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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생일 선물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2009년 1월 씨티은행의 주식은 1달러로 폭락했다. 금융시장은 끝도 없는 나락으로 추락했다. 그 여파로 국채에 대비되는 자산담보부채권의 신용 스프레드는 치솟았다. 심각한 신용경색이 이어졌다. 한 달 전에 예약해야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유명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예약 없이 당일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가도 텅 비어 있어 테이블을 잡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월가의 고급 아파트는 해고된 대형 투자은행의 직원이 월세를 내지 못하고 야반도주하는 바람에 현관문에 주인 없는 잡지들만 나뒹굴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망가지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에 생일이 다가왔다. 방파제가 무너져 바닷물이 밀어닥치고 있는 세상을 보고 있는 와중이었었다. 물론 그 이후인 2011년을 돌아보면 구제대상이 된 씨티은행과 AIG 그룹의 주가는 공적 자금 투자 이후 5배 이상 올랐다. 생일날 아침 나는 친구 톰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돈 좀 있니. 씨티은행 주식 좀 사라. 역발상 투자란 게 있어. 시장이 달아오를 때는 과열된 것이라 비관적으로 행동하는 게 맞고, 시장이 냉각됐을 때 바닥을 다진다고 보고 오히려 낙관적으로 행동하는 전략이지. 이게 말이 쉽지 그런 태도를 견지하는 게 어려워. 그런데 동물적 느낌이 들어. 정부가 돈을 넣을 거야.”

 
톰은 웃으며 말한다.

 
“네 말은 돌을 금이라고 해도 내가 믿지. 빌. 생일 축하해. 고마운 정보 감사해.”

 
내 말이라면 무조건 믿는 톰은 생일 축하 인사와 함께 "알았다"고 대답했다. 톰과 린다는 최근에 통화한 적은 없었다. 나는 톰에게 투자의 요령과 주의 사항을 당부했다.

 
“다들 시장이 달아오를 때 여지없이 투자에 들어가게 마련이야. 금융이론 중에서 양떼이론이란 게 있다. 다른 무리를 본능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심리적 상황을 말하지. 사실 대부분의 투자자는 무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어. 그게 당시에는 편안하기 때문이야. 불난 집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아. 그런데 망원경 이론이란 걸 생각해 보자. 화재가 발생하면 불난 집의 주인은 대피하느라고 경황이 없어. 그 짧은 순간에 본인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을 챙겨서 가까스로 대피하지. 네가 멀리서 불구경한다고 생각해 봐. 좀 안된 이야기지만 양심도 찔리고. 너는 오히려 마음이 여유로울 수 있어. 망원경으로 불이 난 집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는 거야. 집주인이 미처 가져 나오지 못한 보석함에 너의 눈이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사이클에서 보석함을 잘 건지라는 내 메시지는 톰에게 잘 전달되었고 몇 년 후 톰은 상당한 자산을 불리게 되었다.

 
씨티은행 주가가 1달러가 된 날과 내 생일은 묘하게 겹쳤다. 버지니아 페어팩스 시티의 약속된 시간 약속된 장소. 릭의 집 초인종을 두들겼는데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릭에게 전화를 걸자 메시지를 남기라는 소리만 들렸다. 분명히 어제 확인을 하였는데 릭도 린다도 없는 듯했다. 차고의 문도 닫혀 있었다. 30여분을 서성이니 조금 화가 났다. 무슨 사정이 생겼나 하고 집에 가기 위해서 몰고 온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 순간 릭과 린다가 문을 활짝 열고 말한다.

 
“빌, 오! 잘 생긴 빌. 생일 축하해. 두드려라. 문은 열릴 것이다. 그런데 너 투자의 명수 아니었니. 인내심을 키워야지.”

 
아니 무슨 이런 장난을 하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러자 릭은 미안하다면서 말했다.

