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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기 명인이 건네준 CD

삶과 믿음
“세례를 받으니까 무엇이 좋으십니까?”
 
“글쎄요….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데 주일마다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는 것이 일상의 즐거움이 되었어요. 그리고 내가 어딘가에 기대어 기도할 대상이 생겼다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딱딱하고 어렵다고들 하는데, 나는 미사가 진행이 잘 어우러진 구조로 되어 있는 것 같아 아주 흥미롭습니다.” “미사 때 신부님이 하시는 강론은 재미있으세요?”
 
“미사 때 신부님은 판에 박은 듯한,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세요. (웃음) 지난주에도 그리고 그 전 주에도 항상 같은 결론의 말씀이세요. 마치 어렸을 때 동네 훈장님이나 초등학교 선생님 말씀 같아요.”
 
“재미없으시겠네요?”
 
“아닙니다. 이제 제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 오히려 그 말씀이 좋아요. 매번 뻔한 말씀인데도 그것이 진리더군요. 그게 이상하게 좋고 마음이 끌려요.”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이 천주교 입문예식인 세례성사를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눈 대화였다. 종교에 귀의한 사람의 여유인지, 그분에게서 물 흐르는 듯한 유유자적함과 이유 모를 기대감도 느낄 수 있었다. 황병기 선생의 부인 소설가 한말숙 여사는 세례 직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죽고 난 후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믿어보자, 따라오라’고 해요. 우린 지금도 참 사랑하거든요. 저승이 있다면 죽은 후에도 만나자 싶어서 세례까지 받게 됐네요.
 
사람이 태어나 평생 한길을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보통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기 분야에서 유명해지면 다른 길을 기웃거리기 쉽고 세상의 유혹도 심하다. 나는 그와 나눈 짧은 대화에서도 왜 세상이 그를 ‘명인’이라 칭하는지 알고도 남았다. 헤어지며 황병기 선생은 CD 한 장을 건네 주셨다. 자신의 가야금 연주가 들어있는 음반이었다. 어느 날 저녁에 그 음악을 들었다. 나는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한음 한음이 마치 무어라 말을 거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해 신비로웠다.
 
이제는 그 아름다운 명인의 모습도 연주도 볼 수 없다. 한국 전통음악인 가야금 연주는 황병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옛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창작음악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그는 서양음악과 전통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전통적인 연주법이나 음계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경지를 구축하는데 노력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도 함께 기꺼이 연주했다. 사람들은 국악 발전을 위해 생애를 바친 고인의 선종을 아쉬워하며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원했다. 나도 어느 일간지의 제목처럼 그 고운 현의 노래를 천상에서도 들려주시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허영엽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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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