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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선 행실 삼가고 …” 고전 배우는 열기 뜨거운 도심 서당

[LIFE] 서울 종로3가 일대 ‘공부 골목’
지난 23일 고전 강좌가 열리고 있는 서울 전통문화연구회의 강의실. 원주용 교수의 한문독해첩경 수업이 한창이다. 평일인데도 학습 열기가 뜨겁다. [사진 이화춘 전통문화연구회 고전교육연구실 실장]

지난 23일 고전 강좌가 열리고 있는 서울 전통문화연구회의 강의실. 원주용 교수의 한문독해첩경 수업이 한창이다. 평일인데도 학습 열기가 뜨겁다. [사진 이화춘 전통문화연구회 고전교육연구실 실장]

전국 어디를 가나 먹자골목 없는 곳은 없다. 하지만 공부골목은 낯설기만 하다. 서울 한복판인 종로의 ‘도심 속 서당’에선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종로3가 지하철역 인근 낙원동·인사동·와룡동·익선동·가회동 일대에는 크고 작은 공부방이 들어차 있다. 한겨울 밤에도, 무더운 여름 대낮에도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려 고전을 펴놓고 송독(誦讀)하고 있다.
 
옛날부터 인사동 일대에는 고서점과 표구점이 많았다. 그 덕에 독서인들과 서예가들이 서실을 열면서 공부하는 분위기가 퍼졌다. 자연스레 학습골목이 형성된 것이다.
 
대표적 도심 속 서당은 낙원동 옛 헐리우드극장 건물에 자리 잡은 전통문화연구회(‘전통’)다.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공부방 중 규모가 가장 크며 제일 잘 알려져 있다. ‘전통’은 1년 내내 『논어』『맹자』를 기본서로 강의한다. 8개월간 책들을 완독한 뒤 여름과 겨울 방학 때는 2개월간 경문만 강독한다. 지난 30년간 4만6000여 명이 ‘전통’에서 글을 배웠다. 올해는 『주역(오석원)』, 『한비자(허호구)』, ‘한국한시(신용호)’강의가 있다. 기초 한문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사자소학』이나 『명심보감』 수업을 듣는다.
 
‘전통’은 특히 고전 원전을 읽기에 힘이 부치는 일반인들이 한문 독해력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 ‘한문독해 첩경(捷徑)’ 코스를 개발해 강의하고 있다. 원주용 성균관대 연구교수 등이 강의하고 있는 이 교재에는 원전을 읽는 데 필수적인 한문 문형이 담겨 있다. 4000여 자 어휘와 허사(虛辭) 등을 반복해 익히도록 구성돼 있다. 말 그대로 지름길 코스다. 이 코스를 듣는 이상숙씨(61)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동양 고전을 깊이 읽어 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 퇴직하고 배우는 입장이 되니 너무 좋다”며 “젊은 사람들 속에 끼어서 공부하니 다시 학생이 된 느낌이다. 공부를 많이 한 선배들과 같이 공부하니 매일 매일 즐겁다”고 말했다.
 
 
공부한 내용 발표하고 매주 시험도
지난해 이라나 강사의 지도로 『논어』 집중연수를 한 데 이어 올해는 『맹자』 집중연수 과정을 두었다. 시험을 거쳐 일정 이상의 실력이 인정돼야 참가할 수 있다. 직접 공부한 내용을 발표하고 매주 시험을 보는 맹훈련코스다.
 
몽곡 이계황 전통문화 연구회 회장은 “은퇴한 분들이 못다 한 공부를 하시러 많이 찾아온다”며 “현직에 계신 지도자급 공직자, 기업체 임원들이 공부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게 남은 꿈”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학교에서 한자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 한글문맹은 없지만 문장 독해문맹(讀解文盲, 글을 읽고 무슨 뜻인지 모르는 문맹)은 50%가 넘을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우선 학교 선생님들이 먼저 한자 공부를 하시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통’이 자랑하는 것은 『4서 집주』다. 한문 공부를 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스터디셀러인 논어집주는 1989년 발간 이후 23쇄 10만5000부를 찍었다. 맹자집주는 1991년 출판된 후 17쇄 7만5000여부가 팔렸다. ‘전통’은 역주 사업에도 매진하고 있다. 2001~2017년까지 67억원을 지원받아 43종에 달하는 책 109권을 간행했다. 올해는 11억5000만원의 국고지원으로 12종 17책을 역주 간행할 계획이다.
 
전통문화연구회 다음으로 큰 공부방은 한송(寒松) 성백효 선생이 2007년 3월 설립한 해동경사(海東經史)연구소다. 익선동 운현타워에 있다. 연구소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경서(經書)와 역사서(歷史書) 번역사업을 연구원들과 함께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올해에는 『자치통감강목』『예기보주』『도곡집』『매산집』 등을 번역 중이며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도 네이버와 협약해 역주하고 있다. 강좌는 고문진보(월요일), 매산집(수), 춘추좌씨전(금)을 저녁 시간대에 진행해 학생들과 직장인들도 들을 수 있다.
 
