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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장수술 마취 않고 참선하듯 … 죽음 예고 후 ‘가부좌 입적’

[금강 스님의 ‘달마산 편지’] ②서옹 스님
‘참사람 운동’으로 사람들이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권했던 서옹 스님.

‘참사람 운동’으로 사람들이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권했던 서옹 스님.

산에서도 하는 일이 많아 벌써 2월이 훌쩍 지나가고 말았다. 세상에 살면서 밥값은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들이 많아졌다. 그중에 어린이한문학당과 무문관, 참사람의 향기는 모두 7박 8일 동안의 녹록지 않은 일정과 내용이다.
 
새해가 되자마자 아이들을 산사로 초대하여 ‘한문학당’을 열었다. 눈이 펑펑 내려 눈사람도 만들고, 눈 쓸기를 하다가 눈싸움도 하고, 비료포대 썰매도 탔다. 산중에 눈이 오는 풍경은 신선들이나 사는 선경(仙境) 그 자체다. 달마산 꼭대기 바위에 하얀 눈옷, 나뭇가지에 가늘게 쌓인 눈꽃, 이 아름다운 광경을 아이들 가슴에 폭 담아주고 싶어서 함께 실컷 즐겼다.
 
입춘과 우수가 지났지만 아직은 이른 봄에 열다섯 명의 세속 수행자들이 참선 수행을 위해 찾아왔다. 8일 동안의 참선집중수행 ‘참사람의 향기’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마음을 비우는 하심(下心)을 주문한다. ‘무문관(無門關)’이라는 이름으로 1.5평의 독방에 7일 동안 가두고, 하루 두 끼 밥만 배식구에 넣어준다. 오직 하는 일은 108배와 참선뿐이다.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모두 차단하고 오직 자신의 마음으로 자신을 들여다본다(只以自心 反照自心). 아무것도 없는 작은방이라 마음에 따라 방의 빛깔도 금방 달라진다. 화가 나면 탁한 기운으로 가득하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방 또한 고요하다. 진공묘유(眞空妙有), 욕심과 성냄과 고집 속에서는 묘수가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고요한 마음에서 지혜와 자비가 나온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었다.
 
나는 복이 많아서 스승의 인연도 많다. 새해 초입부터 밥값을 하고 사는 데에는 20년 전 백양사에서 모셨던 서옹(西翁·1912~2003) 스님과 인연 덕분이다. 스님이 87세 되던 해인 1997년 봄에 백양사에서 부름을 받고 뵈었다. 이런 말씀들을 들려주셨다.
 
 
IMF 실직자 위한 수련회 열어
2003년 92세로 ‘가부좌 입적’한 서옹 스님의 다비식.

2003년 92세로 ‘가부좌 입적’한 서옹 스님의 다비식.

“현대사회의 병폐는 서구 문명의 발달을 통해 봐야 합니다. 농경사회 이후 산업화되면서 생산물이 많아지고 집단생활이 강화되면서 욕망이 커지게 됐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인간은 신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인간주의는 다시 욕망철학을 배태했습니다. 쇼펜하우워와 포이에르바하에서 시작된 욕망철학은 생명관을 욕망적 인간으로 전락시켰죠. 반면 불교는 욕망에 얽매이면 생사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웠습니다. 시간 공간을 초월해 영원히 자유자재한 생명체의 존엄성을 일깨운 것이죠. 존엄한 생명관을 갖는 것이 불교인 반면, 과학문명에는 생명관이 없습니다. 생명관이 없이는 인간존재는 주체성을 찾을 수 없고 인간과 인간 간의 질서를 구현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역사관은 현실을 분열과 대립으로 봅니다. 의견이 다르거나 이해관계가 다르면 투쟁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그래서 1차대전이 생기고 2차대전이 생겼습니다. 만약 우리가 오늘날 같은 역사관을 지속하면 결국 인류는 멸망할 것이며 지구는 죽음의 사막이 될 것입니다. 과학력이 우리를 참혹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유니텔동우회 대상 설법. 1999.11)
 
죽비와 염주 등 간소한 스님의 유품. [사진 금강 스님]

죽비와 염주 등 간소한 스님의 유품. [사진 금강 스님]

그때 나는 불교 교단 내부의 비종교적인 부분에 대한 실망과 개인의 부족한 수행에 관한 고민으로 가득했을 때였다. 90세 노승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현실 세계의 진단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걱정은 개인 문제에 갇혀 허덕이는 젊은 납자의 두 무릎을 여지없이 꿇게 만들었다. 큰 스승의 안목은 개인을 뛰어넘어 인류의 미래를 살피는 자비심이 매 순간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실이 분열되고 대립됐지만 하나로 통하고 사람의 본래의 참모습은 자비로 꽉 차 있다. 의견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달라도 서로 위하는 마음으로 해결하려는 본래 바탕의 참사람 정신이 있으면 세계는 평화가 올 것이다. 동양의 참사람 그리고 한국의 선을 바탕으로 한 ‘참사람 운동’을 하자는 말씀에 일생의 큰 숙제가 되었다.
 
1998년 2월 어느 날 아침 공양을 마치고는 88세의 노구에도 신문의 깨알같이 작은 기사들을 보시고는 부르셨다.
 
