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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대신 띄운 편지 15년째, 원고지 7000장 쌓였네요

20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다산 정약용 생가를 찾은 어린이들. 다산은 이곳에서 대표작 『목민심서』 완성했다. 다산은 아이들을 위한 한자 학습서 『아학편』도 남겼다. [사진 실학박물관]

20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다산 정약용 생가를 찾은 어린이들. 다산은 이곳에서 대표작 『목민심서』 완성했다. 다산은 아이들을 위한 한자 학습서 『아학편』도 남겼다. [사진 실학박물관]

‘무강석 무다산(無江石 無茶山)’. ‘강석이 없다면 다산도 없다’는 말이다. 강석은 박석무(76) 다산연구소 이사장의 호이고, 다산은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용(1762~1836)의 호다. 백낙청(80) 서울대 명예교수는 다산학(茶山學)을 이끌어온 박 이사장의 공을 이 한마디로 요약한다.
 
1970년대부터 다산 연구에 뼈를 묻어온 박 이사장에게 2018년은 특별한 해다. 전남 강진에서 18년째 귀양살이하던 다산은 1818년 지방 관리의 규범을 강구한 필생의 역저 『목민심서(牧民心書)』 48권을 완성했다. 같은 해 그는 귀양살이가 풀려 고향 남양주(마재)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200년이 흐른 올 무술년 초에 박 이사장은 칼럼 ‘풀어쓰는 다산 이야기’(이하 ‘풀쓰’)의 연재 1000회를 맞았다. 19일 오전, 다산연구소의 ‘메일링 서비스’로 ‘풀쓰 1000회를 맞아’를 받아본 40만 독자는 그의 뚝심과 한마음에 경의를 표했다. 2004년 6월 첫 회를 시작한 지 14년 만이다. 200자 원고지 7000장에 쌓인 강석의 일편단심은 21세기의 신실학이다. 박 이사장의 호 강석은 ‘강류석부전(江流石不轉)’에서 따온 것으로 강물은 흘러도 그 안의 돌은 물결 따라 이리저리 구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친이 ‘미득전미지가(未得展眉之暇)’란 혼잣말을 잘 하셨어요. ‘눈썹을 펼 겨를이 없다’는 뜻인데 일에 매여 매사가 불편하다는 얘기죠. 이 나이가 되니 그 말씀이 절실합니다. 민주주의를 이루려 청춘을 바쳤고, 다산 사상을 널리 펼치려 고생하느라 늘 찌푸린 얼굴인 제 인생을 내다보신 듯합니다.”
 
박석무 이사장

박석무 이사장

박 이사장은 2018년을 ‘다산의 해’라 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계각층 사람들이 다산과 그의 정신을 되새긴다. 촛불을 켜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모여들어 부패한 대통령을 파면해 새 정부를 출범시킨 국민의 함성이 200년 전 썩은 나라를 통째로 바꾸자고 개혁을 주장한 다산의 사자후와 통하기 때문이다. 통치 권력은 백성에게서 온다고 강조하며 지방행정의 뼈대를 세운 『목민심서』는 2세기가 흐른 지금 봐도 새롭다.
 
“『목민심서』가 꿈꾼 나라다운 나라만 지켜도 우리는 세계 으뜸으로 잘 살 수 있어요. 6월 지방선거에서 다산이 제시한 국정 개혁안에 맞는 인물을 뽑는다면 촛불혁명의 완수가 앞당겨질 겁니다. 이 날을 위해 온 국민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가제 『풀어쓰는 목민심서』를 쓰고 있어요.”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쓴 다산 관련 저서들. 왼쪽부터 『다산 정약용 평전』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새벽녘 초당에서 온 편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쓴 다산 관련 저서들. 왼쪽부터 『다산 정약용 평전』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새벽녘 초당에서 온 편지』.

‘풀쓰’ 1000회 글에 박 이사장은 『목민심서』를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독일 경제학자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비교했다. 두 저서가 세계사 변혁기 유럽에서 저술돼 주목받은 데 반해 『목민심서』는 조선에서 태어난 책이라 진면목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대해 백낙청 교수는 “『목민심서』가 한문으로 쓰였고 출판이 안 된 채 필사본 몇 권으로 돌아다닌 탓”이라 풀이했다.
 
“칼럼을 쓸 때마다 이런 경우에 다산은 뭐라 했을까 생각합니다. ‘풀쓰’는 다산의 저서 안에서 모든 해답을 찾아야 하니 더 어려워요. 평소 읽으면서 책에 줄을 그어 놓거나 단상을 적어놓은 것을 복기하며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실마리를 풉니다. 신기한 건 주제만 잡으면 파지 없이 일필휘지한다는 거죠. 머리 구조가 이미 다산의 생각 틀에 겹쳐져 있는 셈입니다.”
 
박 이사장은 “지인들이 1000회를 축하하며 2000회를 외치고 있지만 다산이 그토록 염원한 공평하고 청렴한 세상은 아직 멀었다는 판단에 힘이 빠진다”고 털어놨다. 다만 다산의 정신이 지금이라도 실천되기 위해서 ‘풀쓰’는 멈출 수가 없다는 각오로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 기력이 허락하는 날까지 몇 회가 되건 써보겠다는 각오다.
 
“한 달에 네 번 ‘거시기 산악회’ 회원들과 산을 탑니다. 팔순 선배들을 보면 전 아직 청년이죠. 술은 좀 줄었지만 매일 서울 서소문 다산연구소에 나와 젊은 학자들과 토론하고 세상 돌아가는 걸 지켜봅니다. 올해가 참 중요합니다. 모두 힘을 모아 새 시대를 열어야죠.”
 
박 이사장은 다산이 주창한 세 가지 기본 덕목을 다시 강조했다. 율기(律己), 봉공(奉公), 애민(愛民)이다. 마음을 단속해 인격 수양에 힘쓰고, 공무에 헌신해 정성껏 봉사하며, 힘없고 약해 자력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이들을 사랑하기다. 복지국가의 뼈대를 이미 200년 전에 제시한 다산의 말씀을 이제 우리는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몇몇 아는 분들이 ‘풀쓰’ 1000회 기념 저자와의 대화 행사를 하자고 해서 다 낭비라고 일축했어요. 다산이라면 뭘 했을까 짚어봤죠. 『목민심서』의 심서(心書)는 뜻은 있으나 몸소 행할 수 없는 상황을 표현한 제목입니다. 정치 행위로 실천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묻어나죠. 이제 그 다산의 200년 된 한을 풀어드릴 수 있는 적기가 왔어요.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목민심서』에 걸맞은 각 지역 시장과 도지사를 뽑는다면 다산이 꿈꾼 백성이 참다운 나라의 주인 되는 나라가 이뤄질 겁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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