도 없이 달렸다. 하도 넘어져서 매일 밤 피멍에 약 바르는 게 일이었다. 결국 꿈에 그리던 루지 국가대표로 뽑혔고, 98년 나가노 올림픽에 출전해 31위를 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썰매 종목 출전 기록이었다. “이걸로 끝인가” 싶었을 때 오스트리아인 코치가 썰매 불모지 지원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유학을 제의했다. “그래, 한번 해보자” 맘먹고 인스브루크로 떠났다. 외환위기 와중에 홀어머니가 집안살림을 팔아 마련해준 3000달러가 전부였다. 해가 지면 거리를 돌며 폐지와 맥주 캔을 주워 돈을 벌었다.
 
“하루 50유로를 받으면 다음날 곧장 썰매장으로 달려갔죠. 1분 타고 내려오는 데 25유로였으니 두 번 타면 끝이었어요. 한 번의 기회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그때 절감했습니다.”
 
하지만 루지 인생도 그리 길지 못했다. 또다시 무릎을 다쳤다. 그에게 닥친 세 번째 좌절이었다. 그때 마리오 구겐베르거라는 동료 선수가 우연히 말을 걸어왔다. “그래도 스켈레톤은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한번 타보지 않을래?” 그가 쓰던 헬멧과 썰매도 흔쾌히 선물해줬다. 누워 타다 엎드려 타니 기분이 새로웠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 99년 말 오스트리아 대학선수권대회에서 1등을 했다. 하지만 국내엔 스켈레톤연맹이 존재하지 않았다. 루지연맹에 통사정을 해서 어렵사리 연맹을 만들었다. 물론 등록 선수는 강 교수 한 명이었다.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에 나가려는데 연맹에선 ‘어차피 꼴등할 거 왜 나가냐’는 거예요. 그때 백성일 당시 대한체육회 부장이 ‘뭔 얘기냐. 한 명이라도 더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며 적극 밀어줬죠.” 그에게 마리오가 첫 번째 인연이자 은인이라면 백 부장은 두 번째 은인이었다. 그들 덕에 그는 2002년과 2006년 올림픽에 스켈레톤 선수로 잇따라 출전해 20위와 23위를 기록할 수 있었다.
 
2006년 올림픽이 끝나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강 선수의 스켈레톤을 박물관에 전시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KOREA’ 마크가 선명한 썰매를 흔쾌히 기증한 그는 스켈레톤은 후배들에게 맡긴 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엔 봅슬레이 선수로 출전했다. 올림픽 썰매 세 종목을 모두 뛴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봅슬레이가 빠져서는 한국 썰매가 온전히 설 수 없겠다 싶었어요. 무모하다며 다들 말렸지만 사명감 하나로 도전했죠.” 결과는 19위. 일본마저 제치자 썰매 선진국들도 드디어 한국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윤성빈에게 “욕심을 버려라” 당부  
16일 윤성빈(가운데)이 스켈레톤에서 우승한 뒤 강광배 교수(오른쪽)와 인터뷰하고 있다. [MBC 캡처]

16일 윤성빈(가운데)이 스켈레톤에서 우승한 뒤 강광배 교수(오른쪽)와 인터뷰하고 있다. [MBC 캡처]

널리 알려진 대로 윤성빈도 그가 발굴해 냈다. “하지만 ‘평창 금메달리스트 윤성빈’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연과 노력이 쌓인 결과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은퇴 후 연세대 박사과정에 들어가 만난 여인성 교수를 설득해 서울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을 만들었고, 여 교수 소개로 연맹 이사를 맡은 김영태 교사의 추천으로 윤성빈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김종욱 당시 한체대 총장도 빼놓을 수 없죠. 2011년 평창 올림픽 유치가 실패로 끝난 뒤 백수로 지내고 있는데 초면에 연락이 왔어요. ‘학교에 썰매부를 만들고 싶은데 도움을 줄 수 없겠느냐’면서요. 이 썰매부가 없었으면 김 교사에게 꿈나무 소개를 부탁할 수도 없었겠죠. 한국 썰매의 척박한 토양에서 이런 운명과 인연이 아니었다면 윤성빈이란 스타는 결코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강 교수는 2012년 여름 윤성빈과의 첫만남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목까지 내려오는 장발에 운동화도 구겨 신고. 스켈레톤이 뭔지도 모르고 왔죠. 30명 중 16등인가 했어요. 탈락이었죠. 그런데 나처럼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정 형편도 좋지 않고…. 왠지 짠했습니다.” 다음날 다시 불렀더니 장발 그대로였다. “석 달 뒤 국가대표 선발전이 있는데 3위 안에 들면 대학도 들어갈 수 있다고 했더니 곧장 머리를 자르고 오더라고요.”
 
