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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은 기회…비핵화 솔루션, 북핵 동결서 출발할 수 있을 것"

김진국 기자 사진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열변을 토하는 청년. 이인영(54)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직도 그 강렬한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1987년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1기 의장으로 6월 항쟁을 이끈 주역이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3기 의장이다. 이 의원에게 그것은 영광이자, 부채다. 그는 “6월 항쟁 승리의 주역이라는 것은 제 삶의 자부심이고, 그해 대선에서 패배한 것은 또 제 삶의 멍에”라고 말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그는 투사라기보다 꼿꼿한 선비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의 말은 조용하면서도 단호했다. 사무실은 장식 없이 일하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민주화운동의 제사장처럼, 6월 항쟁이나 전대협의 가치를 수호하려고, 저를 덜 타락시키려고 아등바등했다”고 털어놨다.
지난 5일 인터뷰를 한 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했다. 그래서 21일 몇 가지를 더 물었다. 30년 전 87년 헌법을 탄생시킨 주역인 그는 다시 개헌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국회 헌법개정특위 민주당 측 간사다. 그는 “3월 15일 발의하면 되니까 87년에 핵심 쟁점을 타결하던 그런 시간으로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개헌은 왜 해야 합니까?

“이주영 전 개헌특위 위원장의 말이 맞습니다.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겁니다. 30년 전과는 시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정보사회로 아주 깊숙이 진입했습니다. 환경문제도 그때는 누구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4차 산업 혁명은 명백하게 노동문제, 소득문제를 변화시킬 테니까, 그런 가치 규범 체계가 우리 헌법으로는 할 수 없죠.”
그런 부분을 굳이 헌법으로 규정해야 합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몸에 꽉 끼는 옷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만. 또 하나는 자치 분권을 더 늦추기 어렵습니다. 지방자치를 많이 발전시켜왔는데 법으로는 더는 안 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자치 입법권, 자치 조세권 같은 건 헌법으로 풀어야 합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일 ’전대협을 주사파가 장악한 조직, 심지어 종북 조직이라고 하는데 몇몇 간부들이 그런 흐름을 가졌는지 따져볼 수 있겠지만, 전대협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다. 임현동 기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일 ’전대협을 주사파가 장악한 조직, 심지어 종북 조직이라고 하는데 몇몇 간부들이 그런 흐름을 가졌는지 따져볼 수 있겠지만, 전대협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다. 임현동 기자

