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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 "도련님" 극진한 모친···이윤택, 어떻게 '괴물'이 됐나

“도련님” 소리 듣고 자란 이윤택 … 몹쓸 짓 따지면 “난 특별, 좀 봐주라”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문화예술계 등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미투 운동’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여러 증언을 통해 드러난 연출가 이윤택(66)의 행적은 성폭력의 정도, 상습성, 피해자 규모 등에서 여타 사건과 비교가 어려울 만큼 충격적이다. 인간 이윤택은 어떻게 ‘괴물’이 됐나. 그가 창단하고 운영한 극단 연희단거리패는 어떤 곳인가. 단원들은 왜 이씨의 이 같은 행각을 은폐하면서 연극을 해왔을까.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봇물 터진 미투] ‘문화 게릴라’서 ‘괴물’이 된 사내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극단 내에서 18년 가까이 진행된 관습적으로 일어난 아주 나쁜 행태”라고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어떻게 18년간 성범죄를 이어갈 수 있었을까. 중앙SUNDAY는 연희단거리패 전·현직 단원 3명, 또한 이씨와 극단을 잘 알고 있는 연극계 인사 2명을 인터뷰했다. 모두 익명을 전제로 응했다.
 
#“난 특별하잖아, 그러니 봐주라”=이씨 개인사와 관련, 주변 인사들은 한결같이 “어머니가 (이윤택) 선생님을 끔찍하게 대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떠돌이 장사꾼으로 한 달에 기껏해야 한두 번 집에 들어왔고, 어머니가 행상하며 외아들인 이씨를 키웠다. 어머니는 괄괄한 성격이었지만 아들에겐 “도련님”이라 부르며 늘 존댓말을 썼다. “너는 남들과 다른 존재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식탁에 돼지고기가 올라오면 “이딴 거 치워라. 우리 아들은 쇠고기만 먹여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의 유별난 아들 사랑은 이씨가 쓴 책 『결국 삶이다』에도 기술돼 있다. “서너 살 무렵 어머니와 함께 시장을 지나갈 때 누군가 다가와 ‘아이고 잘 생겼네’라며 저를 만지려 하면, 어머니는 ‘어디서 더러운 손!’ 그러면서 탁 쳐서 물리쳤다.”
 
단원 A는 “선생님은 ‘나는 남들보다 뛰어나다’란 선민의식이 강했다. 예전에도 ‘몹쓸 짓’ 때문에 따지러 가면 고개를 숙이다가도 ‘미안한데 난 특별하잖아. 그러니 좀 봐 주라’라고 눙쳤다”고 전했다.
 
#스타 용납하지 않는 에고이스트=이씨는 기자들 사이에 “말하는 대로 받아쓰면 다 기사가 된다”는 말이 나올 만큼 달변이었다. 말을 잘할 뿐 아니라 핵심을 콕콕 찔렀다. 연극계 인사 D는 “사람을 하도 들었다 놨다 해, 오래 있다 보면 정신이 쏙 빠진다. 무당같다”고 전했다.
 
이재(理財)에도 밝았다. 연희단거리패 이외에도 전국에 걸쳐 밀양연극촌·김해 도요창작 스튜디오·서울 30스튜디오·부산 가맛골소극장 등을 한꺼번에 운영했다. 지자체의 지원이 있었지만 평범한 연극인이라면 흉내 내기 힘든 스케일이었다. 돈이 되는 일이면 지자체 행사, 소규모 축제 참가 등 가리지 않았다.
 
대신 비용은 최대한 줄였다. 단원은 배우이자 스태프였다. 무대·소품 제작은 물론 포스터 디자인까지 했다. 단원 B는 “극단은 공연팀·연습팀·행사팀으로 나뉘어 정신없이 돌아갔다. 낮엔 연습하고, 밤에는 무대를 만들어야 했기에 잠들 무렵엔 녹초가 되곤 했다”고 전했다.
 
대신 월급을 지급했다. 단원 C는 “다른 극단은 작품을 해야 출연료 명목으로 얼마 받지 않나. 우린 ‘연희단거리패’라는 이름값에, 작지만 꼬박꼬박 돈까지 들어오니 자부심이 컸다”고 했다.
 
배우들 쥐락펴락에도 능했다. 이씨는 86년 부산에서 연극을 시작해 90년대 초 전통 굿을 바탕으로 한 실험극을 들고 서울에 진출했다. 극단 내부는 자연히 부산 ‘가마골 소극장’파와 서울 ‘우리극연구소’파로 양분됐다. 이씨는 “무지렁이들” “싸가지들”이라고 양쪽을 핀잔 주며 경쟁을 유도했다.
 
하지만 스타를 키워내지는 않았다. ‘이윤택의 페르소나’로 불렸던 배우 김소희 역시 단역으로 출연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연극계 인사 E는 “이씨가 ‘배우는 머리 크면 무조건 떠난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지독한 에고이스트”라고 했다.
 
#연극 공동체에서 성폭력 진원지로 전락=99년 이씨는 “폐교를 활용해 보라”는 제안을 받고 단원 30명을 데리고 경남 밀양으로 내려갔다. 폐교에 보일러를 깔고 벽돌을 쌓았다. 교실 두 개를 터서 연습장을 만들고, 교장 관사와 관리인 방을 숙소로 썼다. 여기서 같이 먹고 자면서 작품을 만들고 연습했다. “일상과 연극이 분리돼선 안 된다”는 게 이씨의 철학이었다. 게다가 만드는 작품마다 호평이 쏟아지자 밀양은 이상적 연극공동체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윤택 성폭력의 진원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단원 C는 “외딴 곳에 우리만 따로 떨어져 살지 않나. 선생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군주 같았다”고 했다. 성폭력은 안마를 빌미로 행해졌다. 이씨는 자주 “너희들이 돌봐주지 않으면, 나 밤에 자다가 죽을지 몰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단원 B는 “종일 우리 연습시키느라 소리 질러 힘드신 선생님이니, 그때는 당연히 안마해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윤택이 성추행을 한 밀양연극촌 내 황토방.

이윤택이 성추행을 한 밀양연극촌 내 황토방.

성추행에 대한 문제의식도 약했다고 토로했다. 단원 C는 “방에 들어갔다 나와 우는 애가 있으면 ‘노인네 진짜 주책이야’라고만 생각했다. 혹시 소문 나서 선생님 가족이 알면 어떡할까를 우리가 걱정했다”고 전했다.  
 
안마의 문제점이 내부적으로 공론화된 건 2012년이었다고 한다. 당시 이씨는 일부 단원들 앞에서 “다신 그러지 않겠다”는 공개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선 발성훈련을 빙자했다. 속옷 밑으로 손을 넣고, 공연 직전 생리 중인 여배우에게 남자 분장실에서 옷을 홀딱 벗겼다는 증언도 나왔다. 단원 B는 “신체를 깜짝 놀라게 해 발성을 트이게 하는 선생님 방법이 나름의 효과가 있다는 데엔 동의한다. 진짜 소리가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럼 공개적으로 해야지 왜 분장실에서 둘만 있을 때 하나. 명백히 추행”이라고 했다.
 
이씨는 “야, 네가 여기 나가면 잘될 것 같아”라는 말을 자주 내뱉었다고 한다. 단원 A는 “나가면 × 된다는 건 공포를 넘어 세뇌가 됐다. 연극계를 아예 떠날 생각이 아니면, 성 추문을 떠드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씨는 지난해 미국에서 ‘미투 운동’이 불어올 때부터 내심 불안해했다고 한다. 단원 C는 “사건이 터지자 ‘난 이제 감옥 갈 테니 너희끼리 잘 해봐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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