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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설에 처가 먼저 가면 아들 호적 파겠다고?

기자
김성희 사진 김성희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34)  
 
 
며칠 전 TV를 보다가 화면 속으로 뛰어들 뻔했다. 열불이 나서였다. 어느 종편의 토크쇼였는데 화제는 명절을 맞아 시댁과 친정 중 어디를 먼저 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참석자들 대부분이 친정행은 말도 안 된다는 주장을 폈고 소수의 젊은 부부, 여성만이 친정엘 먼저 가도 되지 않느냐는 항변을 하고 있었다.
 
세대 차에 성차가 겹쳐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갈 법했지만, 가관인 것은 이른바 전문가 패널의 답이었다. 20대 자녀 둘을 두었다는 이 변호사는 “아들이 설에 처가에 먼저 가겠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호적에서 파버려야죠”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단호한 표정으로. 일부 참석자가 이견을 제시하자 한 고령의 참석자는 “그러려면 시집을 오지 말았어야지”라며 대찬 소리를 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정확한 인용이 아니다. 어떤 결말이 났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기억에 의존한 데다 보다가 기도 안 차서 채널을 돌려버렸으니 말이다. 한데 두고 두고 마음에 걸렸다. 뭐, ‘호적이 사라진 지가 언젠데’ ‘여자 변호사인데도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나’ 등등의 생각은 다음 문제였다. 가장 크게 거슬렸던 대목은 결혼을 보는 눈이었다.
 
여성에게 결혼은 시집을 가는 것이 아니다. 이건 케케묵은 생각이다. 며느리를 노동력 확보, 후손 잇기의 수단으로 보던 때에나 하던 표현이다. 시부모가 주(主)고, 딸 가진 부모는 종(從)이 되어 내내 죄인처럼 조심스럽던 시절은 예전에 지났다. 지금은 서로 성인인 남녀가 동등하게 새로운 가정을 꾸미는 것이 ‘결혼’이다. 누가 가고, 오고, 시부모가 맞아주는 시혜를 베푸는 게 결혼이라 여긴다면 자식 내외도 편치 않을뿐더러 자칫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그러니 명절 차례가 무슨 대수랴. 며느리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인데 자기 부모 만나러 가고 싶지 않을까. 친정에 가고 싶은 며느리가 마음 상한 채 마련한 제수로 차례를 지낸들 조상이 기꺼워할까. 어딜 먼저 가든 상관없다. 설과 추석에 교대로 갈 수도 있다. 음식 장만도 요모조모 기성품을 가져다 써도 무방하다.


 
"설엔 할아버지 댁에, 추석엔 처가 가라"
서로 성인인 남녀가 동등하게 새로운 가정을 꾸미는 것이 결혼이다. [사진 Unsplash]

서로 성인인 남녀가 동등하게 새로운 가정을 꾸미는 것이 결혼이다. [사진 Unsplash]

 
아들딸이 결혼할 때 공교롭게도 주례 대신 양가 부모가 덕담했다. 그때 그랬다. “이제 너희도 어엿한 가정을 이루니 스스로 책임지고 운영하라”고. 서로 독립한 가정으로 대하자는 다짐이었다. 해서 아들 내외에게 처음부터 선언했다. “설엔 할아버지 댁에 가고, 추석엔 처가 가라”고.
 
그리 뼈대 있는 집안도 아니고 부모님 모두 실향민이어서 크게 격식을 따질 일이 아니어서 가능했다. 그런데 이렇게 쿨한 시부모 코스프레를 하자니 옆에서 마님이 딴죽을 건다.
 
“아니, 그럼 30년 넘게 맏며느리 노릇 한 나는?”
“어어, 우리 세대야 부모님이 계시니 그렇게 살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그러길 바라면 안 되지.”
 
전통이나 관행은 가진 자, 힘센 자, 있는 자들의 편의를 위해 시작된 것이 대부분이라 생각한다. 명절 풍속이며 제사의 의미며 시대가 바뀌면 달라지고, 달라져야 한다. 아들 부부가 명절에 찾아오길 기대하지만 요구하지는 않는 정도로.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news.joins.com/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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