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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봉투에 쓴 ‘코 묻은 돈’

일상 프리즘
지난해 말 아들이 결혼하면서 식구가 늘었다. 딸 혼사도 겪어봤지만 아들 결혼은 좀 더 다른 면에서 신경이 쓰였다. 우연히 지인이 아들 둘 키운 집과 딸 둘 키운 집의 차이를 들려줬다. 두 아들과 남편까지 3명의 남자와 살고 있는 부인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다. 반면 딸만 둘 키운 집에선 평소 말소리가 소근소근하는 거 같아 떨어진 자리에선 잘 안 들린다. 어느 집이라도 일부러 화난듯 목소리를 높이거나 반대로 목소리를 낮추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만큼 상대방의 입장을 잘 헤아릴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부인과 상의해 아들 부부에게 결혼식 준비를 전적으로 맡겼다. 아들 내외가 쉽사리 결정을 짓지 못할 때만 도움을 주기로 했다. 예상외의 반응이 나타났다. 아들이 여러가지 상담을 요청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아들과 며느리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아들 내외가 결혼 한 이후에도 거의 간섭하지 않았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만 하고 나머지는 맡겼다. 결혼식 전후로 시부모의 모습이 확 달라져 고부간의 갈등이 커진 사례를 뉴스에서 종종 접했다. 특별히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생각없이 한 행동이나 말이 오해를 불러온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족 식사를 위해 한 달에 몇 번 모여야 한다는 형식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 식사 제안은 물론 집안 제사에 대해서도 일체 꺼내지 않았다. 앞으로 자연스럽게 배우면 된다. 벼락치기 공부하듯 한두번 설명으로 이해될 리 없고 잘못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옛 어른들이 남의 집에서 자기 집 관혼상제를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집안마다 가풍이 다른데다 지역마다 제사상에 올라가는 제수용품도 다르기 때문이다. 단, 아들과 며느리에게 양가에 공평하게 해야한다는 얘기는 했다.
 
각각 다른 가풍에서 20~30년 넘게 교육받고 살아온 사람이 결혼했다고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단번에 바뀔 수 없다. 그런 변화를 새 식구에게 바라는 것은 무리다. 요즘 말로 문화적 충격을 주지 말라는 얘기다. 오히려 새 식구가 새로운 관점에서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미처 못보았던 점을 지적하고 얘기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인가 미국 신문기자가 십계명 원본대로 살아보기 실험을 했는데 며칠을 버티지 못했다는 기사가 떠오른다.
 
새 식구가 들어 오니 소소한 재미도 생긴다. 그동안 아들이 용돈이라고 집사람 은행 계좌로 얼마씩 보내곤 했다. 며느리가 들어오니 방법이 바뀌었다. 아들 내외가 보자고 해서 만났더니 식사 후에 며느리가 머뭇거리며 용돈 봉투를 내밀었다. 그래서 당연히 너의 친정에도 똑같이 하라고 얘기하고 받았다. 전면엔 큰 글씨로 ‘코 묻은 돈’이라고 써 있고, 반대편엔 조그마한 글씨로 ‘딴 것은 안묻었요’라고 적혀 있다. 본인 생각엔 액수도 적고 쑥스럽기도 하니 이렇게 적힌 봉투를 찾아 넣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기발하고 귀여운 애교인가. 우리가 얼마나 서로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최소한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무리한 요구만 자식들에게 하지 않으면 잘 유지해 갈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겸손하고 양보해서 손해보는 일은 없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신경써야 한다. 대부분 남에게는 잘 하는데 유독 가족에게는 대충하는 경향이 있다. 가족이니까 무조건 이해해 줄 거라 믿는다. 하지만 가깝기 때문에 상처가 더 클 수 있다. 이러한 것을 공기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있을 때는 당연하지만 없어지면 대체제가 없고 고통스럽다. 유행가 가사도 있지 않은가. “있을 때 잘 해, 후회하지 말고~.”
 
 
안규문
코벤티아 상임고문 (전 밀레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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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