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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상징 원 안에 삼족오·바퀴살 문양 … 역동성·균형미 탁월, 고구려인 기상 듬뿍

[드로잉 한국고대미술] 고구려 금동장식과 수막새
‘해모양 뚫음무늬 금동장식’의 삼족오. 평양 진파리 출토.

‘해모양 뚫음무늬 금동장식’의 삼족오. 평양 진파리 출토.

정림사지 석탑을 처음 본 2년 후 나는 다시 부여에 가게 되었고 백제금동대향로를 관람했다. 봉황과 향로받침의 용 형상은 명성 그대로 역동적이고 정교하고 화려하고 또한 진지했다. 향로의 몸체와 뚜껑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여러 인물과 상상의 동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유쾌하고 담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반전이다. 유머 감각 또는 표현의 여유로 보인다.
 
유사한 인물상이 장수왕 때 유물인 ‘고구려 태화 9년명 비천무늬 금동광배’에도 있다. 광배의 불꽃무늬도 중요하지만, 가운데를 중심으로 양쪽에 두 개의 인물상들이 꽃문양과 연결될 때 부분적으로 투조(透彫)를 한 점이 특히 흥미롭다. 분명히 어떤 조형적 판단이었을 테고 결과도 성공적이다. 보이는 부분과 사라진 부분과의 즐거운 조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평양 진파리 출토 유물 중에는 삼족오(三足烏)로 더 유명한 ‘해모양 뚫음무늬 금동장식’이라는 투조가 있다. 반원형에 가까운 외부 윤곽선이 운동 에너지를 머금은 듯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중앙 원형 안에 출발과 착지를 능수능란하게 할 것 같은 새가 한 마리 서 있다.
 
 
곡면들이 절묘하게 서로 연결
평양외성 발견 고구려 수막새. 조선고적도보 2권 중.

평양외성 발견 고구려 수막새. 조선고적도보 2권 중.

투조는 드러내려는 부분에 곡선이 너무 많으면 기술도 어렵거니와 통일성을 잃기 쉬워 최종적 형상이 복잡해 보인다. 비워지는 부분의 면적이 줄어들면 전체적 형상이 갑갑해 보이고 그 비율이 늘어나면 드러나는 형상이 빈약해 보인다. 그런데 이 작품은 드러나는 형상의 곡면들이 절묘한 지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어 역동적이면서도 견고한 구성을 하고 있다.
 
원형 내부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새의 머리 위로 벼슬처럼 솟아난 부분이 하나 있다. 약간 옆으로 돌아간 듯 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부리 부분에서 나오는 것은 날개로 보인다. 새의 벼슬, 날개 넷, 다리 셋, 전체 여덟 개 부분이 안에서 바깥으로 회오리처럼 뻗어 있다.
 
그런데 원형(圓形)이라는 도상은 시지각적으로 구심력과 원심력이 같이 작용하는 면적이다. 중앙에 새의 몸과 날개가 붙어서 원형에 가깝게 빈 공간이 생겼는데, 이 면적이 바깥을 향하는 회오리 같은 원심력에 대해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대상이 화초이든 봉황이든 용이든, 투조에서는 어떤 형상을 드러내는 순간 나머지 부분을 비워 내야 한다. 이때 비워지는 부분의 윤곽선들이 안정된 형태의 폐곡선을 이루어야만 기술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균형이 생긴다. 이 영역은 제작자가 예상치 못했던 추상에 가까운 형상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감각이 대를 거쳐 오면서 해당 문화권 특유의 조형적 양식을 형성했다. 이 작품은 곡선으로 가득하지만 확신에 찬 결정적인 곡선들이며 빈 부분에 대한 미학적 자각을 명료하게 한다.
 
고 구 려 수 막 새 와 청 동 기 동 경 (아 래 가 운 데 ) 각 19×26㎝, 종 이 에 펜과 수 채 , 2017.

고 구 려 수 막 새 와 청 동 기 동 경 (아 래 가 운 데 ) 각 19×26㎝, 종 이 에 펜과 수 채 , 2017.

고대 금동 투조에 대해 궁금해진 나는 관련 유물을 찾다가 한 북방 유목민족의 유물을 알게 됐다. 선비족 국가 북연(北燕)의 재상이었던 풍소불(馮素弗) 무덤의 금제관식이었는데 사각형에 위로는 양파처럼 꼭지 하나가 중앙에 살짝 올라와 있었다. 내부 면적에는 선들이 서로 만났다가 헤어졌다가, 대칭적인 듯 대칭이 아니고, 규칙이 있는 듯 규칙이 안 보이는, 매우 재미있는 금동 투조였다.
 
이 작품을 드로잉하면서 나는 미술이 결코 보이는 것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다. 광대한 초원 위는 망망한 바다 위만큼이나 드러나는 지표가 적다. 하늘과 바람, 별자리와 해 높이의 변화, 비와 눈, 어디에 방점을 두어야 했을까? 생존을 위해 물론 수시로 동물도 죽여야 하고, 불빛 하나 없는 밤에 무엇이 존재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을까? 자신에 대한 자각이 현대인이 고대인보다 더하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운동성과 거리감각, 공간과 균형 감각이 비행기를 타는 현대인이 고대인보다 당연히 앞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고구려의 금동 투조나 선비족의 금동 투조를 보면서 어떤 강인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얼음같이 딱딱하면서도 투명한 감수성을 발견한다. 북방에서 수만 리를 달려온 말같이 낯설고도 영리한, 반짝거리면서도 흔들거리는 오래된 노랫소리를 듣는 듯하다.
 
