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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연극 이상주의적 공동체 표방했지만 폭력 다반사

32년 만에 사라진 연희단거리패 
밀양연극촌에서 각종 공연이 올라가는 야외무대. 2010년께 지은 것으로 성벽극장이라 불린다. [중앙포토]

밀양연극촌에서 각종 공연이 올라가는 야외무대. 2010년께 지은 것으로 성벽극장이라 불린다. [중앙포토]

32년 전통의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하루아침에 해체됐다. 예술감독 이윤택의 성범죄로 이어진 안마와 발성훈련 등이 단체의 오랜 ‘관행’이었고, 이것이 사회문제가 되자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공동체 정신과 집단주의
연희단거리패는 숙식을 함께하며 삶과 연극이 분리되지 않는 ‘이상주의적 연극공동체’를 자처해 왔다. 2017년 기준으로 70명의 단원이 소속됐고, 800여 명의 연극인이 거쳐갔다. 일본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의 극단 SCOT와 토가 예술공원이 세계 연극의 성지가 되면서 한때 연극계에 공동체가 유행했지만, 오래 못 갔다. 반면 이씨는 가부장적 카리스마로 조직을 이끌었다.
 
근거는 ‘공동체 정신’이라는 이데올로기였다. 거기 가면 대단한 연극인이 되는 듯한 신화를 만들어 냈다. 2015년 6개월간 밀양연극촌에 입촌해 이들을 관찰한 권정은씨의 석사 논문도 개인주의 부정과 위계서열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고 있다. 10명 이상 한 방에서 생활하며 사생활이 없다는 이유로 퇴단 사례도 많았지만, ‘버텨내는 힘’을 지칭하는 ‘기갈’을 연기의 핵심 요소로 가르쳤고, 이런 집단주의가 특유의 공연을 만드는 기초가 된 것으로 분석했다.
 
‘개인을 넘어서는 자리에 예술이 있다’는 가르침을 바탕으로 단원들은 오전 7시30분 조회와 산책, 청소로 시작해 12시간 동안 단체 활동을 했다. 공연이 임박하면 밤샘작업도 흔했다. 월요일 공식 휴일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고 1인당 동시에 2~3개 공연에 참여해야 했다.
 
연극에 뜻을 품고 밑바닥부터 시작한 단원들은 이런 생활을 “열정이 있어 행복했다”고 표현한다. ‘미투’에 동참한 피해자 추모씨도 “난 밤마다 안마를 했다. 괴로웠어도 우리가 만드는 작업은 행복했다. 이윤택은 무서운 독재자였지만 큰 작품을 만들었고 많은 단원과 다양한 작업을 했다. 그래서 난 7년의 시간을 버텼다”고 했다.
 
이런 열정을 발판 삼아 국내외에서 승승장구했다. 우리의 전통과 세계 연극의 보편성이 만나는 문화상호주의적 스타일로 해외 연극 페스티벌에도 자주 초청받았다. 2010년 루마니아 햄릿 페스티벌에서는 ‘가장 인상적인 햄릿 중 하나’로 꼽혔다. 단원들이 ‘연극인으로서의 자부심’에 도취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연극 활동만으로 먹고사는 단체로도 유명했다. 이씨는 “막내 30만원부터 대표 170만원, 예술감독 200만원 수준의 월급이지만 숙식·이동을 공동재산으로 해결하기에 풍족하다”고 했었다. 지자체 보조금으로 거주·창작·연구 공간을 확보해 활동 기반도 튼튼했고, 정부 지원금도 공격적으로 따냈다.
 
도제 문화에서 길러진 제왕적 권력
한 전직 단원은 이씨를 ‘아버지’로, 폭로자들은 ‘가족’이라 표현했다. 한 피해자도 “당시엔 안마 행위를 ‘집안 노인을 봉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과로 여겼다”고 했다. 김소희 대표도 “‘스승’ 이씨가 받아온 안마 서비스가 성추행으로 이어지던 관행을 범죄로 인식하지 못했다”며 “우리 선생님이니 당연히 안마해 드릴 수 있다. 다만 성추행은 고쳐야 될 문제로 생각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받았다. 그것만 고친다면 정말 이상적인 곳이 될 거라 믿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씨는 안마뿐 아니라 단원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아왔다. 마음에 안 들면 완성된 의상을 찢어버리거나 디자인 스케치를 복구 불가능하게 망쳐놓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무대 변경을 지시해 밤을 새우게 만들고 추가비용은 무시하기도 했다. 젠더 문제를 넘어 권력남용과 위계에 의한 폭력이라는 구조적 문제로 보아야 하는 이유다.
 
권씨의 논문도 철저한 기수 중심의 위계질서를 비중 있게 다루며, 나이와 무관하게 엄격한 선후배 간 규율에 따라 훈육이 실시됐다고 관찰했다. 24일 폭로에 동참한 연희단거리패 출신의 피해자는 “청주대 은사이자 연희단 선배인 오동식에게 대학원 진학을 상담하자 배신으로 여긴 그가 욕설과 주먹을 휘둘렀고, 이 사실을 안 이씨도 내 뺨을 때리며 ‘나가라. 너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소리쳐 극단을 나왔다”고 증언했다.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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