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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트럼프의 ‘남북 자축파티’ 청구서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정치가 스포츠보다 위라 한다. 북한 IOC 위원도 그랬고,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만들 때 우리 정부도 그랬다. 하지만 역시 스포츠가 정치보다 아름다웠다.
 
일본의 고다이라 선수. 은메달에 그친 우리 이상화 선수가 눈물을 흘리며 빙판을 돌자 그녀는 멈춰 서서 이상화를 기다렸다. 그리고 서로 포옹한 채 빙판을 돌았다. 중학교 때부터의 숙적. 그들은 서로에게 “자랑스럽다. 존경한다”고 했다. 오랜 시간 땀과 열정을 함께 나눴기에,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존경’이란 말이 나올 수 있었을 게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상대방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한·일 정치지도자보다 100배는 훌륭하고 아름답다.
 
“협박은 협박을, 비난은 비난을, 저주는 저주를 낳는다”고 했던 링컨의 말은 틀렸다. 쇼트트랙 여자 500m에서 최민정과의 신체 접촉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난도질을 당했던 킴 부탱 선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녀는 닷새 뒤 1500m 경기에서 동메달을 딴 뒤 시상식에서 최민정과 하트 모양을 손으로 함께 만들며 활짝 웃었다. 그러곤 SNS 댓글에 대해 “모든 한국인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악성 비난에 상처를 입긴 했지만 화가 난 것은 아니다”고 했다. 비난을 하트로 감쌌다. 쿨했다. 최민정에 대한, 스포츠에 대한 신뢰였다.
 
비단 개인 간 관계뿐 아니다. 신뢰는 국가 간에 다른 광경,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한국 측이 마련한 ‘악수 이벤트’를 거부하고 돌아간 뒤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아베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했다. 무려 76분. 지금까지 19번의 통화 중 가장 길었다. 소식통에 따르면 평창올림픽 휴전 결의 기간(3월 25일) 이후 한반도 대처 방안을 꼼꼼히 점검하느라 시간이 길어졌다고 한다. 통화 후 일본 NSC가 비상체제로 전환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무엇보다 ‘미·일 동맹 사전 협의→한국 통보’, 혹은 통보조차 제대로 안 이뤄지고 있는 현 상황은 비정상적이다. 한·미 정상 통화가 마냥 뒤로 미뤄지는 이유가 있다.
 
그런 와중에 트럼프는 ‘세이프가드, 호혜세 부과, GM 철수, 철강 고관세 부과 대상국 지정’이란 경제 융단폭격을 우리에게 가하고 나섰다. 동맹국 일본은 쏙 빠졌다. 일련의 공세가 한국에 집중돼 있는 건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거나 ‘미국 우선주의’란 경제 논리만으론 설명이 안 된다. 평창올림픽 ‘남북 자축파티’의 청구서 액수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이에 청와대는 지난 19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검토 등 안보·통상을 투 트랙(궤도)으로 분리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게 과연 가능할까. 트럼프는 ‘안보·통상 연계’다. 일찍이 저서 『불구가 된 미국』에서도 “미국이 (한국·일본의) 안보를 지켜주고 있는데 무역흑자를 내며 무임승차를 한다”고 명확히 못 박았다. 그 ‘오해’를 지난 1년간 일본은 풀었다. 우린 풀지 못했다. 그게 전부다. 그리고 이제 와 뒤늦게 미국을 향해 “우린 분리!”를 외치려 한다. 트럼프 귀에 경 읽기다. 다가오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 17조원 규모의 미 공군 고등훈련기 사업자 선정 모두 통상과 얽힐 수밖에 없는 문제다.
 
사실 ‘원 트랙’이 제대로 안 되니 궁여지책으로 멋있게 내놓는 말이 ‘투 트랙’이다. 위안부 문제로 티격태격하다 일본과 투 트랙으로 가겠다고 한 게 한 달여 전이다. 그러다 이젠 미국과도 투 트랙이다. 우린 어디와 원 트랙으로 가고 있는가. 서로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하는, 서로에 쿨하게 대하는 그런 동맹·우방이 있긴 한 건가. 이 불편함과 불안함은 누가, 왜 자초한 것일까.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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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