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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빈이 루지를 했다면 '썰매 황제'가 됐을까

 평창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 [평창=연합뉴스]

평창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 [평창=연합뉴스]

"성빈아, 스켈레톤 해볼래?"
 
체대입시생 윤성빈(24)이 스켈레톤을 시작한 건 체육교사 김영태(59)씨의 조언 때문이었다. 2012년 7월 당시 윤성빈의 나이는 열여덟살. 그리고 만 6년도 되지 않은 2018년 2월, 윤성빈은 평창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며 '스켈레톤 제왕'에 등극했다. 그런데 윤성빈이 똑같은 썰매 종목인 루지에 도전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답은 '아니오'다. 스켈레톤과 루지는 단순히 '엎드려서 타는 썰매'와 '누워서 타는 썰매' 이상으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썰매 개척자로 MBC 해설을 맡고 있는 강광배 한체대 교수는 루지와 스켈레톤, 봅슬레이를 모두 경험했다. 1998 나가노 올림픽은 루지로, 2002 솔트레이크, 2006 토리노 올림픽은 스켈레톤으로 출전했다. 마지막 올림픽인 2010 밴쿠버 대회에선 봅슬레이 4인승에 출전했다. 김영태 교사가 윤성빈을 소개시켜 준 사람도 바로 강 교수였다. 그런 강 교수도 윤성빈의 루지 도전에 대해선 "절대로 평창에선 메달을 딸 수 없었다. 국가대표가 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강 교수는 "윤성빈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스타트 능력이다. 윤성빈이 금메달 딴 건 온전히 스타트 덕분이다. 봅슬레이, 스켈레톤은 스타트가 성적의 90%를 좌우한다. 두 종목은 2010년 평창 스타트훈련장이 만들어진 뒤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고 했다. 한국 선수들은 평창올림픽 전까지는 정식 트랙이 없어 도로에서 썰매를 타거나 출발 연습만 했다. 그는 "우리 나라처럼 스타트 훈련을 많이 하는 나라가 없다. 윤성빈도 거기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했다.
 
SBS 해설위원인 이세중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이사의 생각도 같았다. 이 이사는 "루지는 윤성빈의 탁월한 질주 능력을 활용할 수 없다. 윤성빈의 굵은 허벅지가 전혀 필요없는 종목이 루지다. 스켈레톤처럼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이 이사는 "나이가 든 뒤 봅슬레이로 전향하는 것은 가능해보인다. 출발 능력을 활용하면서 조정 감각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썰매를 밀며 힘차게 달려나가는 윤성빈. [연합뉴스]

썰매를 밀며 힘차게 달려나가는 윤성빈. [연합뉴스]

민석기 한국스포츠개발원 선임연구원은 "신체 발달 조건 자체가 다르다. 루지는 앉은 상태에서 2~3번의 팔 휘저음(스트로크)으로 끝나기 때문에 상체를 키워야 한다. 반대로 스켈레톤은 하체가 더 발달됐다. 스타트도 서서 썰매를 잡고 타는데 4~5초 가량 걸린다. 성공 여부를 판단하긴 어렵지만 다른 능력이 필요한 건 분명하다"고 했다.
 
루지에선 스타트보다 조종기술이 더 중요하다. 이세중 이사는 "루지는 '급성장'이란 게 불가능한 종목이다. 조종기술의 비중이 큰 종목 순으로 나열하면 루지, 봅슬레이, 스켈레톤"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조종을 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루지는 썰매 앞쪽에는 방향을 조절하는 쿠펜(Kufen)이 있어 다리 안쪽으로 힘을 줘서 조종할 수 있다. 봅슬레이는 도르래처럼 된 핸들이 있다. 스켈레톤은 조종간이 특별히 없어 몸이나 다리를 움직여 조종한다. 이 이사는 "루지가 가장 섬세한 조종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팀간 격차가 매우 적다. 100분의 1초를 따지는 봅슬레이, 스켈레톤과 달리 루지가 1000분의1초까지 측정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루지 팀 릴레이 경기에서 출발하는 아일린 프리쉐. [평창=연합뉴스]

루지 팀 릴레이 경기에서 출발하는 아일린 프리쉐. [평창=연합뉴스]

 
세밀한 조종이 필요하다 보니 선수가 숙련되는 기간도 길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스켈레톤은 윤성빈이 금메달, 김지수가 6위에 올랐고, 봅슬레이 4인승이 6위를 차지했다. 루지는 여자 1인승에 출전한 독일 출신 귀화선수 아일린 프리쉐가 8위에 오른 게 최고였다. 귀화를 하지 않은 선수 중에선 남자 더블(2인승) 박진용-조정명 조가 9위를 차지했다.
 
이창용 루지 국제심판은 "슬라이딩 종목에서 스타트가 좋다는 건 연습 뿐 아니라 타고난 부분이 있어야 한다. 윤성빈은 분명 타고난 감각이 있다. 하지만 루지라면 얘기가 다르다"고 했다. 그는 "독일, 오스트리아에선 빠르면 5~6살 때 루지를 시작한다. 17,18살에 시작해도 10년 이상 뒤처지기 때문에 따라잡기 어렵다. 루지계에선 18살 고등학생 때 루지를 시작해 7년 만에 올림픽 톱10에 오른 박진용을 두고도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고 평가한다"고 했다. 그는 "루지 선수에서 봅슬레이 파일럿이나 스켈레톤으로 전향하는 경우는 있지만 반대는 드물다. 루지가 단기간 내에 기량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루지 2인승 9위에 오른 박진용-조정명 조. 루지 더블 경기에선 앞에 앉은 선수가 양쪽 손잡이를 조종하고, 뒤에 앉은 선수가 앞 선수의 팔에 달린 끈을 잡고 함께 몸을 움직인다. [평창=연합뉴스]

루지 2인승 9위에 오른 박진용-조정명 조. 루지 더블 경기에선 앞에 앉은 선수가 양쪽 손잡이를 조종하고, 뒤에 앉은 선수가 앞 선수의 팔에 달린 끈을 잡고 함께 몸을 움직인다. [평창=연합뉴스]

그렇다면 한국 루지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서는 것은 언제쯤일까. 이세중 이사는 "이제 슬라이딩센터가 생겼기 때문에 여건은 갖춰졌다. 그전엔 아스팔트에서 바퀴 달린 썰매를 탔는데 종목도 많이 알려져 선수 영입은 쉬워질 것이다. 어린 선수들이 유입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창용 심판은 "오스트리아는 트랙 아래쪽부터 하나씩 올라가며 조정기술을 익힌다. 그러다보니 '썰매 도사'들이 만들어진다. 우리도 이제 경기장이 생겼으니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칠드런 프로그램'을 운영해 육성을 할 수 있다. 10~15년 뒤 올림픽에 나갈 선수를 지금 키워야 한다"고 했다.
 
평창=김효경·김지한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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