그는 그다음에야 권력구조를 들었다.
“정치 갈등이 반복되는 악순환 구조를 헌법으로 풀어야 합니다. 과도하게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되면서 죽기 살기로 싸움이 반복되고, 지역 간 갈등이 반복되고… 이런 것들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써야 합니다. 정상적인 삼권분립이 아닙니다.”
‘4년 중임제’가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할 수 있나요?
“더 좋은 대통령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세팅할 거냐. 첫째, 4년 중임제를 하고, 둘째, 의회와 지방에 권한을 더 분산하고, 셋째, 삼권 분립의 민주적 시스템을 다시 짜는 거죠.”
국회에 무슨 권한을 더 넘긴다는 겁니까?
“입법권은 국회 고유 권한인데 지금은 정부가 더 결정력이 강하죠. 이전에는 국회가 ‘통법부(通法部)’ 아니었습니까. 과도하게 침해되는 입법권을 국회로 이동시켜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의원에게 했듯이 국회 요구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일은 없어질 수 있습니다. 정부의 예산 ‘증액 동의권’을 폐지하는 것도 굉장히 큰 겁니다.”
민주당 의원들도 분권형 지지가 많지 않나요?
“실질적인 분권을 놓고 개헌특위에서 토론을 해보니 다시 나뉘더라고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임기만 연장하는 것이 아닌데도 임기만 연장하는 것이라고 자꾸 이상한 프레임을 건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원제로 머리가 두 개가 되면 엄청난 정치적 갈등과 혼란이 초래됩니다. 대통령은 개성공단 하자고 하고, 총리는 하지 말자고 하고. 이게 가능한 것이냐….”
정치를 왜 하셨습니까?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에서 정치에 참여했습니다. 97년 (김대중 정부로) 정권교체가 되고 나서 민주화운동 선배들이 ‘이제 재야운동보다 정치 영역이 굉장히 중요하다. 공동정권 내 민주세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재야운동을 시민사회운동으로 전환해놓고 정치에 참여한 겁니다.”
그는 고(故) 김근태 의원의 권유로 1999년 김대중 총재의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구로갑에 출마해 떨어지고, 17대에 당선됐다. 그 이후 이 지역에서 19, 20대까지 3선 했다.
변혁운동과 제도권 정치가 어떻게 달랐나요?
“자신도 바뀌어야 할 테고,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달라지고…. 기본정신을 똑같이 유지하는 게 참 힘들더라고요. 운동은 100% 순결한 이야기를 해도 되지만, 정치는 한 51% 정도부터는 실현해야 한다. 그런 차이는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도 100%는 못해도, 70~80% 정도는 실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선배들은 50%라도 실현해야 한다고 해서 처음에는 적응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중보다 반 발자국만 앞서가라’고 했는데.
“지나고 보면 그게 단지 퍼센트의 문제가 아니라 초심(初心)도 이동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게 저한테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방선거가 지나 정치세력이나 유력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개헌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방선거가 지나 정치세력이나 유력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개헌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너무 오래 운동권의 순결성에 집착해온 것 아닌가요?
“2017년 6월 항쟁 30주년이 되면 ‘내가 잘했건 잘못했건, 세상이 한 번 더 바뀌건 안 바뀌건 그것을 털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0년 동안 아등바등했는데, 우리가 더 높은 수준으로 못 가면, 나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너 이제 좀 편하게 살아라.’ 이런 이야기를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의 흐름이 정말 기적처럼 좋은 선물로 왔습니다. 촛불이 더 좋은 세상을 보여주었고, 더 훌륭한 시민들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6월 항쟁을 졸업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8월 13일간 민통선 335㎞를 횡단했다. 강원 고성의 통일전망대에서 파주 임진각까지.
“통일이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통일이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통일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는 상징으로 비무장지대(DMZ)를 걷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냉엄한 현실 속에서 우리 땅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민통선이라도 걸었습니다. 그때 마침 긴장이 높아졌습니다. 마음속으로 그랬습니다. ‘북은 미사일을 쏘아도 우리는 평화를 쏘아야 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실험하고, 미사일을 쏘는데 ‘평화를 쏴야 한다’는 말이 일반인에게 먹힐까요?
“일반 시각에서 보면 ‘똘끼’ 충만한 거죠. 그런데 저는 정말 그랬습니다.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만이 정의롭고, 끝내 승리한다는 확신 같은 겁니다. 그 여름을 잘 넘겨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이고. 그 외에 제가 할 수 있었던 몸짓들이 없었습니다. 평창이 우리에게는 그 기회다. 그렇게 말했죠.”
이인영 민주당 의원과 일행이 지난해 8월 비를 맞으며 강원도 화천에서 철원까지 민통선을 따라 걷고 있다. 이 의원 일행은 13일 간 민통선을 종단했다. [이인영 의원 페이스북]

이인영 민주당 의원과 일행이 지난해 8월 비를 맞으며 강원도 화천에서 철원까지 민통선을 따라 걷고 있다. 이 의원 일행은 13일 간 민통선을 종단했다. [이인영 의원 페이스북]

종교인이라면 순교하면 되지만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정치인은 안심시킬 비전을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일관되게 했죠. 대화와 협상을 병행해라. 언젠가 그 기회는 온다. 북의 핵과 미사일 기술이 어느 정도 고도화돼서, 그들이 표현하는 ‘핵 정치 1단계’가 마무리되고 나면, 국면이 바뀐다. 북미 협상이 되면 남ㆍ북 대화는 당연히 진행될 것이고, 북ㆍ미 대화의 문이 닫혀 긴장 대치국면이 장기화 고착화되면 그럴수록 북은 남쪽을 거쳐서 미국으로 가는…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가 온다. 이것을 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북한은 핵 문제는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잖아요.
“네. 그래서 그 여름을 잘 넘겨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이고. 평창이 우리에게는 기회다. 이렇게 말했죠. 우리는 핵을 용인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데, 80년부터 일관되게 비핵화 원칙을 고수해 왔습니다. 북에 메시지를 줄 때도 ‘비핵화의 원칙은 당신 할아버지 때부터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통미봉남(通美封南)도 안 맞고, 핵을 더 발전시키는 것도 안 맞는다.’ 어떻게 하든 대화ㆍ협상으로 나오게 해서 중ㆍ장기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평창이 기회라고 했는데, 북한이 문 대통령을 초청했네요. 그런데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왜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말했다고 생각합니까?
“지금은 좀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한 것 같은데… 저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만나야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너무 선후(先後)의 문제로 생각하지 말자. 이런 생각입니다. 여건이 되어야 만날 수 있지만 만나서 여건을 더 좋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여건’은 뭘 말합니까?
“미국하고 충분히 서로 신뢰하면서 공조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기획해서 어떤 솔루션(해법)도 있어야 하는 거고. 비핵화의 솔루션이 우리로서는 핵동결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런 부분들도 우선 이야기돼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우리는 핵 동결이고, 미국은 핵 폐기를 전제로 하고 있으니, 그 간격에 대해 신뢰 관계가 금 가지 않는 선에서 충분히 조율되어야 하겠죠.”
이인영 후보(오른쪽)가 2015년 2월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표를 축하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인영 후보(오른쪽)가 2015년 2월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표를 축하하고 있다. [중앙포토]

