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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먹거리 빅데이터·AI, 문과생도 선택 아닌 필수

서울대 ‘4차 산업혁명 아카데미’ 가보니
서울대학교 빅데이터연구원 ‘4차 산업혁명 아카데미’에서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 각자 만든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서울대학교 빅데이터연구원 ‘4차 산업혁명 아카데미’에서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 각자 만든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삼성증권을 다니던 방승환(34) 씨는 지난해 사표를 냈다. 인공지능(AI) 바둑프로그램인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기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였다. AI 시대가 눈앞의 현실로 느껴졌다. 증권사에도 이미 AI 로봇이 자산을 관리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방씨는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출신이다.
 
“창구 직원들을 빼고 기계로 대체하고, 거래도 다 모바일로 하는데 증권사 기존 인력들이 경쟁력이 있을까 하고 반문했다. 10년 뒤에는 경쟁력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씨는 같은 해 6월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이 시작한 ‘4차 산업혁명 아카데미’ 과정에 몸을 담았다. 8개월간의 빅데이터·AI 분야의 혁신형 인재 양성 프로그램으로 120명의 수강생이 1~3학기(학기당 8주)엔 인공지능 에이전트, 빅데이터 플랫폼,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빅데이터 핀테크 과정 등을 배우고 4학기(12주)엔 기업이 제시한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프로젝트 실습을 한다.
 
방씨는 SK텔레콤과 함께 ‘넘어지는 사람’을 영상으로 인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스스로 넘어지는 영상 150개를 촬영하고 이를 100장의 사진으로 나눠 1만5000장의 사진을 데이터로 만들었다. 이를 프로그래밍한 뒤 판단 오차를 줄이기 위해 수만 번 실행하는 ‘딥러닝’ 과정을 거쳤다. 방씨는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AI 영상 인식 기술을 공부하다 보니 CCTV(폐쇄회로 영상), 자율주행뿐 아니라 스포츠에서 어떤 선수가 몇 번 회전했는지 등의 기록을 영상으로 판독해 기록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생각하면 그게 다 사업 아이템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중국에선 정부 주도로 담을 넘거나 물건을 훔치는 행동, 성추행 등의 범죄를 CCTV 영상에서 실시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평안(平安) 도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빅데이터와 AI를 가르치는 아카데미 과정에는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전기정보공학부, 산업공학과 뿐 아니라 자연대, 사회대, 인문대, 경영대 등 범대학 차원의 40여 명의 교수진이 강의에 참여한다. 빅데이터 프로그래밍은 컴퓨터공학에서, 데이터 마이닝은 산업공학, 마케팅 전략은 경영학과, 최근 AI 스피커 등에서 보는 자연어의 처리와 이해는 언어학과에서 가르치는 식이다. 학제가 통합되는 교과 과정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데이터 처리 기술의 습득이 필요한 이과적 영역이다.
 
그런데도 아카데미 교육생들은 문과 계열 전공자(69.0%)가 이과 계열보다 많았다. 현실에선 문과 출신이 이과보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문과 중에서도 경영·경제 등 상경대가 전체의 33.8%, 인문계열 전공이 22.5% 등을 차지했다. 이들은 기업에서 인턴을 했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데이터를 다루는 능력과 재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한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과정에 참여한 이수진(26) 씨는 “학부에서는 컴퓨터 강의를 듣고 싶어도 전공자들이 우선시 되고 그들과 함께 수업을 들으면  좋은 학점을 받기 쉽지 않은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필요한 공부는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씨는 아카데미 과정에 참여 중이던 지난 1월 디지털마케팅과 정보통신(IT)융합서비스 사업을 하는 현대자동차 그룹 IT 계열에 취업했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정유진(27)씨는 홍보대행사 2곳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다 아카데미에 지원했다. 반복되는 단순 업무가 많았고 이를 자동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게 출발점이었다. 그는 “마케팅에서도 데이터에서 인사이트(통찰력)를 얻고 해석할 수 있는 인재를 찾는 회사가 많다”고 했다.
 
장씨는 분당서울대병원과 환자들의 보행 데이터와 임상 진단을 연결하는 과제를 하고 있다. 몸에 부착한 센서에서 나오는 다량의 데이터를 딥러닝으로 분석해 이상 신호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그는 데이터 처리를 위한 수학과 프로그램을 배워나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공부했던 분야와 너무 달랐지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습득할 수 있었다”며 “경제학에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것처럼 내가 가진 능력을 다양하게 쌓아둬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한동대 경영경제학부를 졸업한 진승교씨도 “이공계에서 수학을 배워온 학생들과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델을 만들 때 프로그램이 성능을 낼 수 있게 돼 있어서 수학적 베이스가 없어도 가능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전공과 연계한 연구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성균관대 생명과학과에서 ‘초파리 미각 신경’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해인(33)씨는 이렇게 말했다.
 
“박사 졸업을 하고 나서 다음 진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미 자넬리아연구소 크리스틴 브랜슨 교수가 머신러닝 기법을 이용해서 초파리 행동 분석 툴을 개발하는 연구를 하는 것을 보고 아카데미에 지원하게 됐다. 1년 가까이 공부를 하면서 지금은 거의 딥러닝 알고리즘 코드를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전형적인 생물학자지만, 컴퓨터 과학자들과 생물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컴퓨터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게 목표였고 많이 이뤘다고 생각한다.”
 
김씨는  초파리 뇌의 신경 조직을 3D(3차원) 딥러닝을 적용해 실제 모양으로 추정해나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복잡한 신경회로들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시각화하는 것이 목표다.
 
교육생들은 AXA다이렉트·교보생명·네이버·분당서울대병원·삼성SDS·하나금융티아이·GS SHOP·KB 생명보험·NC소프트·SK텔레콤 등 21개 기업의 현장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지도교수들과 함께 수행했다. 20일 수료를 앞둔 교육생 중 11명이 1월 중 기업체에 취업했다.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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