일대일 개인교습이 시작됐다. 주말엔 강 교수 집에 데려가 영양 보충도 시켰다. “말 그대로 원석이었어요. 타고난 근성 하나는 최고였습니다.” 윤성빈이 선발전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하자 강 교수는 “2018년엔 네가 주인공이 될 거야”라고 축하 문자를 보냈다. 그러곤 “이 말은 꼭 잊지 말아달라”며 당부의 말을 곁들였다. “욕심을 버려라. 마음을 비워라. 물 흐르듯이 타라. 마음으로 조종해라.” 이후에도 윤성빈이 흔들릴 때마다 강 교수는 똑같은 문자를 보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스켈레톤도 힘을 빼는 게 관건이죠. 맹훈련을 묵묵히 감내한 성빈이가 자랑스러울 뿐입니다.”
 
이제 아지트 얘기가 나올 차례였다. “성빈이를 뽑은 그해 겨울, 많은 분들이 이 카페에 모였어요. 2018년 평창에서 금메달 한번 따보자며 결의를 다지는 자리였습니다. 일종의 도원결의를 한 셈이죠.” 강 교수는 애지중지하던 연습용 봅슬레이를 기증하기로 했다. “좋은 문구도 넣자는 얘기에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가난한 시작, 위대한 꿈’이란 아이디어를 냈고 모두가 ‘바로 그거다’라며 동의했죠. 5년 전 그때만 해도 다들 허황된 꿈이라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면 언젠가는 이뤄길 거라 믿었습니다.”
 
강 교수는 올림픽이 끝나면 윤성빈을 이 카페에 처음 데려갈 계획이다. 금메달은 혼자 딴 게 아니라는 걸, 보이지 않는 노고·헌신에 국민적 성원이 더해진 결과라는 걸, 숱한 좌절이 있었지만 과거의 좋은 인연들이 모여 오늘의 윤성빈이 가능했다는 걸, 그래서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는 걸 하나하나 차분히 들려주기 위해서다.
 
윤성빈이 금빛 스타트를 할 때 강 교수는 방송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고 “가가가가가!”를 외쳤다. 컬링의 “영미!”와 함께 이번 올림픽의 최고 유행어가 된 바로 그 멘트였다. “외국 선수들은 대부분 ‘고고고(Go)’ 하는데 기왕이면 한국말로 확 와닿게 하자 싶었죠. 그래서 국가대표 감독 때부터 ‘가가가’를 외쳤는데 다들 흥도 더 나고 없던 힘도 생긴다며 좋아하더라고요.” 불쑥 놀이공원 롤러코스터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답은 “너무 밋밋해서 못 타겠더라”였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아마 썰매 선수라면 햄버거나 짜장면 먹으면서도 탈 수 있을 걸요, 하하하.”
 
스켈레톤은 스포츠카, 봅슬레이는 SUV
강 교수의 시선은 이제 제2, 제3의 윤성빈 발굴에 꽂혀 있다. “루지는 오토바이 같달까요. 가장 섬세하고 감각적이죠. 스켈레톤은 중심이 낮게 깔린 스포츠카를 연상하면 되고요. 반면 봅슬레이는 SUV를 모는 느낌이죠. 셋 다 아주 매력적이라서 한번 타보면 그 맛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썰매 지망생을 한 명이라도 더 모으기 위한 강 교수의 썰매 자랑은 끝이 없었다.
 
“올림픽 개회식 때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제가 영광스럽게도 세 번의 평창 올림픽 유치 활동에 모두 관여했는데 삼수 만에 성공했잖아요. 힘들었던 순간과 환희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올림픽 이후 ‘지속 가능한 평창’도 그의 관심사 중 하나다. “사실 올림픽 이후가 걱정이에요. 스포츠 강국을 넘어 스포츠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느냐의 갈림길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반짝 관심에 일회성 올림픽으로 끝나면 다시 동계스포츠 후진국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일각에서 썰매 세 종목 경기가 열린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 철거 방안이 거론되는 데 대해서도 우려가 적잖았다. “후배들이 또다시 아스팔트를 달리게 할 수는 없잖아요. 활용 방안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저녁을 함께했다. 식당을 나서며 강 교수는 근처 가게에서 빨간 풍등을 하나 샀다. 그리고 풍등 밑에 불을 붙인 뒤 각자 마음속 소원을 담아 하늘 높이 띄웠다. 뭘 빌었냐고 물으니 한국 동계스포츠와 썰매 종목의 미래가 늘 밝기만 기원했단다. 천생 타고난 한국의 썰매꾼이었다.
 
 
평창=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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