북한의 우려를 생각하면 미국이 보장해줘야 협상에 성공할 수 있지 않나요?
“당장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고 남북 관계를 몽땅 여기서 중단하고 있는 것이 좋으냐. 이런 생각은 해봐야죠. 남북 관계가 발전하는 게 북·미 관계가 발전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가 핵 동결에서 출발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핵 폐기로 가는 여건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고, 이런 부분들을 서로 충분히 소통하고 신뢰 관계가 확보한 상태에서 공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북정상회담을 한다면 무엇을 얻어내야 합니까?
“숭늉을 만드는 것 자체가 기적이죠. 지금 우리한테는 작은 기적, 큰 기적, 많은 기적이 필요합니다. 기적이 일상화돼야 평화인 거죠. 날마다 작은 기적이 평창의 평화를 만드는 것 아닙니까?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문제들은 핵 동결로부터 남북관계 개선의 여지를 만들 수 있는가. 이게 중요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핵 동결 자체도 크니까요.”
그건 시작이지, 받아낼 내용은 아니지 않나요?
“핵이 더 발전해 파괴력이 커지고, 미사일 사거리도 길어지고, 때로는 핵 유출도 생기고… 이러면 핵 동결 상황하고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에 핵 동결 자체가 작은 게 아닙니다. 핵 동결이 당연히 시작이고, 여기서 시작해서 남북관계가 얼마나 발전하느냐, 여기에 맞춰서 북·미 관계 개선이나 궁극적으로 핵 폐기 가능성도 열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대화로 선회한 것은 미국의 압박 전략의 성공이라는 분석도 있는데.
“그 점도 있을 거고. 우리의 일관된 노력도 중요한 것 아닌가요? 우리가 제재 공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에서 일관되게 대화 협상의 여지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 부분은 사실이잖아요? 그런 것들을 결코 소홀히 평가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는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 통일로 더 커지는 대한민국을 꿈꾼다”면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회적 대타협’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노동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법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는 사회적 협약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주체들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대화하고, 조정하고, 타협하면서, 때로는 양보하고… 그럴 수 있는 길들을 찾는 것이 촛불이 만들어낸 민주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이인영 의원(오른쪽)이 1994년 4월19일 고려대교정에서 문익환 목사(왼쪽)의주례로 전민련 활동 중 만난 이해학 목사의 딸 도레 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중앙포토]

이인영 의원(오른쪽)이 1994년 4월19일 고려대교정에서 문익환 목사(왼쪽)의주례로 전민련 활동 중 만난 이해학 목사의 딸 도레 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중앙포토]

 

[S BOX] 80년대 전대협 친북일 수 있지만 종북은 아니다
이인영 의원은 충주고를 졸업할 때 교사가 되려 했다. 그러나 1984년 고려대 국문과에 입학한 뒤 ‘광주 백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영화 ‘1987’과 같다. 그는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거쳐 87년 전대협 1기 의장이 됐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은 ‘주사(주체사상)파’라는 공격을 받아왔다. 그는 “전대협을 주사파가 장악한 조직이다. 심지어 종북 조직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그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사파 배후로 알려진 ‘반미(反美)청년회’에 대해서도 “나는 그 쪽과 관계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몇몇 간부나 라인이 그런 흐름을 가졌는지 따져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대협은 대중조직체입니다. 심지어 비밀활동을 했던 어떤 흐름이 학생운동에 개입할 때 정확하게 스스로 퇴치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전대협 의장할 때는 제가 주인이 되어서 판단했습니다. 2명 중 1명은 6월 항쟁에 참여했습니다. 총학생회로 할 수 있는데 왜 비밀조직이 따로 있어야 합니까.”
 
그는 검찰 조사 때 “어쩌면 나는 친북일 수 있겠다”고 말하니까 검사가 자백을 받았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통일을 하려면 연합이든 단결이든 있을 수밖에 없고….그러면 우리가 연북(連北)하고, 친북하고, 이렇게 보이고, 그걸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릴 종북(從北)을 만들면 안 된다. 그렇게 말했죠.”
※이영현 사원이 녹취와 동영상 제작을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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