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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직도 꿈만 같습니다 …” 부친상 후 쓴 홍명희 자필 편지엔

경북 안동 풍산김씨 집안에 있던 벽초 홍명희의 자필 편지들.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경북 안동 풍산김씨 집안에 있던 벽초 홍명희의 자필 편지들.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1888~1968)의 자필 편지(사진) 4통이 경북 안동에서 발견됐다. 붓을 들고 손으로 직접 종이에 쓴 자필 편지가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경상도에서 발견된 것은 이례적이다. 월북 작가인 홍명희는 1948년 9월 북한으로 넘어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 수립에 기여해 초대 부수상을 지냈다.
 
4통의 편지는 한국국학진흥원이 발견했다. 경북 안동시 풍산면 오미리에 거주하는 풍산김씨 집안(영감댁)에서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오래된 편지류 5100여 점 안에 섞여 있었다. 한지 등에 한문으로 쓰인 홍명희의 편지들은 김순석(58) 한국국학진흥원 문학박사(근대 사상사 전공)가 번역, 전후 사정을 연구해 분석해냈다.
 
故홍명희

故홍명희

20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편지들은 모두 22살 청년 홍명희가 1910년 8월에서 11월 사이 충남 금산에서 안동 풍산에 있는 풍산김씨 집안으로 보냈다. 홍명희는 충북 괴산에서 출생했지만 그의 아버지 홍범식이 금산군수를 지냈다. 김 박사는 “아버지상을 치른 홍명희가 풍산김씨 집안에 고마움을 표하는 내용이 주로 담겨 있다”며 “편지를 받는 대상은 김지섭(金祉燮·1884~1928)이다”고 말했다. 김지섭은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다. 그는 일제 강점기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다가 1924년 1월 5일 일본 황궁에 폭탄을 투척한 뒤 일본 지바(千葉) 구치소에서 옥사했다. 안동의 독립운동가와 홍명희의 관계가 편지로 처음 드러난 셈이다.
 
첫 번째 편지에서 홍명희는 ‘삼가 말씀 올립니다. 근래에 건강하신지요? 매우 그립습니다. 상주인 저는 특별히 보살펴 주신 은혜를 입어 관을 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제 장례를 치러 아픔의 눈물이 더욱 새롭습니다. (상주 홍명희 올림)’라고 썼다. 그의 부친 홍범식은 금산군수로 재직하다 1910년 8월 29일 나라가 망하자 자결했다. 홍범식은 자결 직전 당시 금산 재판소 통역 겸 서기였던 풍산김씨 집안의 김지섭에게 상자를 주고 집이 있는 안동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김지섭은 이후 상자를 열어보고 유서를 발견했다. 급히 홍범식에게 돌아갔지만 이미 자결한 뒤였다. 김지섭은 유서를 홍범식의 아들인 홍명희에게 전했다.
 
두 번째 편지에서 홍명희는 김지섭을 형으로 부른다. ‘길 위에서 곡하고 헤어진 뒤에 아직도 꿈만 같습니다. (중략) 형께서 건강하시기를 우러러 빌고 또 빕니다. 상주인 저는 질긴 목숨을 구차하게 지탱하고 있으며 (중략) 형의 깊은 은혜를 알고 있으니 형도 나를 범상히 대하지 말고-.’라고 썼다.
 
홍명희는 나라를 빼앗기고 아버지를 잃은 것에 대한 속 상함도 편지에 담았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편지에서다. 그는 ‘상주인 저는 모진 목숨을 보전하여 근근이 살아갈 따름입니다’‘상주인 저는 질긴 목숨을 구차하게 부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상주인 저는 평소 경험이 천박한 것을 생각지 않고 항상 인심이 험하다고 탄식하였지만 어려움을 겪은 이래로 스스로 반성하고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등이라고 썼다.
 
한국국학진흥원 측은 이들 편지로 홍명희가 유학 등을 한문으로 공부한 전형적인 조선 시대 선비들의 필체를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당시 편지에선 잘 보이지 않는 어려운 한문식 표현인 ‘고애자(양친이 모두 돌아간 상주를 지칭)’‘죄제(상을 당한 사람이 손윗사람에게 쓰는 편지)’같은 단어도 찾아냈다.
 
김순석 박사는 "청년 홍명희의 자필 편지는 그가 나중에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이후 평등한 세상을 구현하려는 이념을 담은 소설 『임꺽정』까지 쓰게 된 배경을 추정해볼 수 있는 귀한 자료들이다”고 말했다.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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