백 제 금 동 대 향 로 의 상상의 동물, 27×21㎝, 종 이 에 펜과 수 채 , 2017.

백 제 금 동 대 향 로 의 상상의 동물, 27×21㎝, 종 이 에 펜과 수 채 , 2017.

내가 아는 고구려는 어디까지였던가. 지금의 중국 땅에서 오녀산성, 장군총, 오회분 벽화와 광개토대왕비를 보고 왔으니 조금 후련해져야 할지도, 백두산 천지 위로 구름이 걷히고 해가 비추는 것을 보았으니 이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평양성이 함락된 뒤 그 많던 고구려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아니면 그대로 살았던 것일까. 서역정벌로 유명한 당나라 고선지 장군이 고구려의 후예이므로 그저 자랑스러워해야 할까. 고구려의 장수 대조영이 다시 발해를 세웠으니 감동적인가.
 
이러한 생각들을 하던 중, 조선 실학자 유득공의 『발해고』 해설서를 읽었다. 고구려라는 이름에서 나는 광활한 초원 위의 별자리처럼, 북방의 숲 위로 날아가는 용감한 매처럼, 천천히 움직이면서도 날렵한 어떤 기인을 찾는다. 유동적이고도 신선하다. 벽화에 보이는 인물처럼 땅보다는 바람과 더 친숙할 것 같은 사람들. 한자로 표기된 상당수의 우리 지명과 이름이 부정확한 음차표기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오랑캐라고 부르던 용어의 대상이 바로 우리 민족까지 통칭하는 것을 알았을 때, 익히 보아 왔던 펼쳐진 세계지도가 실은 북반부의 실제 면적을 오역시켰음을 알았을 때, 그리하여 그 옛날 중국을 거치지 않고도 말을 타고 만주에서 카스피해를 직진할 수 있었음을 알았을 때, 나는 정말 고구려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구려 벽화 자료를 찾다가 『조선고적도보』라는 중요한 자료집을 알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문화재를 그토록 잘 기록하고 촬영했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지금은 사라져 버린 유적도, 북한에 있어서 볼 수 없는 유적도 내가 잘 관찰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채집과 정리의 의도, 소유하고자 하는 의지를 읽을 때면 섬뜩해진다.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는 자와 아름다움을 보관할 수 있는 자의 대결이다.
 
한사군의 낙랑군이 정말 평양 토성동에 있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설사 있었다 해도 나는 그 이전의 우리 역사, 고조선의 미술이 더 궁금하다. 많은 고구려 기와 사진이 거기에 들어 있었다. 금동 투조에서뿐 아니라 기와문양에서도 고구려 미술은 정말 매력적이다. 태양이자 하늘의 상징인 원형 안에 넝쿨무늬 또는 인동무늬가, 씨앗모양과 바퀴살 모양 등이 들어 있다.
 
이들 원형 수막새에서도 역시 구심력과 원심력의 조형적 균형이 탁월하게 이루어졌다. 한 평양성 출토 고구려 수막새는 사방을 향하는 십자 구도와, 그 사이로 추가된 팔방 구조로 어떤 광물의 결정체를 보는 듯하다. 또 다른 평양성 출토 수막새는 가느다란 십자형이 여덟 개 다시 추가되어 별빛이 빛나는 것 같다. 토성동 출토 기와도 이와 유사한 도상을 가지고 있다.
 
아리엘 골란이 쓴 『선사시대가 남긴 세계의 모든 문양』을 보면 석기시대부터 있었던 십자형은 청동기 시대에 와서 숭배기호로서 태양을 상징하게 된다. 그 기원을 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에서 찾기도 한다. 태양빛처럼 보이는 한 대동강 부장품 동경(銅鏡)에는 여덟 개의 작은 반원형들이 보이는데 이것은 하늘의 수분, 즉 비를 내리는 구름의 도식이며 많은 경우 뾰족한 삼각형들로 대체된다. 우리의 빗살무늬토기와 청동기 동경에서 보이는 상당수 도상이 고구려의 기와 문양 속에 숨어 있다.
 
 
용감한 최고 지도자 추상화
조형예술에는 확실히 어떤 친족 관계가 있고, 시간적 공간적 변화에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도상들이 있다. 상징에 관한 한 앞서 언급한 삼족오는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새, 또는 태양과 같은 불사조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실재하는 동물 모습이 아니라 문화공동체의 우두머리, 최고 통치자를 권위 있게 지시하는 것이다. 용감하고도 신비로운, 칼과 영혼, 그 둘을 다 아우르는 고대의 지배자. 우리 고대 유물에서 자주 목격하는 삼엽문(蔘葉文)도 날아오르는 새를 추상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뜻 그대로 상징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형상이 아닌 다른 것을 지시하는 것이 아닌가? 빗살무늬도 실제 빗살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비를 염원했던 신석기의 추상적 도식이었고, 청동기에 이르면 뾰족한 삼각형들이 태양빛을 상징하게 된다. 새의 깃털을 자랑스럽게 머리 위에 달았던 고구려인들, 그리고 새의 위엄과 용감함, 새에 대한 많은 미학적 가능성을 보여 주었던 고구려 미술은 지금의 눈으로 보아도 여전히 참 재미있다. 원형에 대한 탁월한 균형감각과 더불어.
 
 
김혜련 화가·예술학 박사
서울대 미술대학원 서양화과에서 미술이론으로 석사, 베를린 예술종합대학에서 회화실기로 학사 및 석사, 베를린 공대 예술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현재 베를린과 파주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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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