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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북제재로 뱅크런 … 라트비아 은행 지급정지

유럽 북동부 발트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가 대규모 ‘금융 스캔들’에 휘청이고 있다.
 
대북 돈 세탁 지원 혐의를 받았던 시중 은행인 ABLV가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지급 정지 명령을 받은 것이다. ECB의 이런 조치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사태는 엿새 전 미국 재무부가 ABLV에 내린 미국 금융망 퇴출 조치에서 촉발됐다. 이는 미 재무부가 지난 2005년 북한의 자금세탁을 지원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내린 조치와 동일하다. 당시 BDA는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를 막기 위해 전 계좌를 동결했다. ‘김정일 통치자금’으로 알려진 북한 계좌 2500만 달러도 함께 동결됐다.
 
ABLV에도 BDA 사태와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미 ABLV 전체 예금 중 22%에 달하는 약 6억 유로(8000억원)의 예금이 빠져나가며 뱅크런 조짐이 일었다. 이때문에 라트비아 중앙은행에 일시적인 유동성 지원을 요청해 9750만 유로(1292억원)를 지원받았다. 미 정부의 제재 이후 긴급 자금까지 투입받아야 할 정도로 순식간에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것이다. ABLV는 자산 규모가 라트비아에서 세 번째로 크다. 재무 사태가 악화되면 라트비아는 물론 유럽권 금융 체계에 파장을 미치게 된다. 급기야 ECB가 긴급 처방에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지난 19일(현지시간) ECB는 미 재무부의 금융망 퇴출 조치 이후 유동성이 급속히 악화된 ABLV에 대한 지급 정지 명령을 내렸다.
 
앞서 13일 미 재무부는 ABLV의 거래 내역 중 북한 미사일과 관련된 불법 돈 세탁 내역을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 재무부 금융범죄단속반은 “ABLV의 불법 금융 활동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정한 제재 대상자들과의 거래가 포함돼 있다”며 “그중 일부는 북한의 탄도 미사일 조달 혹은 수출 내역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재무부는 애국법 311조에 근거해 미 금융망에서 ABLV에 대한 퇴출 조치를 내렸다. 미 금융망 접근이 차단되면 국제 금융거래가 사실상 마비된다. 실제 퇴출까지는 최소 2개월 가량이 소요된다.
 
미 재무부는 ‘북중 교육의 핵심 창구’로 꼽혔던 중국 단둥은행에도 지난해 같은 조치를 취한 바 있다.
 
ABLV는 “우리는 어떤 불법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대북 제재 역시 위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미국 및 라트비아 당국과 협조하고 있으며, 제기된 모든 문제를 최대한 이른 시일 내 해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니스츠 베르니스 ABLV 회장은 “ABLV는 중상모략의 피해자”라며 경찰 조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ABLV는 ECB의 이번 거래 정지 조치와 관련해 20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ECB 관계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중앙은행 총재도 부패혐의 조사 받아=이번 ABLV 사태와 별개로 일마르스 림세빅스 라트비아 중앙은행 총재 역시 부패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 18일 라트비아 반부패 척결기구인 KNAB에 체포돼 뇌물·돈 세탁 혐의로 마라톤 조사를 받았다. LETA통신 등 라트비아 현지 언론은 림세빅스 총재가 북한과 관련 여부를 숨기기 위해 라트비아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건넸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라트비아 당국은 구체적 혐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고 있다.
 
두 사건의 연계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동유럽 금융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라트비아의 ‘메이저 은행’과 ‘통화당국 총수’가 동시에 스캔들에 휘말린 만큼 파장은 커질 전망이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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