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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4년전 화마에 진 한(恨)이 자살시도 20대 청년 살렸다

지난 2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 경기도재난안전본부에서 동두천소방서 한경승 소방교(사진 왼쪽)와 부천소방서 장슬찬 소방사가 신형 열화상카메라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지난 2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 경기도재난안전본부에서 동두천소방서 한경승 소방교(사진 왼쪽)와 부천소방서 장슬찬 소방사가 신형 열화상카메라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4년 전 한 소방관의 한으로 개발한 장비
 
‘이상해, 왜 이 방의 문만 온도가 높지.’ 
설 연휴를 사흘 앞둔 지난 12일 오전 6시 8분 경기도 부천의 한 원룸텔.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부천소방서 신상119안전센터 1팀 소속 장슬찬(26) 소방사는 A씨(28)의 방문 앞에 멈춰섰다. A씨 방은 ‘ㅁ’자가 겹쳐진 형태의 미로 같은 원룸텔 복도 안쪽이다. 그의 손에 들린 신형 열화상 카메라 액정화면에 이 방문의 온도만 4도가량 높게 측정됐다.
 
“쾅쾅쾅” “안에 계세요?” 손으로 방문을 여러 차례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장 소방사의 뇌리에 ‘온풍기를 틀어놓고 출근했나’란 생각이 스쳤다. 복도에는 연기 등 화재 흔적이 없었다. 신고 당시 상가건물의 화재경보기가 울렸는데, 전에도 오작동으로 인한 신고가 잦았다. 하지만 희미하게 타는 냄새가 났다.      
신형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모습. 김민욱 기자

신형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모습. 김민욱 기자

 
장 소방사는 복도 쪽으로 난 A씨 방 유리 창문을 바라봤다. ‘안에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 휴대용 랜턴 뒷부분으로 창문을 때려 깼다. 안쪽 잠금장치를 풀고 창문을 열려는데 “쩍”하는 끈적한 소리가 났다. 창문 틈에 테이프가 둘러져 있었다. 컴컴한 작은 방안은 연기가 자욱했다. 번개탄 3개가 피워졌고, 옆에는 의식불명 상태로 A씨가 쓰러져 있었다. 호흡이 멎기 직전이었다. 
 
장 소방사는 즉시 A씨를 방 밖으로 데리고 나와 눕힌 뒤 고개를 뒤로 젖혔다. 기도확보를 위해서였다. 곧이어 A씨를 부천순천향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게 했다. 다행히 A씨는 의식을 되찾고 최근 퇴원했다. 지난해 11월 17일 임용된 신임 소방사의 ‘첫 인명구조’ 경험이었다.  
     
이후 장 소방사는 동두천소방서의 한경승(37) 소방교에게 감사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생명을 구한 것은 한 반장님 덕분이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고 썼다. 사람을 구하게 한 열화상 장비를 개발한 사람이 다름 아닌 한 소방교였기 때문이다. 
 
장 소방사는 경기도소방학교 신임 교육 시절(지난해 7월 31일~11월 9일) 신형 열화상 카메라 사용법을 익히는 과정에서 교관으로부터 가슴 뛰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신형 장비가 한경승 소방교의 ‘한(恨)’으로 만들어지게 됐다"는 거였다. 
 
4년 전 그날 
 
몹시 추웠던 2014년 2월 오전 낡은 단층 주택과 음식점 등이 빽빽이 들어선 동두천 소요산역 주변 주택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낡은 목조주택에서 시작된 불길이 주변 건물로 퍼져나갔다. 출동한 소방관들에게 이웃 주민들은 “할아버지가 홀로 산다"고 알렸다. 하지만 대문 쪽에서 시작된 불이 집안 진입을 막았다.    
 
한 소방교 등 출동 대원들은 옆 건물 안으로 들어가 창문 사이로 물을 뿌렸다. 어느 정도 불길을 잡고서 집안으로 진입했지만, 연기가 꽉 차 바로 앞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얇은 슬레이트를 지붕을 얹은 주택은 붕괴까지 우려되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집안 불길을 정리하면서 ‘감’에 의존해 수색을 벌여야 했다. 얼마 후 창문 밑에서 숨진 집주인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얼마나 괴로웠는지 몸을 잔뜩 웅크린 상태였다. 
전용 박스에 보관 중인 구형 열화상 카메라와 휴대가 간편한 신형 열화상 카메라 비교모습. 김민욱 기자

전용 박스에 보관 중인 구형 열화상 카메라와 휴대가 간편한 신형 열화상 카메라 비교모습. 김민욱 기자

 
한 소방교는 할아버지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앞이 보였더라면 구조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어둠을 뚫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시작됐다. 답은 열화상 카메라였다. 물체가 내는 열기를 감지해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표현해 어둠 속에서도 형태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하는 장비였다.  
 
