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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강남은 재건축으로 수억 벌어” vs “돈 없는 노인·신혼부부 다 쫓겨나”

상계주공 재건축 ‘민민 갈등’ 
 
1987년 입주를 시작한 서울 노원구 상계 주공아파트 전경.

1987년 입주를 시작한 서울 노원구 상계 주공아파트 전경.

“여기서 한 번 살아 보세요. 수도관에선 녹물이 나오고 위층 기침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예요. 도로도 다 깨져서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 어려워요.” (상계주공 5단지 주민)
 
“건물은 튼튼합니다. 수도관만 교체하면 살기에 문제없어요. 재건축하면 여기서 사는 세입자, 노인, 신혼부부는 다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상계주공 2단지 주민)
 
두 개의 시선, 엇갈린 목소리. 재건축을 놓고 서울 노원구 상계 주공아파트(이하 상계주공) 주민은 둘로 갈라져 있었다. 삶의 터전을 놓고 벌이는 ‘민민(民民) 갈등’의 골은 깊었다. 누가 옳고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어서 해답을 찾기도 어려워 보였다. 재건축의 딜레마다.
 
상계 주공아파트는 상계동 철거민들의 눈물 위에 세워졌다. 1984년 철거 반대 시위 현장. [중앙포토]

상계 주공아파트는 상계동 철거민들의 눈물 위에 세워졌다. 1984년 철거 반대 시위 현장. [중앙포토]

상계주공은 1980년대 후반에 지어졌다. 전두환 정부의 주택 500만 호 건설 계획에 따라 상계동 배밭과 레미콘 공장, 빈민촌을 허물고 벽돌 3억장과 철근 11만t을 쏟아부어 대단지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상계동 빈민은 철거민 신세로 전락해 동네를 떠나야 했다. 상계주공에는 현재 1~16단지에 3만여 가구가 산다. 첫 입주가 시작된 건 87년 11월이다. 2·3·5단지 5000여 가구는 이미 재건축 연한 30년을 채웠다. 연한이 다시 늘지 않는다면 오는 5월에 1·4·6단지도 재건축 대상이 된다. 가을이 오기 전까지는 13~14단지를 제외한 모든 단지에서 재건축을 할 수 있다.
 
이 동네 집값은 십수 년 동안 잠잠했다. 그러다 2014년 중반부터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11단지 인근에 있는 A공인중개사 대표는 “40년이던 재건축 연한이 30년으로 단축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때와 딱 떨어진다”고 말했다(박근혜 정부는 2014년 9·1 부동산 대책에서 재건축 연한을 30년으로 줄였다).
 
지난해 상계주공 집값은 한 주민의 말을 빌리면 ‘무섭게’ 올랐다. 지난해 전국에서 아파트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상위 10개 단지 중 4곳이 상계주공이었다(부동산 114). 2단지는 35%, 3단지는 40%나 올랐다. 나머지 단지도 10~30%씩 집값이 뛰었다.
 
2단지에서 만난 한 주민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상계주공 1호 입주자 국승택씨가 2단지 아파트를 바라보고 있다. [김태윤 기자]

상계주공 1호 입주자 국승택씨가 2단지 아파트를 바라보고 있다. [김태윤 기자]

“외지인들이 몰려와 매물이 나오게 무섭게 사들였어요. 이 동네에선 강남 복부인 다섯 명이 2~6단지에 나오는 매물을 싹쓸이했다는 소문도 돌았죠. 가격이 얼마여도 상관없으니 매물이 나오면 무조건 넘기라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외지인의 뜨거운 투자(또는 투기) 열기와 달리, 상계주공의 재건축 추진 속도는 더딘 편이다. 16개 단지 중 재건축의 첫 관문이 안전진단을 했거나 신청한 곳은 5·8단지 두 곳뿐이다. 5층짜리 아파트로 지어진 8단지는 재건축 연한과 상관없이 안전에 위험이 있다는 진단에 따라 이미 철거가 시작됐다.
 
5단지는 지난해 9월 안전진단 신청을 했고, 현재 정밀진단이 진행 중이다. 재건축 연한을 채운 2·3단지를 비롯한 다른 단지들은 속속 재건축 추진 준비위원회를 구성하는 중이다.
 
재건축을 원하는 주민들은 간절해 보였다. 21일 5단지에서 만난 주민 김종찬 씨는 “주차할 곳도 부족하고 건물이 낡아 재건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가 안전진단을 강화한다는데 장관더러 이곳에 한 번 와보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했다.
 
