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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올겨울 쌓인 눈 5m, ‘파우더 스키’ 성지 된 니가타

소설 『설국』이 탄생한 일본 니가타(新潟)현은 그냥 ‘눈의 나라(雪國)’가 아니다. ‘눈의 천국’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눈만 보면 심장이 뛰는 스키어·스노보더에게는 더욱 그렇다. 일본 열도 최북단의 홋카이도(北海道) 못지않게 많은 눈이 내리면서도 춥지 않은 날씨 덕분이다. 니가타현 남부의 묘코(妙高)고원에서 차원이 다른 눈을 맛보고 왔다.
 묘코고원에 자리잡은 아라이리조트. 2월 22일 현재 누적 적설량이 5m가 넘는다.

묘코고원에 자리잡은 아라이리조트. 2월 22일 현재 누적 적설량이 5m가 넘는다.

 파우더 스키를 즐기는 스키어의 모습. 스키장 아래로 보이는 마을이 묘코다.

파우더 스키를 즐기는 스키어의 모습. 스키장 아래로 보이는 마을이 묘코다.

 

‘설국의 고향’ 스키 여행
스키장 10개 모인 묘코고원
5월 초까지 슬로프 개방해
숲속 누비는 ‘트리런’도 재미

일본 스키의 발상지
 
니가타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다설 지역이다. 일본 스키장 강설량을 알려주는 스노재팬 사이트를 보니, 2월 21일 현재 누적 적설량 3m 이상인 니가타 스키장이 14개에 달했다. 홋카이도는 6개, 나가노 5개 뿐이었다. 니가타에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건 시베리아에서 불어온 바람 때문이다. 동해의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묘코산(2454m)을 포함한 에치고(越後)산맥에 눈을 때려 붓는다.
 
묘코산을 주봉으로 하는 묘코고원은 일본 스키의 발상지다. 현대스키의 본고장인 오스트리아가 100년 전 일본에 스키를 전해줬다. 주인공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테오도르 폰 레르히(1869~1945) 육군 소령.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을 방문한 그는 1911년 일본군에 스키 타는 법을 알려줬다. 현재 니가타현에만 스키장이 56개를 헤아린다. 레르히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건 자연스럽다. 그의 동상과 일본 스키 기념관이 조에쓰(上越)시 카나야산(金谷山) 기슭에 있다.
 일본 최초로 국제 스키장으로 인증받은 아카쿠라 관광 리조트. [사진 니가타현 관광과]

일본 최초로 국제 스키장으로 인증받은 아카쿠라 관광 리조트. [사진 니가타현 관광과]

 
니가타현의 스키 명소는 묘코 지역과 유자와(湯澤) 지역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가 『설국』을 집필하고 온천을 즐긴 장소가 유자와다. 묘코코원에는 스키장이 10개 있다. 레르히가 스키를 가르친 카나야산을 비롯해 1937년 일본 최초로 국제 스키장으로 인정받은 아카쿠라 관광 리조트, 일본에서 가장 긴 8.5㎞ 활강 코스를 가진 스기노하라 스키장이 대표적이다. 2017년 12월 개장한 롯데 아라이리조트도 있다.
 
소니 패밀리가 만든 스키장
 
아라이리조트는 사연 많은 스키장이다. 1993년 소니 창업주의 장남인 모리타 히데오가 ‘아라이 리조트 앤 스파’를 지어 활강을 즐겼다. 일본에서도 최고급 리조트로 주목 받았지만 금세 암운이 닥쳤다. 2000년대 들어 소니의 기세가 꺾였고, 일본 경기침체로 스키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2006년 아라이는 폐업을 선언했다.
 
흉물스럽게 방치된 아라이를 주목한 게 롯데였다. 2015년 18억엔(약 180억원)에 리조트를 인수한 롯데는 2년간 보수 작업을 거친 뒤 2017년 12월 스키장을 다시 열었다.
 아라이리조트는 1993년 최초로 지었을 때부터 최고급 자재를 활용했다. 스키어가 눈을 맞지 않도록 덮개가 있는 리프트를 당시부터 사용했다.

아라이리조트는 1993년 최초로 지었을 때부터 최고급 자재를 활용했다. 스키어가 눈을 맞지 않도록 덮개가 있는 리프트를 당시부터 사용했다.

 
개장 한 달이 지난 1월 20일 아라이리조트를 찾았다. 오후 4시. 산 정상부로 향하는 곤돌라 운행은 멈췄다. ‘롱런 코스’ 하단부 약 1㎞ 길이 슬로프에서 스키를 탈 수밖에 없었다. 이 코스만이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열려 있었다. 아라이리조트에는 슬로프 11면, 리프트 4개, 곤돌라 1개가 있다.
 
