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13) 신뢰와 복수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화폐의 역사는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저버리는 사례로 충만하다. 나의 그러한 믿음은 견고했다. 기득권과 제도권 금융에 대한 반항아를 자처하고 동지들을 규합하며 몇 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2009년 10월까지 늘어난 비트코인 커뮤니티에서는 여러 대화가 이루어졌다. 누군가가 글을 올렸다. 무척 마음에 드는 글이다. 

 
“아직은 미약한 기술이 개화하려면 우리 스스로 비트코인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우리 커뮤니티에 비트코인을 비하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혁신의 과정은 많은 잡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소음을 견뎌야 합니다. 기득권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고 하겠죠. 그런 기득권자에 우리는 과감히 저항해야 합니다. 비트코인이 피기도 전에 지는 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믿음을 갖고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공식적으로 달러 기반의 환율을 기준으로 비트코인의 가치를 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화력이 있었나.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달러 기반의 환율을 논의했고 ‘새로운 자유주의자의 표본’이라는 신규 웹사이트에 의견을 게시했다. 결국 채굴에 따르는 전기 비용을 고려한 계산법이 적용되었다. '1달러당 1,309.03 BTC'로 표시되었다. 이는 1 비트코인당 0.08센트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우연히도 내가 릭에게 제시한 가격의 범위 내에 있었다. 그런데 비트코인 가치가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격에 대한 논란은 언제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사람들의 논란이 비트코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 글을 올렸다.

 
“설마 전기료로 산정한 비트코인의 가격을 높다고 생각하는 멍청한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겠죠. 가격이론을 잘 모르고 말하는데, 이건 최초의 가격이고 앞으로 채굴비용이 증가할 수도 있기에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성적이라 항상 물건의 가치에 대해서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물건값은 실제 가치에 맞게 정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버블은 있습니까? 그리고 현재 가격이 전기료에 연동되지만, 앞으로의 향방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건 비트코인에 사람들이 어떤 신뢰를 부여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물과 다이아몬드를 보자. 물은 사용가치가 높다. 물을 안 마시면 살 수 없다. 물이 주는 효용은 매우 크다. 그러나 물은 다량이다. 물은 세계적으로 부족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많이 사용할 정도는 된다. 결국 우리가 사용하는 단계에서의 물의 교환가치는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그 반면에 다이아몬드의 효용은 물보다 한참 밑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이아몬드를 누구나 가질 수 없다. 다이아몬드가 풍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의 시장 가격이 높은 이유이다. 누군가는 이를 가치의 역설이라 한다. 시장의 가격은 사용가치(총효용)를 기반으로 하지 않으며 교환가치(한계효용)를 기반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사이트에서 그런 논쟁을 하였다.

용어사전 > 교환가치(가치)
모든 상품은 사용가치와 더불어 '교환가치'(가치)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따라서 상품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결합된 물건으로 볼 수 있다.


교환가치(Tauschwert)는 우선 양적 관계 즉, 어떤 종류의 사용가치가 다른 종류의 사용가치와 교환되는 비율로 나타난다. 상품은 판매를 위해 생산된 물건으로서 화폐를 비롯한 다른 물건과의 교환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교환의 과정에서 상품들 사이에는 일정한 교환 비율이 성립하게 된다. 

예를 들면 밀과 철이라는 상품이 서로 교환될 때, '1되의 밀=1㎏의 철'이라는 교환 비율이 성립한다. '교환가치'(交換價値, Tauschwert, exchange-value)란 이렇게 하나의 상품이 다른 상품과 일정한 비율로 교환될 수 있는 가치를 가리킨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교환 가치를 규정하는 것은 상품의 가치라고 보면서 '교환가치' 개념을 '가치'(價値, Wert, value) 개념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비트코인에 가격을 부여하고 이를 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이 진정한 비트코인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길입니다.”

 
‘새로운 자유주의자의 표본’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사고팔 수 있는 장소가 생겼다.

 
나는 그 소식을 릭에게 말했다. 릭은 다소 실망스러운 느낌으로 말했다.

 
“가격이 우연히 네가 제시한 범위 내에 결정된 것은 네가 비트코인 왕국의 황제란 뜻인가. 비트코인의 세계는 블록체인 기술이라는 무궁무진한 가치를 담보하고 있어. 실질적인 가치를 아직 사람들이 제대로 판단하고 있지 않구나.”

 
나는 그 가격이 착한 가격인지 나쁜 가격인지 알 수 없었지만,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릭에게 물었다.

 
“릭, 가격이야 올라갈 수도 있는 것이고. 나는 이 가격이 실재 시장에서 안정되게 움직이길 원해. 이게 중앙은행에서 부여한 법정화폐가 아니더라도 지급결재 수단이 되려면 가격이 재료비를 적절히 반영한 것이어야 하지.”

 
릭이 쏘아대며 말했다.

 
“빌, 네 이름을 생각해봐. 우연히 네 이름이 지폐잖아. 돈이야. 설마 벤자민 프랭클린이 그려진 100달러 지폐를 만드는데 100달러 비용이 든다고 믿는 바보는 아니겠지. 네가 그런 믿음을 가진다면 너는 비트코인의 세계에서 황제라는 타이틀을 버려야 해.”

 
“릭, 황제가 어디 있어. 그때 우리가 스타탄생의 제전을 한 것은 우리의 거룩한 세계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어. 비트코인의 세상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해. 황제는 없어. 그건 나의 이상과 거리가 먼 이야기야.”

