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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아몬드 5개를 점심 도시락으로 싸온 여고생

기자
손민원 사진 손민원
손민원의 성·인권 이야기(3)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젊은이와 노약자, 비장애인과 장애인, 남자와 여자. 모두 다른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들의 인권 이야기, 폭력예방, 성 평등 교육을 통해, 나와 이웃 모든 사람이 가진 자유, 평등, 존엄에 대해 공감하는 힘을 키우기를 소망한다. 강의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목소리를 글을 통해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요즘 인기 웹툰 중 ‘외모 지상주의’란 웹툰이 있다. 이 웹툰 주인공은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로 학교에서 많은 차별을 겪는다. 이 주인공이 키 크고 잘생긴 모습으로 몸이 바뀌면서 주변 사람의 반응이 확 달라지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웹툰 '외모 지상주의'. 웹툰 주인공은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로 학교에서 많은 차별을 받다 키 크고 잘생긴 모습으로 몸이 바뀌면서 주변 사람의 반응이 확 달라지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중앙포토]

웹툰 '외모 지상주의'. 웹툰 주인공은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로 학교에서 많은 차별을 받다 키 크고 잘생긴 모습으로 몸이 바뀌면서 주변 사람의 반응이 확 달라지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중앙포토]

 
아름다운 것은 멋진 것이고,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니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가꾸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사회는 아름다운 것에 훨씬 더 관용적이다. 외모 지상주의의 주인공에게 보여주는 반응처럼.


 
외모지상주의가 만든 성형 공화국
‘외모 지상주의’의 뜻은 외모 차별주의라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외모가 개인의 우열뿐 아니라 인생의 성패까지 좌우한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회 풍조를 말한다.
 
‘외모가 경쟁력이다’ ‘미모는 권력이다’ ‘외모도 스펙이야’라는 말들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 또한 외모를 가꾸기 위한 노력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기꺼이 그 노력에 동참하게 한다. 
 
대부분의 여성은 1년 365일 중 320일은 다이어트하고 나머지 45일 동안은 ‘어쩌지 운동해야 하는데, 다이어트해야 하는데…’ 이런 강박들에 짓눌려 살게 한다. 더구나 외모 지상주의는 대한민국을 최고의 성형 공화국이라는 이름표까지 붙게 했다.
 
 
대부분의 여성은 1년 365일 중 320일은 다이어트하고 나머지 45일 동안은 운동해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려 산다. [중앙포토]

대부분의 여성은 1년 365일 중 320일은 다이어트하고 나머지 45일 동안은 운동해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려 산다. [중앙포토]

 
내가 경험했던 중·고등학교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학교생활 중 행복했던 유일한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던 것 같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학창 생활의 점심시간과 관련된 추억이 많이 있다. 
 
꽃 피는 봄날, 우리 단짝 친구들은 더 멋진 점심을 위해 각자 밥 한 공기와 나물 한 가지씩을 가져오고 한 사람은 양푼을, 한 사람은 참기름을 가져오기로 약속했다. 
 
“수업시간 내내 뒤에 앉아 있는 내 친구 영순이는 어제 싸 왔던 맛있는 참외 장아찌를 또 가져왔을까? 은숙이네 볶은 고추장은 왜 이렇게 맛있지, 나도 엄마에게 볶은 고추장을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보면 배는 더 고파지는데, 4교시 시간은 더욱 멈춰 있는 듯 느껴졌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침과 동시에 학교 뒤 언덕에 뛰어 올라간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양푼을 꺼내고 각자 싸 온 밥과 나물, 참기름을 넣고 쓱쓱 비볐다. 마지막 남은 한 술이라도 더 먹어보려고 기를 썼던 즐거운 추억의 한 장면이다.
 
점심시간이 기다려질 것이라는 마음에 충분히 공감하는 나는 어떤 장소에 가서 강의하더라도 점심시간 전의 강의는 더 일찍 끝내주는 게 강사의 최대 덕목이라 생각하고 일찍 끝내려고 노력한다.
 
몇 달 전 어느 여고에서 교실 강의가 있었다. 강의 제목은 ‘외모 지상주의’라는 주제로 두 시간짜리 강의였다. 5분 일찍 강의를 끝내고 모든 학생이 앞다투어 교실을 빠져나가고, 나는 오늘 점심으로 어떤 혼밥을 먹을까 궁리하는데 한 학생이 홀로 교실에 앉아 있었다.
 