당시 동두천소방서 소속의 화재진압대원은 117명이었지만, 열화상 카메라는 단 한 대뿐이었다. 대당 2000만원이 넘는 고가장비다 보니 보급이 쉽지 않았다. 전국 966곳 119안전센터(2014년 기준)에 한 대씩 보급하려 해도 193억2000만원의 예산이 필요했다. 당시 국내 소방현실은 “장갑도 사비를 털어 산다”는 자조가 나오던 때였다. 
 
'장갑'도 사비 털어 사는 시대에... 
 
광주보건대학 응급구조과를 졸업한 한 소방교는 낯선 공부를 시작했다. 전공과 무관한 전자 분야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며 독학했다. 그러던 중 다양한 센서나 부품을 연결할 수 있는 미니컴퓨터 기판인 아두이노(Arduino)를 알게 됐다. 외국기업 등에서 부품을 구해 시험모델 제작에 도전했다. 마침 국내 전자대기업 연구원의 도움으로 한국산업기술대학교 학생들과 협업하게 됐다. 마침내 일정 수준으로 구동되는 테스트 모델 개발에 성공해 전자대기업의 사회공헌 공모전에 선정됐다. 마무리 제품 개발은 해당 기업 연구원들이 맡았다.
동두천소방서 한경승 소방교가 소형 컴퓨터 기판과 부품 등을 이용해 만든 실험용 열화상 카메라. [사진 한경승 소방교]

동두천소방서 한경승 소방교가 소형 컴퓨터 기판과 부품 등을 이용해 만든 실험용 열화상 카메라. [사진 한경승 소방교]

 
이후 한 소방교는 경기도 소방학교에서 1년간 테스트 열화상 카메라 장비를 실험하며 소방관의 눈높이로 다듬어 나갔다. 한 소방교는 “급박한 구조현장에서 최대한 가벼우면서도 양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장비가 필요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일반적으로 소방관들은 산소통·호흡기·관창·도끼 30㎏의 장비를 갖춘다. 이에 무게를 구형 모델(1.5㎏)의 절반 수준인 800g로 줄였다. 또 카메라를 몸에 걸 수 있도록 했다. 필요할 때 손으로 잡아 쓴 뒤 놓으면 원래 위치로 돌아갈 수 있도록 줄로 연결했다.
열화상카메라 비교

열화상카메라 비교

 
누구나 간단한 교육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전원·메뉴 버튼 두 개로 작동방식을 단순화했다. 하지만 성능은 고가의 구형 장비를 뛰어넘는다. 구형 모델은 영하 35도에서 영상 532도까지만 온도를 잴 수 있다. 신형 모델은 이 측정 범위를 대폭 향상했다. 영하 40도에서 영상 1000도까지 가능하다. 방습·방진 기능을 고려해 별도의 냉각팬을 달지 않으면서도 내온성을 높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신형 열화상 카메라 무게는 구형의 절반 수준이다. 김민욱 기자

신형 열화상 카메라 무게는 구형의 절반 수준이다. 김민욱 기자

 
그런데도 사용시간은 4시간으로 구형 장비와 동일하다. 충전도 간편화했다. 기존 장비는 전용 충전기를 사용해야 하지만, 이번 장비는 USB 단자를 쓴다. 흔히 사용하는 보조배터리로도 충전이 된다. 가격은 비매품이라 산정하지 못하지만, 재료비만 50만~60만원 수준이다. 구형 제품(2060만원)과 단순비교하면 34배 차이다. 20억원 가까이 들여 개발을 도운 대기업은 우선 열화상 카메라 1000대를 지난달 말 소방당국에 기증했다. 이후 올 초까지 경기(163대), 서울(113대), 경북(91대) 등 지역 119안전센터에 보급됐다.
 
이렇게 탄생한 신형 열화상 카메라가 현장에서 처음으로 꺼져가는 20대 청년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4년 전의 한풀이다. 경기도 재난안전본부 이재열 본부장은 “선배 직원은 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하고, 소방학교의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신임 직원이 이 장비로 도민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고 평가했다.
 
부천·수원=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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