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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북녘 번져 갈 올림픽 열기 … 대동강 얼음 녹일까

축제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92개국 2900여명 선수가 ‘하나 된 열정’으로 어우러진 국제 스포츠 잔치였다. 17일간 일정으로 짜인 평창 겨울올림픽은 이번 주말 피날레를 장식한다. 평창올림픽은 ‘평화올림픽’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핵과 미사일로 한반도에 전운을 드리우게 만든 북한 김정은 체제를 한국과 국제사회는 올림픽 무대에 세워줬다. 한 때 “(올림픽) 잔칫상이 제사상이 될 수 있다”고 겁박하던 북한이 올리브 가지(branch)를 부여잡고 등장한 것이다.
 
평창올림픽 무대에 뛰어든 북한에게 큰 어려움은 없었다. 마감을 한참 넘겼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막판까지 뒷문을 열어뒀다. 흥행요소를 하나라도 더 챙기려 애쓴 데다, 토마스 바흐 위원장의 차기 입지를 다지려는 계산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개최국인 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북한 참가를 간절히 원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1일 신년사에서 평창 참가를 공언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청와대는 김정은 신년사 몇 시간 만에 반색하며 환영 입장을 냈다. 9일 만에 열린 판문점 고위급 회담에선 북한 선수단의 평창행이 타결됐다. 예술단·응원단 파견은 물론 마식령스키장 공동훈련 같은 까다로울 듯한 사안도 남측이 모두 받아들였다. 대북제재 대상인 만경봉 92호에 응원단을 태워 묵호항에 보내고, 기피 인물인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을 방남 리스트에 올려도 무사통과였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가수 출신 현송월을 선발대에 포함시킨 북측의 포석은 제대로 먹혔다. ‘서울 핵 불바다’ 운운하던 김정은의 호전적 이미지는 희석됐다. 김정은과 노동당 대남 전략가들의 승부수는 김여정 투입이었다. 여동생까지 내세워 남북 정상회담 카드를 꺼내고, 평창올림픽 개막식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만들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총출동해 특사 맞이에 나섰다. 김정은이 지난 12일 김여정으로부터 2박3일 간의 남한 체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남측이) 우리 측 성원들의 방문을 각별히 중시하고 편의와 활동을 잘 보장하기 위해 온갖 성의를 다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언급한 건 만족감의 표시다.
 
북한은 올림픽 개막 이후 바람몰이에도 공을 들였다. 참가 선수와 임원진을 합쳐 20명에 불과한데도 500명 안팎의 예술단·응원단 등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대표단을 보낸 건 이 때문이다. 현송월을 단장으로 새로 구성한 삼지연관현악단을 투입하고, 철저한 선발 과정을 거쳐 뽑았을 법한 응원단 229명도 파견했다.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만경봉호에 태워 보낸 이른바 ‘미녀 응원단’ 열풍을 재연하겠다는 의도로 보였다.
 
북한의 계산은 빗나갔다. 16년 전과 같은 선풍적 관심은 없었다. 오히려 경기 흐름이나 승부와 무관하게 기계적 응원을 펼치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철저한 통제 속에 숙소와 경기장을 오가야 하는 북한 응원단에 동정의 목소리도 나왔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 응원단의 경우 밤늦게 경기를 마치고 숙소인 인제 스피디움(호텔)으로 돌아간 뒤에도 생활 반성모임인 ‘총화’와 사상교양을 철저하게 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설 명절인 지난 16일에도 김정일(2011년 사망) 생일 축하 행사와 교양사업에 동원되는 바람에 파김치가 됐다는 얘기다.
 
북측은 응원단 분위기 띄우기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예정에 없던 야외 깜짝공연도 5차례 펼쳤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우리 언론과 국민 여론의 관심을 끄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데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사정은 북한 태권도 시범단도 마찬가지다. 사범과 선수 등 28명으로 구성된 시범단은 9일 올림픽 개회식 식전공연에 이어 속초 강원진로교육원(10일)과 서울시청 다목적홀(12일), 서울 MBC상암홀(14일) 등 4차례 공연을 펼쳤다. 하지만 섬뜩한 구호와 격파 시범이 주류인 레퍼토리에 객석의 초청인사와 관객은 호응하지 못했다.
 
북한은 그들이 ‘장애자 올림픽’이라 부르는 패럴림픽(3월9~18일)에도 참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하지만 이미 평창올림픽 대차대조표 작성에 들어간 분위기다. 개막 전부터 평창에 머물던 장웅 북한 IOC 위원이 18일 평양으로 돌아간 건 ‘볼 장은 다 봤다’는 메시지다.
 
노동당 고위 간부들은 북한이 평창올림픽 장외 경기에서 나름 선전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정상회담 카드로 청와대 문을 열어젖혔고, 예술단과 응원단 파견으로 민심을 홀렸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김여정의 평창 보고서는 달라야 한다. 무엇보다 예전 같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대북여론 실상과 진단, 타개 방안이 솔직하게 담겨야 한다. 첫 핵 실험(2006년 10월)은 대북여론 악화의 분기점이 됐다. 여기에 김정은의 미사일 도발과 추가 핵 실험이 이어지면서 불신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김정은 체제의 핵 무장 노선 포기가 없다면 대남 평화공세는 설 땅이 없다. 3차 정상회담은 요원하다. 김여정의 평양 초청 메시지에 반색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며 호흡조절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둘째로는 핵을 거머쥔 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절함이 포함돼야 한다. 누구보다 김여정 스스로 절감했을 사안이다. 평창올림픽 무대에 데뷔했지만 ’핵 도발자‘ 김정은의 여동생에겐 싸늘한 눈길 뿐이었다. ’안보 올림픽‘으로 불리는 뮌헨안보회의(MSC, 2월16~18일)에 참석한 제임스 리시 미 상원의원은 북한에게 시간이 얼마 없음을 경고한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핵무기를 미 본토로 실어 나를 운반시스템(ICBM)을 완성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며 ”대통령은 곧바로 그렇게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전한다.
 
과장된 ’미국 위협론‘으로 군사도발 노선과 3대 세습의 폭압통치를 정당화하려던 시대는 끝내야 한다. 피해망상 수준으로 번진 병영국가 스파르타의 불안감은 아테네 제국의 몰락을 초래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불씨가 됐다. 2500년 전 역사의 교훈은 아직도 유효하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지만 가끔 운(韻, rhyme)을 맞추는 경우가 있다“는 마크 트웨인의 혜안에 주목해야 한다. 이젠 김여정이 나서 오빠의 집무실 책상에서 핵 버튼이 치워져야 한다는 조언을 해야 할 때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절기인 우수(雨水)가 그제였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 간 화해협력 분위기가 반짝 이벤트로 끝나선 안 된다. 그 열기와 감동의 울림이 합쳐져 북녘의 두터운 얼음장이 녹아내려야 한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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