상계 주공아파트 현황

상계 주공아파트 현황

4단지에 사는 한 주민은 “상계주공에 이사 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내부 수리고 주차 공간도 턱없이 부족해 주차 문제를 놓고 주민들 간에 싸움도 잦다”며 “재건축이 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2년부터 상계주공에서 살고 있다는 그는 “강남 사람들은 재건축으로 수억원씩 이익을 본다는데 여기는 철저히 소외돼 있었다”며 “작년에 그나마 집값이 올랐는데 재건축을 못 하게 하면 다시 주저앉을 것”이라고 했다.
 
30대 후반의 한 주민은 “젊은 세대들은 2~3년 불편을 겪더라도 재건축을 해 새 아파트에 살기를 원한다”며 “정부가 강남 투기 잡는다고 재건축 규제를 강화하면 정작 상계주공처럼 재건축이 꼭 필요한 곳이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당장 재건축 절차를 밟아도 5년 이상은 걸릴 텐데 정부가 규제하면 더 늦어질 수밖에 없지 않으냐”며 “너희는 낡은 아파트에서 그냥 살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들의 간절함 못지않게 재건축을 반대하는 주민들 역시 적지 않다. 87년 11월 30일에 상계주공에 1호로 입주해 30년째 살고 있다는 국승택 씨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구조 안전 문제로 상계주공 단지 중 첫 철거를 시작한 8단지. 나머지 단지는 지난해부터 5단지를 시작으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김태윤 기자]

구조 안전 문제로 상계주공 단지 중 첫 철거를 시작한 8단지. 나머지 단지는 지난해부터 5단지를 시작으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김태윤 기자]

“2단지만 해도 2000여 세대 중 60% 이상이 세입자입니다. 집주인들은 여기에 살지 않는 외지인이 많아요. 외지인들은 재건축에 적극적이지만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은 그리 관심이 없어요. 재건축 추진을 주장하는 사람 중에는 재건축 조합을 만들어 이익을 얻으려는 브로커들도 많아요. 일부 세입자는 관리비나 월세를 내지 않고 버티고 삽니다. 집주인 중에는 집 관리를 아예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요. 아파트를 그냥 사고파는 물건으로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그는 재건축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단지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잃는 일이기에 마냥 반길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여기 아파트가 제일 싼 편이에요. 재건축하면 세입자들은 물론 집 한 채 있는 노인들은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소득이 없는 노인들은 안전 진단 비용이나 재건축 부담금도 낼 수 없어요. 더욱이 집을 팔아도 가까운 남양주도 비싸서 못 갑니다. 갈 곳은 서울 외곽 다세대 주택밖에 없어요. 재건축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만, 누구를 위한 재건축인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국 씨는 “상계주공은 벽에 못이 박히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다”며 “낡은 수도관을 고치고 리모델링을 조금 하면 10년, 20년은 더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재건축을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1단지에 사는 한 주민은 “안전 진단 비용이 수억원을 한다는 데 그 돈이 어딨느냐”고 말했다. 다른 단지의 60대 주민은 “당장 한 가구에 100만원 가까이하는 수도관 교체 부담금이 없어 주민들 간에 싸우는데 재건축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아파트 재건축을 시장 수요와 공급의 문제로만 본 것은 아닐까. 투기 또는 재테크의 수단으로만 여긴 것은 아니었을까. 낡은 아파트를 허물고 새 아파트로 변신하는 화려함 뒤에 삶의 기반을 잃어야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외면한 것은 아닐까. 상계주공은 재건축의 깊은 딜레마를 새삼 말해주고 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S BOX] 올해 30년 된 아파트 서울에만 7만5000가구 … 몸값은 최고 13억원 차이
올해 준공한 지 30년이 되는 아파트는 서울에만 7만5000여 가구에 달한다. 1987년 말~88년에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들이다. 상계주공 1~12단지, 15~16단지를 비롯해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7단지와 11~14단지, 송파구 문정동 올림픽훼밀리아파트,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 서초구 서초동 삼풍아파트 등이다. 강남구 압구정동 미성2차와 일원동 개포우성7차 등은 지난해 재건축 연한 30년을 채웠다.
 
같은 서른둥이지만 몸값은 크게 차이가 난다. 상계주공 5단지의 전용면적 31㎡ 시세는 현재 3억원 초반이다. 68㎡는 지난해 4억5000만원 안팎에 거래됐다. 그나마 지난해 30% 가까이 오른 가격이다. 반면 목동신시가지 11단지 66㎡는 2014년 7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9억~10억원으로 올랐다. 51㎡ 호가는 6억~7억원에 형성돼 있다. 올림픽훼밀리아파트 84㎡는 최근 11억~12억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연한 30년을 채운 압구정동 미성2차 74.4㎡형은 2013년 8억~9억원에서 지난해 15억~16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올랐다. 개포우성7차 전용 84㎡형 역시 같은 기간 6억~7억원에서 12억~13억원으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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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