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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보다 높은 가치 ‘공정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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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두 달 전의 일이다. 2017년 12월 10일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열린 BMW댈러스마라톤대회에서,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경기의 한 장면이 있었다. 이 대회의 여성부에 출전한 뉴욕의 정신과 의사 첸들러 셀프가 막판까지 1위로 달리고 있어 우승이 유력해 보였다. 그런데 결승선을 고작 183m 남기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다리가 완전히 풀려 더 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던 2위 주자, 17세의 여고생 아리아나 루터먼에게는 다시없는 기회였다. 하지만 루터먼은 그를 그냥 지나쳐 가지 않았다.
 
루터먼은 셀프를 부축하고 함께 뛰기 시작했다. 자꾸만 의식을 잃으려 하는 셀프에게 ‘당신은 할 수 있어요, 결승선이 바로 저기 눈앞에 있어요’라고 끊임없이 응원하며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결승선 앞에서 그녀의 등을 밀어 우승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날 셀프는 2시간 53분 57초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지만, 관중의 환호와 찬사는 2위인 루터먼에게 돌아갔다. 인생을 살만큼 살아보고 세상살이의 이치를 깨우친 어른이 아니라 10대 중반의 고교생이 한 일 이었다. 알고 보니 이 경탄할 만한 청소년 선수는 12살 어린 나이 때부터 댈러스의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도움의 손길을 나누던 숨은 봉사자였다.
 
한국에서 열리는 두 번째 올림픽, 평창 겨울올림픽이 한창 열전 중에 있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페어플레이, 곧 공정 경쟁으로 떳떳하고 보람 있는 경기를 치르는 것이 올림픽 정신이요 그 목표다. 그에 비추어 보면 루터먼의 사례는 페어플레이를 넘어 인간애와 인류애를 실증한 눈부신 모범에 해당한다. 평창올림픽과 뒤이어 열리는 평창패럴림픽의 성공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정신적 가치가 살아있어야 하고 선수들의 땀으로 얼룩진 경기장마다 페어플레이의 규범이 지켜져야 한다. 모든 경기가 선수의 합당한 자격 검증이나 도핑 테스트를 앞세우는 것은 바로 그 공정성의 문제 때문이다.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은 국가의 명성과 국제적 신인도의 격상을 도모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다. 그래서 여러 나라가 기를 쓰고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터이다. 개최국의 국격과 그 내부의 인프라를 향상시키는 올림픽의 힘을 지혜롭게 활용하면, 국가가 당착한 난제들을 풀어나가는 데도 크게 유익할 것이다. 특히 그 정신의 근본인 페어플레이 구현에 있어 더욱 그렇다. 마치 구한말의 궁벽했던 시기처럼 세계 열강이 촉각을 집중하고 있는 한반도의 형편을 감안하면, 경기의 공정한 규칙을 원용하여 공정한 국제관계의 정립을 강력하게 요구할 수도 있다.
 
중국은 미국 못지않게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 중국이 ‘강국’이 아닌 ‘대국’으로 긍정적 역할을 한 전례가 거의 없다.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한 때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 불렀지만, 무슨 형제가 그 오랜 세월에 걸쳐 일방적 억압과 착취를 감행해 왔는가를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과 한국이 형제였을 때는 일제강점기, 함께 고난을 감당하던 시기 외에는 없다. 일본은 누대에 걸친 침략자의 나라였다. 더욱이 이 나라는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과거의 역사적 패악에 대한 반성이 별로 없고 앞으로 더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경기의 공정처럼 관계성의 공정을 촉구해야 한다.
 
평창올림픽에 ‘평양올림픽’ 논란을 불러온 남북관계의 새로운 구도 또한 이번 올림픽을 거치면서 떠오른 당면과제다. 북한은 현송월과 김여정 등의 카드를 활용하면서 매우 전략적이고 모양 좋게 남한 사람들의 주의를 순화시켰다. 하지만 조금만 더 숙고해보면 북한의 의도가 그 본질에 있어서 촌보의 변화도 없음을 깨닫기가 어렵지 않다. 국제사회에서 실추된 이미지를 개선하고 한반도에서의 정치적 주도권 확보와 핵 무력 완성의 시간 벌기라는 당초의 복심을 수정할 리가 없다. 그래서 ‘위장평화’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것이며, 올림픽 이후에 도래할 엄중한 사태들에 대한 경각심이 긴요한 형국이다.
 
올림픽 경기의 공정 경쟁을 지렛대 삼아 북한에 요구할 어젠다는 너무도 많다. 이러한 논리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또 제기해야 한다. 상황이 어려운 점은 남북관계 현안이 상당 부분 국내 문제와 연동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 세력 간의 화합과 국론 통합이 이 정치적 게임에서 승률을 올릴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인데도 우리 사회는 그 해묵은 숙제를 방기하고 있다. 국내의 공정성 쟁점만 해도 금수저·흙수저, 갑질, 헬조선 등 ‘기울어진 운동장’의 난제가 너무 많아 감당이 쉽지 않다. 이와 같은 때, 평창올림픽이 선린우호와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넘치고 그 자장이 우리 사회와 나라의 내일에 값진 자양분으로 작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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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