 
“빌, 화났니. 우리는 지금 색다른 연출을 하려고 했지. 어때? 열쇠가 없으니 못 들어왔지. 네가 문이 이어지는 끝도 없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봐. 그게 우리가 만든 프로토콜의 원리야.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를 네가 체험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한 거야. 장난을 쳐서 미안해. 공자님 가라사대 방에서 문을 통하지 않고 나갈 수가 없듯이 사람이란 길을 밟지 않고 갈 수도 없지. 릭 가라사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서되 다음 문은 앞의 열쇠로는 열수가 없다.”

 
나는 화를 낼 수도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조금 화난 얼굴로 그들을 보다가 피시시 웃음을 보이고 말았다.

 
“첫 문을 열기 위한 개인 열쇠는 누구에게도 줄 수 없어. 너에게 줄게. 생일 선물이야. 네게 우리는 서명할 기회를 줄 거야.”

 
문에 들어서는 순간 축하의 폭죽이 터졌다. 생일 파티치고는 상당히 준비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다과를 즐기며 수다를 떨었다. 릭이 말한다.

 
“로마 격언에 여자가 결혼할 때 보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남자의 돈이고 둘째는 남자 집안의 돈이며 셋째는 자신에게 돌아올 돈이다. 오늘 빌의 귀빠진 날에 이런 말 해서 미안해. 린다. 돈 싫어하지 않지.”

 
린다는 웃으며 말했다. 나를 대하는 눈동자가 이제 다소 편한 느낌이다. 여자는 헤어진 남자를 멀리한다는데 이상하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계속했다.

 
“돈 좋아하는데 여자, 남자가 있을까. 무슨 공작 이야기인데 남자를 위한 조롱 한 번 할까. 남자가 마누라에게 차 문을 열어줄 땐 그 차가 새 차이거나 그 마누라가 새 마누라일 때뿐이라고.”

 
그 말이 무섭게 릭은 린다에게 가서 포옹과 함께 이마에 가벼운 키스를 한다. 린다는 그런 릭을 피하려다 내 눈을 보더니 순순히 응했다.

 
“오. 린다. 그런 무서운 말을 하다니. 나의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을 내 친구 빌 앞에서 맹세할게. 흔히 여자와 포도주는 남자의 판단을 망친다고 하지. 하지만 내 사전에 그런 말은 없어. 린다. 그대는 가난한 남자를 사랑한 여자를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박장대소를 하며 시간을 즐겼다. 릭은 이후 엄숙한 어조로 말을 했다. 선서하라고 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님. 나는 그대의 이름을 사랑합니다. 비밀로 가는 문에서 우리를 믿습니까?”

 
“네.”

 
“사토시 나카모토님. 이제 당신은 사이버 세상에서는 그 이름으로 남고 우리의 지시를 받아들이겠습니까?”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릭의 표정이 좀 굳어지고 린다는 무표정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말했다.

 
“네.”

 
“사토시 나카모토님. 당신은 이제 우리의 비밀요원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 경제의 안정과 번영을 넘어 유토피아를 꿈꾸는 비트코인의 세계로 온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는 사토시 나카모토 P2P 재단 사이트를 만들 것을 요청했다. 누군지 추적하기 어려운 구조로 말이다. 나는 그의 지시를 모두 따르기로 약속했다. 그는 암호화의 원리와 작업증명(proof of work), 채굴(mining)이라는 용어를 내 논문과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빌, 이거 장난이 아니야. 아마 우리를 믿는 사람은 처음에는 적을 거야. 고독은 때로는 성숙을 만들잖아. 인터넷 혁명도 그랬어. 블록체인 혁명도 그렇게 될 거야.”

 
“포도주가 오래되어야 숙성을 하듯. 우리는 숙성된 포도주의 맛을 언젠가 즐기게 될 거란 말이지.”