 
선생님들 한자 배워 학생들 가르쳐야
이계황 전통문화연구회 회장

이계황 전통문화연구회 회장

중산(重山) 허호구 선생의 즉이(則以)학사(돈화문로 와룡동 정토빌딩)도 유명하다. ‘즉이’는 논어 학이(學而)편 6장에 나오는 구절에서 따왔다. ‘제자(弟子) 입즉효(入則孝) 출즉제(出則弟) 근이신(謹而信) 범애중이친인(汎愛衆而親仁) 행유여력(行有餘力)즉이학문(則以學文)’이라는 구절이다. “젊은 자제들은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와서는 윗사람에게 공손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믿음이 있게 하며, 널리 뭇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이를 가까이 해야 하니 이런 것들을 다 잘 행하고 힘이 남거든 그 남는 힘으로 글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중산은 한문학계에서 실력파 제자들과 한창여선생문집을 5년에 걸쳐 완독하는 등 꾸준히 학문에 힘쓰고 있다.
 
성백효 해동경사연구소 소장

성백효 해동경사연구소 소장

즉이학사는 중산 개인 연구실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더욱 실력을 높이고 싶어서 여가에 따라 팀을 구성해 따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 만큼 학습 분위기도 최고라고 한다. 사랑방 학사이다 보니 월요일과 목요일 저녁, 제자들이 팀을 짜서 실력 향상을 위해 의기투합해 공부하는 모임도 있다. 즉이학사에선 선생님과 공부하고 끝난 뒤 막걸리 한 잔에 간단히 점심이나 저녁을 먹고 헤어지면 그만이다. 학습비는 무료다.
 
허호구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허호구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시습(時習學舍)학사(익선동 운현신화타워)는 일우(一愚) 이충구(李忠九) 선생이 2006년 설립했다. 시습은 논어 제일 앞 구절인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에 나오는 시습에서 이름을 딴 서당이다. 시습학사는 통감절요증손교주의 번역에 매진하고 있다. 그동안 6책을 번역해 간행했고 2020년까지 완간할 계획이다. 시습학사도 매주 수요일 저녁 춘추좌씨전 강독을 하고 있다. 운현신화타워에 함께 자리 잡고 있는 동인(同人)문화원(원장 이기동 성균관대 교수)에서도 고전 강독이 다양하게 진행되며 특히 올해는 매주 월요일 저녁 손기원 박사의 주역 특강이 있다.
 
이충구 시습고전연구회 원장

이충구 시습고전연구회 원장

젊은 실력파인 이라나 선생은 혜화동 가톨릭 수도원에서 한시 만수(萬首) 읽기를 진행 중이다. 2년 전 시작된 만수회는 당송시거요(唐宋詩擧要) 등을 시경과 함께 읽는다.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고 시를 다 읽을 때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한시 만수 대장정’인 셈이다.
 
창덕궁 앞에 공부방 익선재(益善齋)를 열고 있는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젊은 동학들과 반계 유형원의 책을 읽고 최근 창비에서 반계 유고를 출간했다. 이처럼 종로3가역과 안국역 인근 빌딩 오피스텔에는 크고 작은 공부방이 열 걸음마다 하나꼴로 있어 글 읽는 소리가 그칠 날이 없다.
 
종로 일대의 공부골목은 사실 역사가 아주 깊다. 1963년 11월 청명(靑溟) 임창순(1914~1999) 선생이 종로구 수표동에 태동(泰東)고전연구소를 연 게 효시다. 청명은 충북 옥천 출신 한학자이자 강골의 사학과 교수(성균관대)였다. 4·19의거 당시 4·25 교수데모를 주도하고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를 직접 써 유명한 분이다. 5·16 이후 구속되고 대학에서 해직되자 일반인을 상대로 한문 강좌를 개설하기 위해 태동고전연구소를 설립했다. 태동연구소는 그동안 5000여 명의 수강생을 길러냈다. 그중 40여 명의 대학교수를 배출했기에 한학계에서 ‘태동학맥’으로 불릴 정도였다. SK 최태원 회장의 모친인 박계희 여사(1997년 작고)가 태동에서 한학을 공부하며 많은 도움을 준 것도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청명 “글 읽는 소리 끊어지지 않게 하라”
그러나 태동은 종로에서 경기도 남양주로 연구소를 옮겼고(1979년 지곡정사) 그 뒤부터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며 한림대에 연구소 부지와 서적을 기증(1985년)하며 운영권을 넘겼다. 청명은 별세 전 “글 읽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게 하라”는 간곡한 당부를 남겼다.
 
노촌(老村) 이구영(1920~2006)선생이 인사동 옛 건국대 야간대 건물에 이문학회(以文學會)를 연 건 1980년이다. 노촌은 충북 제천의 지주 후손이나 한학과 신학문을 병행했고 젊어서 사회주의에 빠져 1958년 간첩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전향을 거부하며 22년 만에 석방된 이력의 소유자인데 옥중에서 고 신영복 교수(성공회대)에게 한학을 가르쳐 이름이 더욱 알려졌다. 이문학회라는 이름은 논어(안연편)에서 증자가 “군자는 학문을 공부하면서 벗을 모으고 그런 벗들로부터 어짊으로 도움받는다(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고 말한 데서 따온 것이다. 논어의 이 글귀는 평이하면서 뜻이 좋아 전국 방방곡곡 글 읽는 모임의 이름으로 인기가 높다. 올해 봄에는 등산도 좋고 먹자골목도 좋지만 공부골목으로 발길을 돌려 보는 것은 어떨까.
 
 
서함원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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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