 
“빌. 잘 들어. 내가 네 세계의 일원으로서 말하는 거야. 세상은 공평하지 않아. 공평하다면 우리 어머니가 집을 잃었겠니. 아나키스트의 세계에도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는 있는 법이야. 훗날 다국적 기업이 정부의 힘을 능가하는 세상이 올 거야. 나는 블록체인의 기술을 바라보며 정부의 힘이 줄어드는 세상을 상상해. 세상은 민주적으로 변할 수 있어. 그런데 민주적이라고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가 없다고 생각해? 네가 어떤 경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모르지만, 비트코인은 나의 분신이야. 우리는 제로에서 거의 시작했으나 비트코인의 활활 타오르는 인화력을 믿어.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임무가 네게 주어져 있어. 아니, 네가 하지 못한다면 내가 할 거야. 구름처럼 몰려드는 사람들을 상상해. 그게 내 꿈이야.”

 
나는 빌을 안심시키는 말을 하였다.

 
“빌. 네가 내 뜻을 오해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교주가 아니야. 비트코인의 세계가 신뢰의 정원이 되게 할 의무를 저버릴 생각은 없어. 네가 바라보는 비트코인의 가치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가치라는 것은 시장이 부여하는 거야. 그래서 이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우리의 비트코인에 진정한 의미가 부여된 것은 대단한 성과가 아니겠니. 작은 성공이 모여 큰 성공이 되는 거야. 그리고 성숙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해. 첫술에 배부르겠니?”

 
“사랑을 시작하는 모든 연인이 수줍은 건 아니야. 원 나잇 스탠드도 있는 거고, 불멸의 사랑도 있는 거야. 네 가치 기준을 내가 알 수 없다만, 나는 내 어머니의 집을 앗아간 인간들을 위하여 철저한 복수를 할 거야. 내게 두통거리를 준 정부 역시 가만히 둘 수 없어, 세상은 이제 달라질 거야. 그 달라진 세상을 위해 나는 너의 우수한 두뇌를 필요로 해. 앞으로도 비트코인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도록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나는 복수라는 단어에 깜짝 놀랐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하지만, 당시 내게 릭의 사정이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릭, 나는 비트코인이라는 이름이 b자로 시작하여 아주 마음에 들어. 죄지은 자도 회개할 수 있고 버림받은 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거야. 네게 말하는 건데. 나 사실 세상을 살면서 많은 죄를 지었어. 아마 또 지을지도 모르지. 비트코인은 음. beauty(아름다움), benefit(혜택), blessing(축복)의 세계야. 이 성스러운 세상을 위해서 나는 에덴동산을 아름답게 가꿀 것이고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줄 것이고 축복을 나누고 싶어. 그리고 한 가지 더. 너의 어머니의 집을 찾는 데 도움을 줄게.”

 
릭과의 전화를 그렇게 끊고 나니 릭이 짠하게 느껴졌다. 내겐 돈은 충분했다. 필요하면 릭에게 비트코인을 만든 대가로 큰 선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어차피 나는 속죄의 길을 가야 했다. 당시 미국 경기는 좋지 않았고 차압당한 매물로 집값은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금리는 더는 내려갈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의 빚은 늘어갔다. 돈은 끝없이 찍어 내는데 일자리 사정은 좋아지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에는 성난 민심들이 언제라도 달려들 것 같았다. 정확히 2년 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구호가 시작되었다.

 
많은 아픔이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월가의 대규모 시위가 있기 전 바람도 쐴 겸 뉴욕을 향했다. 아니타가 있는 곳이다. 아니타는 본인의 업무를 열심히 하였다. ‘월가의 반성’이라는 포럼을 개최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월가의 신뢰가 세계를 구한다는 슬로건을 걸고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녀가 나온 신문을 일일이 스크랩했다. 그녀는 이미 사회적으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뉴욕의 거리는 변함이 없었다. 포럼에 참석하기 전 추억의 길을 걸어 보았다. 월가의 황소 동상은 여전했다. 금방이라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세상을 향해 돌진할 태세다. 동상에는 유난히 반짝이는 부위가 있다. 부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집중적으로 만지는 곳이다. 월가를 걷는 데는 7분 정도면 족하다. 천천히 걸어도 10분이 넘지 않는다. 그 월가가 있는 맨해튼. 이 도시는 사람들이 돈과 전쟁을 하기 훨씬 전에 약탈자의 아픔을 느낀 흔적으로 자욱한 곳이다. 
 
뉴욕의 첫 이름은 뉴암스텔담이었다. 네덜란드인이 처음으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초기에는 원주민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였고 원주민들은 허드슨강 맞은편으로 옮겨갔다. 이후 원주민 대량학살이 있고 난 뒤 원주민 침입에 대한 불안을 느낀 네덜란드인들은 방어용 벽(Wall)을 세운다. 이후 영국인이 맨해튼에 진출하며 방어용 장벽은 이중으로 강화되었다. 높이도 4m로 더 높아졌다. 1699년 이곳을 점령한 영국은 장벽을 철거했고 월가라는 이름만 남게 되었다. 그렇게 피로 얼룩진 거리가 세상을 지배하고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있다. 포럼에 참가한 나는 아니타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변장을 했다. 검은색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채 손 하나로 얼굴의 반을 가렸다. 그날 아니타는 상당히 의미 있는 발언을 하였다. 내가 꿈꾸는 세계를 둘러보게 했다. 그런 아니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귀퉁이에서 그녀의 첫마디를 들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금융 산업으로 유명해지기 전부터 월가의 과거는 화려했습니다.”

 
월가의 화려함을 말하는 그녀의 미모는 여전했고 나의 성적 본능을 자극했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싶은 생각으로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 3월 1일 목요일 1시에 14화가 이어집니다.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다른 기자들의 연재 기사 보기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