“왜 밥 먹으러 안 갔어?”
“저, 먹을 것 싸 왔어요.”
“그래! 도시락 싸 왔구나! 그런데 왜 안 먹어?”
“벌써 먹었어요.”
“벌써?”
“먹는 거 못 봤는데….”
“아몬드 다섯 개와 요플레요. 저 다이어트해야 하거든요.”
 
 
다이어트 식단. [중앙포토]

다이어트 식단. [중앙포토]

 
헐! 두 시간 동안 “겉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건강함을 잃어서는 안 돼. 건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이 돼야 해”라고 떠들어댔는데…. 이 높은 외모 지상주의의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또 부모의 마음으로 이 아이가 어른이 돼 내 또래의 나이가 된다면 분명 여러 건강상의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을 텐데, 우려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여학생은 내 기준으론 전혀 과체중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그저 통통하고 귀여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내 학교생활의 최대 행복은 점심시간이었는데 이마저 반납하면서까지 얼마만큼의 날씬함을 성취해야 이 학생의 극기 수행은 멈출까?
 
지금 우리 사회가 칭송하는 미의 기준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미의 기준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중국에선 전통적인 미의 기준이 작은 발 사이즈였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10cm 정도의 기형적인 발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통을 참아야 했고, 서양에선 얇은 허리를 만들기 위해 코르셋을 착용해 늘 소화불량, 호흡곤란에 시달려야 했으며 코르셋의 철사가 몸을 파고들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이렇게까지 위험한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일까? 각종 매체에서는 꿀벅지, 우유 빛깔 피부, 얼굴은 V라인, 몸매는 S라인, 착한 몸매, 태평양 어깨, 얼짱 등 수많은 신조어를 들을 수 있고, 아름다운 몸과 얼굴에 대한 규격화된 이미지가 차고도 넘친다. 왜냐하면 TV만 틀면 만날 수 있고, 거리의 쇼윈도 안에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워너비 신드롬’
청소년들은 연예인 모습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워너비 신드롬(Wannabe Sydrome)'에 빠져 있다. [중앙포토]

청소년들은 연예인 모습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워너비 신드롬(Wannabe Sydrome)'에 빠져 있다. [중앙포토]

 
미디어에서 주목받는 여성의 모습은 하나같이 날씬하고, 얼굴은 작으며, 눈은 크고, 오똑한 코의 얼굴을 미인이라고 칭한다. 청소년들은 이런 모습의 연예인 모습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워너비 신드롬(Wannabe Syndrome)’에 빠져 있다. 
 
이 사회문제를 “넌 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외모에만 집착하는데?”라면서 이 학생의 잘못이라고 비난만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말에 ‘얼굴’은 사람의 ‘얼’이 사는 집이다. 정신이 담겨 있는 그릇이라는 의미다. 얼굴은 그 사람의 정신과 마음이다. 긍정적이고 성숙한 에너지는 어떤 장소에서든 당당한 자신감으로 자신의 얼굴에 표출된다.
 
동성이건 이성이건 어떤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을까 생각한다면 바비인형같이 날씬하고 예쁜 얼굴에 집착하는 친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한 에너지를 갖춘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이 훨씬 더 멋진 일일 것이다.
 
외모에 대한 과도한 집착 이전에 건강한 내면과 건강한 신체를 만드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오프라 윈프리는 너무 못생겼다며 외모를 꾸미라는 상사로부터 질타를 받았지만 자신감과 말솜씨로 자신의 매력을 찾으면서 미국 최고의 토크쇼 여왕이 돼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JTBC의 ‘비정상회담’이란 프로그램에서 타일러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이력서에 사진을 붙여야 하는 것에 놀랐다”는 말을 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여겼던 관행들이 외모를 평가하고 차별을 만들어낸다.
 
외모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사회, 획일화된 외모에 대해 끊임없이 비교하고 남의 외모를 아무렇지 않게 평가하는 사회에 대한 사회적 성찰과 개선 의지가 필요하다. 또 미디어의 변화와 더불어 미디어를 읽어내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 없이 외모 지상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더 많은 청소년이 씹던 음식을 뱉고, 학교에서 급식실에 가지 않고 아몬드 다섯 개가 점심이어야 하는 학생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손민원 성·인권 강사 qlover@naver.com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news.joins.com/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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