“IMF 외환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실직이 되고, 길거리의 노숙자가 되고,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것은 나라의 큰 위기이다. 우리가 소위 종교인이며 정신적 지도자인데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 생각 없이 하루가 훌쩍 흘렀다. 다음 날 아침에 또 부르신다. 아차! 싶었다. 그때서야 어제의 말씀이 떠올랐다. 방에 들어서 절을 올리기도 전에 물으셨다.
 
“어찌 생각해 봤는가.”
 
“아니요 아직.”
 
머뭇거리는 순간 불호령이 떨어진다.
 
“나가.”
 
깜짝 놀랐다. 세 번의 호통을 더 들은 뒤에서야 겨우 ‘IMF 실직자를 위한 단기출가수련회’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했다. ‘자비보살’ ‘천진불’로 통하는 어른의 호통은 지금도 머뭇거리는 순간이면 귀에 큰 죽비소리로 들린다. 그 사건을 계기로 자살을 생각하는 많은 실직자들을 희망있는 삶으로 되돌리는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의사만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도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스님들보다 세상 사람들에게 수행이 필요하구나. 세상 사람들의 수행을 돕는 일에 평생을 매진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게 되었다.
 
서옹 스님은 1912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의 양정고보를 졸업하고, 양친과 조부의 죽음에 무상(無常)을 접한 뒤 불교 공부를 통하여 해결하고자 중앙불교전문학교(동국대 전신)에 입학했다. 재학 중에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만암 스님을 만나 출가하며 제자가 되었고, 당대 최고의 선지식인 한암 스님 문하에서 참선 수행을 했다.
 
“만암 스님은 말씀을 하면 꼭 실천을 했습니다. 작은 일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지. 한암 스님은 모든 생활이 말 그대로 여법(如法)하셨어. 불법 그대로 수행하는 한암 스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 (‘한국불교 禪匠을 찾아서’ 2003년 불교신문 인터뷰)
 
일찍이 안목 높은 언행일치의 두 스승을 만나 참선을 배웠다. 또 묘심사에서 한숨도 자지 않고 삼 년 동안 용맹정진한 모습은 전설이 되어 후학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 임제대학에서의 졸업논문인 ‘진실자기(眞實自己)’는 교토학파의 선사상을 비판한 내용으로 한때 대학원 교재로까지 활용되었다. 한국전쟁 중에도 성철, 향곡 스님과 더불어 한국선의 전통을 살리기 위해 선원을 개설하고 정진했다. 삼매 수행을 시험한다며, 맹장 수술을 마취 없이 하는 객기도 있으신 분이다.
 
스님은 50대 초반부터 한국선의 큰 스승으로 역할을 했다. 동국대학교 선원, 천축사 무문관, 동화사·봉암사 선원의 조실을 지내며 후학들을 지도했다. 63세 때에는 제5대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됐다. 92세로 열반했는데, 이틀 전부터 예고하고,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하고 입적했다.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순간에도 자유자재한 모습으로 법문을 했다.
 
“자연을 파괴하지 말고, 물질문명만 좇지 말고, 자비심에 기반을 두어 살면 아름답고 훌륭한 삶이 가능합니다.”
 
화답으로 온 산이 흰 눈으로 가득한 날 붉은 장작더미 주변으로 수천 명의 군중들이 모였다. 스승이 없는 시대에 40년 동안이나 큰 스승의 역할을 하신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배웅했다.
 
 
53명의 스승 찾아가 구도 행각
스승을 찾아 떠나는 여행기로 가장 유명한 책이 『화엄경』 ‘입법계품’이다. 53명의 스승을 차례로 찾아가 그때마다 새로운 눈을 뜨게 되는 간절한 구도 행각이다. 인간의 삶에서 스승의 존재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스승들은 바른길을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자아에 눈을 뜨게 해준다. 진리를 탐구하고 구현하는 구도의 길에서는 사회적인 신분이나 지위를 물을 것 없이 자신이 업으로 하는 그 길에 통달한 사람이면 누구나 스승이 될 수 있다. 인생길에서 스승을 만나는 기회는 가장 큰 행운이다. 서옹 스님을 만나 “일생동안 세상 사람들의 수행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할 일을 찾은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인생의 큰 선지식을 만나길 빈다.
 
 
금강 스님 해남 미황사 주지
해남 미황사 주지. 달라이라마방한추진회 상임대표. 열 일곱살에 출가, 대흥사·해인사·양사 등에서 공부했으며, 실직자단기출가수련회·무문관·참사람의 향기·템플스테이 등에서 20년간 선 수행 지도. 틱낫한, 툽텐가쵸, 노먼 피셔와 같은 외국의 선 스승들을 한국에 소개했다. 저서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물 흐르고 꽃은 피네』
욕망으로 살면 자기 이외 존재를 ‘소유물’로 착각
 과학문명이 대단히 발달해 물질은 풍부하고, 교통 또한 편리해졌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챙길 수가 없을 정도로 정보도 홍수같이 밀어닥치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중심을 잃고, 주체성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심을 잃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은 욕망에 따라,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있습니다. 주체성 없이 욕망에 끌려다니게 됐다는 거죠. 욕망으로 살면 자기 이외 존재를 ‘자기 소유물’ ‘욕망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이기적이 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알력이 생기고, 혼란이 파생됩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욕망에 끌려다니는 삶을 극복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서옹 스님 설법 ‘욕망 버리고 믿음 가질 때 참사람’ 중. 2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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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