스키장은 한산했다. 리프트 5대 걸러 한 대 꼴로 스키어가 타 있었다. 몸을 풀고 숨을 가다듬은 뒤 스키를 내딛었다. 어? 중급코스라더니, 만만치 않았다. 지도에는 직선처럼 보였는데 슬로프 폭이 들쭉날쭉했고, 경사도 제법 가팔랐다. 안전펜스도 없었다. 설질이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김상민 아라이리조트 총지배인은 “최근 이상 고온인데다 눈도 많이 안 내려 슬로프가 습한 편”이라면서도 “정상부에 가면 밀가루 같은 파우더 설질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튿날을 고대하며 온천에서 뭉친 근육을 풀었고, 일식당에서 해산물을 먹으며 주린 배를 달랬다. 다시마 우린 두유에 방어 뱃살을 담가 먹은 샤부샤부 맛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라이리조트 안에 있는 온천 노천탕. 지하 1750m에서 데워진 물을 쓴단다.

아라이리조트 안에 있는 온천 노천탕. 지하 1750m에서 데워진 물을 쓴단다.

두유에 다시마 우린 국물을 약한 불로 끓이며 방어 뱃살을 담가 먹는 샤부샤부. 가장 인상적인 음식이었다.

두유에 다시마 우린 국물을 약한 불로 끓이며 방어 뱃살을 담가 먹는 샤부샤부. 가장 인상적인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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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공격합시다”
 
1월 21일 오전 8시 30분. 곤돌라를 탔다. 리조트 직원인 야스다 토모 마케팅팀장과 알파인 국가대표를 지낸 이토 타츠야가 동행했다. 해발 1280m, 정상부에 도착했다. 앙코르 코스(1.4㎞)에서 몸을 푼 뒤 최장 코스인 롱런(5.2㎞)을 활강했다. 설질은 어제보다 좋았다. 스키가 덜그덕거리는 느낌이 없었고 숫돌에 칼 가는 소리가 났다.
 
“이제 파우더 스키를 즐겨보죠. 정설차가 눈을 다지지 않은 비압설(非壓雪) 구역이 스키장 안에 이렇게 많은 곳은 일본에서도 드뭅니다.”
 
정설차가 눈을 다진 슬로프를 벗어나면 파우더 스노 뿐 아니라 나무 사이로 활강하는 '트리 런'도 즐길 수 있다.

정설차가 눈을 다진 슬로프를 벗어나면 파우더 스노 뿐 아니라 나무 사이로 활강하는 '트리 런'도 즐길 수 있다.

야스다 팀장이 아라이의 설질을 자랑했다. 실제로 아라이에서 스키를 탈 수 있는 면적 1570만㎡ 중 80%가 비압설 구역이다. FK 구역을 찾았다. V 자형 좁은 계곡이었다. 한국의 딱딱한 슬로프에 적응된 몸은 부드러운 눈을 부드럽게 헤쳐나가지 못했다. 툭하면 스키가 눈속으로 파고들었고, 넘어지면 일어나는 것도 어려웠다. 롱런 코스보다 더 힘들었다. 오후부터 눈이 몰아치더니 이튿날 새벽까지 19㎝가 쌓였다. 누적 적설량이 4m를 넘었다(2월 21일 현재 522㎝). 오전 8시 30분 이토를 다시 만났다. 스마트폰 번역 어플로 대화를 나눴다. 이토가 “해피 플레이스로 갑시다”라고 했다. 비압설 구역이다. 새로 쌓인 눈은 19㎝였지만 무릎까지 푹푹 잠겼다. 계속 타다보니 파우더 스키가 적응됐다. 삭삭, 휘휘. 스키가 눈을 밀고 가는 소리마저 청량했다.
 
“이번엔 나무를 공격합시다.” 나무 사이로 활강하는 트리런(Tree run)을 하자는 뜻이다. 이름 모를 키 작은 나무와 자작나무, 삼나무를 휘감고 돌았다. 보통 슬로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재미였다. 비행시간이 임박했다. 작별 인사를 나누는데 이토가 휴대전화를 보여줬다. “다음에도 함께 미끄러집시다!”
 
◆여행정보
대한항공이 인천~니가타 노선을 주 5회 운항한다. 니가타공항에서 묘코까지는 약 150㎞.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가도 된다. 아라이리조트를 가려면 조에쓰묘코(上越妙高)역까지 기차로 이동한 뒤 무료 셔틀을 타면 된다. 리프트권은 하루 6000엔(약 6만원)으로, 날짜가 길수록 저렴하다. 리조트 홈페이지(lottearairesort.com) 참조. 5월 초까지 스키를 탈 수 있다. 자세한 여행정보는 니가타현 관광과 홈페이지(enjoyniigata.com/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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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코(일본)=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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