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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의 눈물, 컬링 도장깨기 … 경쟁 즐긴 그들 평창 스토리 쓰다

국회의원 특혜, 체육회장 막말 사라져야 
“웨어 아 유 프롬?” 바다를 건너간 한국인에게 이 질문은 때로 당혹스럽다. “아엠 프롬 코리아”라고 당연하고 당당하게 대답하면 반드시 다음 질문이 뒤따른다. “노스 오어 사우스?” 대답은 정해져 있지만 대한민국이 두 개의 호칭으로 불리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무엇보다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는 분단의 현실이 자존심을 다치게 한다. 외국인에게 분단은 대치를 의미하고, 대치는 미구에 찾아올 충돌 혹은 전쟁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 반도의 남쪽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외국에서 맞는 자국의 올림픽은 감회가 남다르다. 진작부터 숨겨놓은 자랑거리를 꺼내는 소년의 심정이 그럴 것이다. 한편으로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개막식이 행여 ‘우리도 이제 살 만하다’는 개도국의 얼치기 국가 선전이면 어쩌나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그런 전례가 잔상으로 남아 있어 BBC의 개막식 생중계는 학예회에 참석한 학부모의 심정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그러나 “뷰티풀!” “어메이징!” “판타스틱!”을 쉴 새 없이 외치는 영국 국영방송의 중계 멘트가 이어지면서 오히려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우선 호들갑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아름다운 것도 너무 많이 드러내면 경박하고 또 너무 많이 감추어도 미진한 법이다. 성화의 불꽃을 담은 백자 항아리의 간결하면서 우아한 절제의 미학이 개막식의 전 과정에 투영돼 있었다. 인면조의 등장에서부터 아리랑과 드론의 퍼포먼스, 그리고 김연아의 최종 점화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가 세계에 발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특히 드론이 만든 밤하늘의 오륜은 영국에서도 그래픽으로 오해받을 만큼 정교한 과학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우리가 해 왔고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세련되게 표현한 평창의 개막식은 조금 우쭐거려도 좋을 만큼 대견한 것이었다. 섣불리 인류의 미래를 말하려 했다면 그 담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을 터였다. 전 과정을 관통했던 평화의 메시지는 간결해서 더욱 빛났다.
 
분단의 대한민국이 인류에 발신할 수 있는 최대의 가치는 평화다. 남북 선수가 맞잡은 한반도기는 그 가치의 아름다운 물증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하여 분단이 전쟁의 징후가 아니라 평화와 통일의 앞 단계라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남북한 공동 입장은 IOC의 올림피즘이라는 ‘명분’과 정치의 남북대화 물꼬라는 ‘실리’가 동시에 획득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BBC가 말한 대로 역사적인 순간임에는 분명하지만 아직 역사가 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세련된 연출과 남북한 공동 입장은 평창을 가장 인상 깊은 올림픽 개막식 중 하나로 만들었을 뿐이라는 BBC의 지적은 그래서 타당하다. 이런 차분한 반응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짧게 보도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남북 공동 입장이 역사적 모멘텀이라면 남북 단일팀은 그것을 위한 불쏘시개에 그친다’는 냉정한 판단이 깔려 있다. 단일팀이 어차피 일회성으로 끝날 깜짝 이벤트라고 생각한 결과는 아닐는지. 그래서 그런지 단일팀을 응원하러 온 북한 응원단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었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두고 국내에서도 말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단일팀 자체를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일어날 정도면 예사롭지 않다 싶었다. 그것도 20∼30대의 청년 세대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을 숨길 수 없었다.
 
이번 올림픽을 바깥에서 지켜보면서 우리나라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자긍심을 수시로 느꼈다. 올림픽을 수용하고 관전하는 국민의 태도에서 사회의 패러다임이 조금씩 변화하는 징후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촛불혁명과 인과관계가 있는지 자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이후에 일어난 변화인 것만은 분명하다. 왜 청년 세대는 여자 단일팀에 반대의 목소리를 냈던 것일까. 혹자는 N포세대의 피해의식이 단일팀 구성으로 피해를 볼 일부 선수와 겹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또 다른 사람은 올림픽과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현상의 모습일 뿐, 정작 젊은 세대가 분노한 것은 ‘절차적 정당성’의 부재였다.
 
절차적 정당성이란 어떤 일에 이르는 순서나 방법이 타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절차적 정당성이 무너진 자리에 ‘특혜’가 들어선다. 특혜는 갑질과 동의어며 갑질은 곧바로 정의를 소환한다.
 
아무리 명분과 결과가 좋아도 그것에 이르는 과정이 정당하지 못하면 이의를 제기하고 따져 물어야 한다. 그래서 단일팀 구성에 제 목소리를 낸 젊은 세대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박영선 의원의 피니시 라인 침범이나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측의 막말이 이슈가 된 것도 그들의 행위에서 특혜와 갑질을 읽었기 때문일 터이다. 특혜와 갑질만큼 스포츠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도 드물다. 그들을 꾸짖고 그들이 사과하는 모습에서 올림픽과 스포츠가 바람직한 것을 추구하는 일반적 정의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어쩌면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는 자긍심이 도덕적 감수성과 시민의식을 강화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올림픽의 긍정적인 변화는 거대담론이 몰락해 가는 징후들에서도 감지됐다. 적어도 겨울올림픽에서 스포츠의 민족주의는 확연히 힘을 잃고 있었다. 올림픽의 금메달 개수와 국력을 같은 값으로 매겼던 시대의 선수 인터뷰는 ‘국민의 성원’과 ‘조국의 영광’이 키워드였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쇼트트랙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임효준의 소감은 “햄버거 하나 먹고 싶다”는 소박한 것이었다. 그 햄버거 하나에는 보통의 욕망을 억제하며 지내 온 시간이 고스란히 함축돼 있었다. 이상화와 고다이라의 축하와 격려는 스포츠가 국가대항전에서 개인의 신체적 탁월성을 겨루는 순수한 경쟁으로 회귀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상화의 뜨거운 눈물에 콧잔등이 시큰해졌던 것이다. 마늘소녀 여자컬링의 인기도 마찬가지다. 경기에 집중하고 경기를 즐기는 진지한 모습과 세계의 강호들을 차례로 물리치는 승수의 축적이 만화와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국민은 그 이야기에 빠졌고 열광했다.
 
그러고 보면 스포츠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든다. 그 이야기를 민족주의 하나로 통합하려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갑질에 지나지 않는다. 젊은 세대의 국가대표 선수에게 민족주의라는 거대담론은 너무 답답하고 무거운 짐이다. 스포츠 자체의 즐거움과 도전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도록 이제 그 짐을 내려놓게 하면 어떨까. 그래야 보는 우리가 편안해질 터이니.
 
 
김정효
영국 카디프메트로폴리탄대
방문교수·체육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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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