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배추 보이’ 쾌속 질주 … 설상 종목 58년 만에 스타 탄생

스노보드 은메달 이상호
은메달을 획득한 이상호가 24일 강원도 평창군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질주하고 있다. [뉴스1]

은메달을 획득한 이상호가 24일 강원도 평창군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질주하고 있다. [뉴스1]

“(배추 보이는) 매우 좋아하는 별명이다. 내가 스노보드를 어떻게 시작해서 어떤 환경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잘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알파인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상호(23·한국체대)의 별명은 ‘배추 보이’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취재진에게 제공하는 ‘인포 서비스(info service)’의 선수 소개 페이지에도 ‘캐비지 보이(cabbage boy)’로 돼 있다. 강원도 정선 출신인 이상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스노보드를 접했다. 정선군청 소속 공무원으로 2001년 고한읍사무소로 발령받은 아버지 이차원(52)씨의 손에 이끌려 고한읍의 고랭지 배추밭 눈썰매장에서 스노보드를 배운 게 출발점이었다.
 
재능을 발견한 이씨는 아들을 스노보드 선수로 키웠다. 아들이 대회에 참가하는 날엔 새벽부터 차를 달려 반드시 경기장에 데려다 준 뒤에야 일터로 향했다. 그런 이씨를 보고 “운동하는 아이를 둔 부모가 혼자뿐인 것처럼 유난을 떤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배추 보이’ 이상호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늘 몇 살 위 형들과 경쟁했다. 24일에는 대한민국 설상(雪上)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강원도 평창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알파인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2위에 올랐다. 우리나라는 1960년 스쿼밸리 올림픽을 시작으로 설상 종목에 꾸준히 선수를 파견했지만, 4년 전 소치 대회까지 단 한 명의 상위 입상자도 내지 못했다.
 
이상호는 예선 1·2차전에서 합계 1분25초06을 기록, 출전 선수 32명 중 3위에 올랐다. 토너먼트로 실력을 겨룬 16강 이후엔 매 경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였다. 이상호는 드미트리 사르셈바예프(OAR·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를 0.54초 차로 제쳤다. 8강에서는 벤하민 카를(오스트리아)을 역시 0.94초 차로 따돌렸다.
 
승부처는 준결승이었다. 예선을 2위로 통과한 얀 코시르(슬로베니아)와 맞대결에서 0.01초 차로 앞서 극적으로 결승에 올랐다. 코시르를 제치기 위해 이상호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팔을 쭉 뻗은 게 승패를 바꿔놓았다. 스노보드는 플레이트 맨 앞부분이 아니라 신체 중 어느 부위든 가장 먼저 결승선을 닿는 곳을 기준으로 기록을 잰다. 이상헌(44) 알파인 스노보드 국가대표팀 감독은 “0.01초면 (이)상호가 결승선에서 쭉 뻗은 왼손의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에 해당하는 시간 차”라며 놀라워했다. 결승에서는 올 시즌 월드컵 랭킹 1위 네빈 갈마리니(스위스)에게 간발의 차로 패했다. 이상호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기에 아쉬움이 없다. 메달의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상호가 역사를 쓴 배경에는 많은 지원자의 도움과 조언이 있었다. 5년 전만 해도 스노보드 대표팀은 이상헌 감독이 1인 4~5역을 도맡았다. 지도자 역할뿐만 아니라 주무, 운전사, 요리사, 통역, 마사지사 등을 혼자 책임졌다. 2014년 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대한스키협회장으로 부임해 파격적인 지원에 나선 뒤 모든 것이 변했다. 이상헌 감독을 돕기 위해 크리스토프 귀나마드(프랑스) 기술 코치, 이반 도브릴라(크로아티아) 왁싱 코치, 시모니 프레데릭(프랑스) 재활 코치 등 전문가들이 코칭스태프에 합류했다.
 
대표팀 밖 지원도 풍성했다. 스포츠 심리분석 전문가 조수경 박사가 이상호를 비롯한 선수들과 정기적으로 상담을 하며 심리적인 부분을 책임졌다. 최은영 마스터키친 대표 셰프는 오랜 해외생활로 입맛을 잃은 선수들에게 따뜻한 ‘엄마표 집밥’으로 힘을 실어줬다. 한의사인 장세인 원장과 이종석 재활 트레이너는 양방 또는 한방 물리치료 및 마사지로 선수들의 지친 몸을 풀어줬다.
 
올림픽 은메달은 이상호의 삶에 적잖은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당장 2억원이라는 거금이 생겼다. 스키협회가 준비한 올림픽 메달리스트 포상 규정에 따르면 금메달리스트는 3억원, 은메달은 2억원, 동메달은 1억원을 받는다. 메달리스트를 배출한 감독에게도 동일한 금액이 전달된다. 이상호가 은메달을 따낸 경기 장소 휘닉스 스노경기장에는 ‘이상호 슬로프’가 만들어진다. 휘닉스 평창은 한국 설상 58년 도전사를 새로 쓴 이상호의 업적을 축하하는 의미로 기존의 ‘듀크’ 슬로프를 ‘이상호 슬로프’로 개명할 예정이다. 아울러 올림픽 기간 중 이상호가 사용한 경기 장비를 기증받아 ‘이상호 전시관’도 만들기로 했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이차원씨는 “내 아들을 ‘75억(명) 분의 1’로 만든다는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 이제 2인자가 됐으니 80%쯤은 이룬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웃는 그의 두 뺨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평창=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관련기사
●이승훈 마침내 금 … 매스스타트 초대 챔프
●김보름 사죄의 큰절

●컬링 열기, 봄까지 갈까요 … 그 전에 대중화 기반 갖춰야죠
●전화 반납해 스타된 줄 모르는 ‘영미팀’, 숙소에서 mp3 들으며 보드게임
●아스팔트서 바퀴 달린 썰매로 훈련 … 첫 금 밑거름 됐죠
●흥겨운 민유라, 뭉클한 겜린 짝꿍 … 펀딩도 해피엔딩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