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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산, 세밀한 꽃 … 농부의 끈기로 일군 수묵 70년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 전시되고 있는 수묵 화가 박대성의 ‘독도’(218×800㎝, 2015). [사진 가나문화재단]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 전시되고 있는 수묵 화가 박대성의 ‘독도’(218×800㎝, 2015). [사진 가나문화재단]

“저는요 두메산골에서 태어났어요. 지금 사는 곳도 두메산골이고요. 이 시골 사람이 대만, 미국 뉴욕에서 1년씩 살아보고, 파리에서도 몇 개월 살아보긴 했어요. 그래도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일생을 산골에서 산 시골 사람이죠.”
 

다음달 4일까지 박대성 개인전
풍경화·서예 등 100여 점 나와
힘과 서정, 극단을 넘어선 화폭
민화 바탕 담대한 색채 돋보여

수묵화를 그리는 일흔세 살의 화가 박대성씨는 ‘두메산골’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경북 청도 출신인 그는 “예닐곱 살 무렵에 붓을 처음 잡았다”며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며 붓을 놓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부처바위(옥룡암)’(271×503㎝, 2017). [사진 가나문화재단]

‘부처바위(옥룡암)’(271×503㎝, 2017). [사진 가나문화재단]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 ‘박대성, 수묵에서 모더니즘을 찾았다’는 산골 출신 화가를 그대로 드러내 준다. 거대한 화폭에 담대한 붓질로 그린 산봉우리와 나무들, 작은 화폭에 섬세하게 그려 넣은 꽃 그림은 언뜻 보면 굉장히 대조적으로 보이지만, 자연을 몸으로 호흡하며 자란 이의 관찰력과 감수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지하 1층부터 1,2,3,5층 등 5개 층 전시실에 걸쳐 100여 점의 그림을 펼쳐 놓았다. 그가 “내 일생을 다 보여주는 전시”라고 할 만큼 그의 작품을 집대성한 자리다. 전시작은 그의 유명한 불국사 그림부터 서예 작품은 물론,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림 등을 망라한다. 한국화의 경계를 확장하기 위해 작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시도해온 다채로운 실험 결과물을 한자리에서 볼 드문 기회다.
 
‘법의’ (325×270㎝, 2010). [사진 가나문화재단]

‘법의’ (325×270㎝, 2010). [사진 가나문화재단]

그의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강력한 힘과 서정적 감성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단순해 보이는가 하면 세밀하고, 사실적인 것과 추상적인 표현 등 양극단이 한 화폭 안에서 같이 읽힌다.
 
“88년 직접 만나러 갈 정도로 우러러본 중국 현대 산수화의 대가 리커란(李可染·1907~1989)에게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그는 리커란의 웅장한 구도와 힘찬 기(氣)를 내뿜는 듯한 굵직한 선에서 수묵화의 가능성을 보았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때로는 간략하고 대담하게 붓을 움직이지만, 때로는 머리카락을 쪼개듯 섬세하게 그립니다. 그게 제 감성인 것 같아요. 바로 여기서 제 언어를 찾은 셈이죠.”
 
지난 20년 동안 경주 남산에서 살고 있는 박대성(73) 화백.

지난 20년 동안 경주 남산에서 살고 있는 박대성(73) 화백.

그가 그리는 풍경화는 이런 특징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신작 ‘노매’도 꿈틀거리는 듯한 줄기와 가느다란 곁가지가 하나로 얽혀 있는 형상이다.
 
박 작가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18세 때부터 서정묵의 문하에서 5년간 그림을 배웠고, 이후 이영찬 화백과 서울대 동양화과 박노수 교수의 조언을 받으며 그림을 그렸다. 1974년 대만, 94년 미국 뉴욕 등지에 머물며 자신이 그릴 수 있는 수묵화란 어떤 것인지, 시대를 담아낸 그림은 어때야 하는지 등에 대해 고민했다.
 
신달자 시인은 “박 화백의 절대자랑은 ‘끈기’라는 것을 나는 안다.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면서 부드러움이 있다”(『묵향 반세기-박대성 화가와 함께』에서)고 적은 바 있다. 자연성의 힘과 유연성이 함께 녹아 있는 그의 독특한 화풍이야말로 농부처럼 묵묵히 운필에 집중해온 결과라는 얘기다.
 
민화를 재해석한 그림들도 담대한 선과 감각적인 컬러가 눈에 띈다. 박 작가는 “민화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더 찾아내야 한다”며 “여기에 수묵화의 가능성에 대한 많은 해답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20년째 경주 남산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는 “여생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 고민하다가 찾은 곳이 바로 경주였다”며 “창작의 원혼들이 나를 그곳으로 불러들인 것이 아닌가 싶다. 내게 경주는 창작의 도시 그 자체”라고 말했다. 이번엔 그는 서예 작품도 많이 공개했다. “글씨로 단련된 붓의 힘과 긴장감이 그림에서도 이어지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그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나는 다시 새로운 곳으로 날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3월 4일까지.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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