 
“빙고. 네가 문을 열기 위해서는 이제 암호키가 있어야 해. 누구나 우리의 회원이면 가질 수 있는 공개키와 새로운 문을 향한 개인키를 가져야 우리의 세계에 들어오는 거야. 새로운 문을 들어설 때는 앞의 문의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해. 그래서 우리의 문은 길게 이어지는 구조가 되는 거야. 기차 칸이 길게 늘어지듯 말이야. 문은 2140년까지 가야 모두 열 수 있어. 아마 우리 사후에도 비트코인은 영원할 것이야.”

 
우리는 포도주 앞에서 엄숙한 선서를 하고 비트코인의 불멸을 위해 기도하였다.

 
“문을 여는 방법은 처음에는 쉬워. 특히 처음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기에 우리가 서로 문을 여는 거야. 문을 열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유인책이 필요해. 그 유인책으로 비트코인을 줄 거야. 그리고 그 유인책은 해쉬 함수라는 수학 문제를 푸는 거야.”

 
“어렵지는 않겠지.”

 
“그럼. 암호학을 조금만 알면 이해가 가는 수준이야. 그런데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 수학 문제를 풀기가 쉽고 갈수록 난이도는 어렵게 된다. 주식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 사야 하듯이 말이야. 아까 2140년이라 했지. 내가 10분마다 비트코인의 새로운 거래가 발생하도록 프로그램을 짜 두었어. 처음에는 많은 비트코인이 보답으로 주어지지만 2140년까지 그 사례의 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 거야. 나는 인기의 법칙을 적용했어.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나도 가늠하기 어려워. 내가 죽어도 남을 수 있는 불멸의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했어. 네 논문이 상당히 도움되었다.”

 
요약하면 비트코인은 총 발행량이 2100만 개다. 마치 금이나 석유처럼 채굴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는 셈이다. 비트코인은 암호화된 수학 문제를 풀어 채굴하는 시스템으로 거래는 개인 대 개인(P2P) 기반 분산 데이터베이스로 이뤄진다. 그의 말을 듣고 진지하게 말했다.

 
“중앙은행도 상업은행도 그 어떤 형태의 제3의 기관이 없는 가상의 세계에서 누구도 문에서 뒤로 나가지 못하고 전진만 하는 거야. 누구도 다른 사람이 연 문을 침해해서는 안 되고 문을 연 정보는 문을 연 참가자 모두에게 공개되는 거야. 다만 문은 누구에게도 개방되어야 하지. 그가 우리 비트코인의 길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선구자의 길에 행운의 여신 미소가 비치는 것은 당연하잖아. 두 번 세 번 아니 백번의 문을 열 기회를 우리는 주는 거야. 기회를 무수하게 주는 것은 민주주의의 세계로 가는 길이야. 승자 독식의 기득권 세계는 이제 신물이 나.”

 
린다가 거들었다.

 
“프로그램이 너무 잘 짜여 있어서 누군가 사토시를 추측할 때 여러 유명인사의 이름을 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봐. 영화 「뷰티풀 마인드」로도 알려진 천재 수학자 존 내쉬 있잖아. 아! 그 영화 너무 멋있어.”

 
그 말을 하자 릭이 말했다.

 
“너 존 내쉬보다 그 역할을 했던 러셀 크로우를 좋아하는 것 아니야. 러셀 크로우가 빌을 닮았네. 하하...”

 
순간 린다는 얼굴을 붉혔고 내 쪽을 잠시 쳐다보았다. 나는 멋쩍어하면서 첫 스타 탄생의 순간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존 내쉬도 탈중앙화된 화폐에 관심이 높았다. 그는 수학자로 노벨경제학상을 탄 인물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시연회 몇 년 후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다 부인과 함께 교통사고로 세상과 이별을 했다. 릭은 시연회를 가질 준비를 했다. 나는 기쁜 마음에 속으로 말했다.

 
“첫 비트코인은 나 빌이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갖는 것이다. 그 서명식이 오늘 내 생일의 축하연의 하이라이트다.”
 
※ 2월 23일 금요일 1시에 11화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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