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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 사과 리허설까지 … 표정 불쌍해 보이냐 묻더라”

지난 19일 공개 사과 기자회견 자리에 선 연출가 이윤택씨. 그의 성범죄를 증언하는 ‘미투(#MeToo)’가 이어지는 가운데, 21일에는 연희단거리패 오동식 배우가 이씨의 ‘기자회견 리허설’을 폭로했다. [뉴스1]

지난 19일 공개 사과 기자회견 자리에 선 연출가 이윤택씨. 그의 성범죄를 증언하는 ‘미투(#MeToo)’가 이어지는 가운데, 21일에는 연희단거리패 오동식 배우가 이씨의 ‘기자회견 리허설’을 폭로했다. [뉴스1]

“사과문을 완성한 이윤택은 기자회견 리허설을 하자고 했다. 극단 대표가 ‘선생님 표정이 불쌍하지 않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윤택은 다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이건 어떠냐고 물었다. 그곳은 지옥의 아수라였다.” “첫 대책회의를 시작할 때 선배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내부의 결속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면서 입장을 밝히라고 했다. 마치 조직폭력집단에서 하는 충성맹세 같은 거 아닌가.”
 

오동식 ‘나의 스승을 고발합니다’
“극단 대책회의 열어 결속 요구
마치 조폭 충성맹세 같았다”
유명 코믹배우 오모씨도 도마에

21일 연희단거리패 배우 오동식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의 스승을 고발합니다”는 글을 올렸다. 연출가 이윤택씨의 성폭력 사실이 드러난 이후 극단 안에서 일어난 일을 공개한 내용이다.
 
오씨에 따르면 지난 14일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의 폭로 이후 이씨는 회의를 열어 “우리를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라며 “당분간 연극을 나서서 할 수 없으니 꼭두각시 연출을 세우고 간간이 뒤에서 봐주겠다”고 했다. 또 변호사에게 전화해 형량을 묻는 이씨에게 단원 중 한 명은 “낙태는 인정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씨의 성폭행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단원들이 “마치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처럼 의협심을 드러내며, 일이 잠잠해진 4개월 뒤 다시 연극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는 것이다. 오씨는 이씨와 단원들이 기자회견 예상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예행연습을 한 과정을 상세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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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오태석 등 거장급 연출가들의 성추행·성폭력 파문으로 연극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들이 절대 권력자로 군림하며 피해자를 양산하는 동안 방관하고 침묵했던 극단 내외부 관계자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다. 무엇이 연극계를 성도덕 불감증에 빠뜨린 것일까.
 
이성미 여성문화예술연합 공동대표는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는 문화예술계 구조가 권력형 성범죄를 양산한다”고 짚었다. 그는 “이들은 한 극단의 연출가로서 캐스팅을 좌지우지했을 뿐 아니라 대학 강단에도 서고 각종 상과 지원사업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절대적인 영향력을 누렸다. 극단을 나가도 ‘걔 이상한 애야, 쓰지 마’라고 말하면 통했을 정도의 권력이다. 피해자나 목격자가 연극계를 떠날 생각이 아니라면 저항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견 연출가 심재찬씨도 “배우란 직업이 선택을 받는 직업이다 보니 연출자의 일탈 행동에 손쓸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와 함께 활동했던 배우 오모씨의 성추행을 폭로한 댓글. [페이스북 캡처]

이씨와 함께 활동했던 배우 오모씨의 성추행을 폭로한 댓글. [페이스북 캡처]

14일 이후 잇따르고 있는 ‘미투’ 증언에서도 연극계의 제왕적 권력 시스템은 드러난다. 피해자들은 이씨를 두고 “왕 같은 교주” “무서운 독재자”라고 했다. 절대 권력은 위계 폭력으로 이어졌다. 이씨는 여배우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 성기 마사지를 시켰고, 안마 도중 성폭행을 하고 그 때문에 임신·낙태한 여성 단원을 또 성폭행하기까지 했다. 18일 이씨의 성추행 사실을 공개한 김민아씨는 “선생님이 이곳을 열어 소리를 내야 한다며 내 가슴에 손을 대셨다. 흠칫했지만 선생님의 의도를 감히 의심하기 어려웠다. 그는 언제나 옳을 수밖에 없는 그 세계의 왕이었다”고 적었다. 또 15일 오태석씨의 추행 사례를 밝힌 박영희씨의 증언에 따르면 공개된 술자리의 성추행 현장에 여러 사람이 앉아 있었지만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박씨는 “철저히 투명인간이었다”고 했다. 과거 이윤택씨와 함께 활동했던 오모 배우에 대한 폭로도 이어졌다. "지금은 코믹 연기로 유명한 조연 배우 오모씨에게 1990년대 성추행을 당했다”는 댓글이 이씨에 대한 기사에 달렸다.
 
폐쇄된 공간에서 이뤄지는 도제식 교육도 성범죄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연출가 김재엽씨는 “연극은 전통성이 가장 강한 보수적인 장르”라며 “선생님 밑에서 가방 들어주는 사람들이 후계자가 되고 학생들이 밤샘 연습과 뒤풀이에 수시로 불려 다니는 문화를 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연계가 성범죄 예방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남녀고용평등법 등 현행법에 따르면 공공부문 종사자와 사업장 근로자만 성범죄 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이용욱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정책실 사무관은 “대부분의 연극인이 조직에 속해 있지 않고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어 교육을 접할 기회가 없는 것이 문제”라며 “여성가족부와 협의해 예방 교육 매뉴얼을 만들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지영·민경원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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