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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사막서 빛난 블록체인

홍은택 칼럼
두 달 전쯤 미국의 온라인 정보공유 사이트인 레딧닷컴의 게시판에 ‘안녕’이라고 시작되는 짧은 글이 게재됐다. 비트코인에 투자해서 평생 쓰지 못할 돈을 벌었다면서 번 돈 대부분을 기부하겠으니 돈이 필요한 비영리단체들에 이 소식을 전해달라는 거였다. 그 액수가 당시 비트코인 가격으로 8600만 달러(910억원)에 달했다. 장난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걸 미리 알았는지 이미 기부한 단체들을 간략히 언급했다.
 
통합의료보험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단체, 아프리카에 식수를 공급하는 워터 프로젝트, 망중립성과 인터넷 이용자들의 권리와 사생활을 보호하는 단체인 EFF에 각각 100만 달러씩, 그리고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활용해서 세계 곳곳에 자선을 확산하는 단체인 빗기브 재단에 50만 달러를 기부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기자들이 이 단체들을 취재해보니 “이런 귀인이 나타나다니…” 하는 반응과 함께 사실로 확인됐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파인, 이 기부금을 운영하는 펀드를 파인애플 펀드라고 밝히면서 웹사이트(pineapplefund.org)를 통해 기금 신청을 받는다고 했을 때 1비트코인의 가격은 1만7000 달러였다.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은 1만 달러 이하로 떨어져 펀드 금액도 5000만 달러 대로 줄어들었다. 그가 펀드에 할당한 비트코인은 5057개다. 참고로, 비트코인이 처음으로 환금성을 가진 화폐로 쓰였을 때 1비트코인의 가격은 1센트도 안됐다. 2010년 5월 22일 플로리다주 잭슨빌에 사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라스즐로 하녜크즈가 1만 비트코인을 주고 파파존스 피자 두 판을 사는데 성공했다. 당시 피자 두 판의 가격은 30달러였으니 1코인당 0.003센트였던 셈이다. 그 시절로 돌아가면 파인의 기부 코인 5057개도 15달러 50센트에 불과하다.
 
지금은 그 코인으로 피자를 1000억원 어치나 시켜 먹을 수 있는데 고작 두 판에 소진한 하녜크즈는 잠이 잘 올까 궁금하기도 하고, 8년도 안 돼 3300만배의 상승률을 기록하는 투자대상이 과연 정상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하지만 누구는 일찍 투자해서 1000억원, 누구는 1조원을 벌었네 하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까짓 것 원래 20달러도 안 되는 돈이었잖아’ 하면서 큰 돈을 쾌척하니 폼 난다.
 
이 일화에서 무엇보다 재밌다고 생각한 점은 그가 블록체인 방식을 활용해서 기부했기 때문에 익명성과 투명성이라는, 언뜻 상반돼 보이는 두 가지 특성이 다 구현됐다는 점이다. 기자들이 파인의 정체(그 이전에 비트코인을 창시했다고 하는 사토시 나까모토의 정체)를 추적하고 있지만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있다. 어떤 중개기관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이 밝히지 않는 이상 신원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익명 가능성 때문에 자금 세탁이나 탈세의 수단으로 비트코인이 쓰이고 있다는 비난이 있는데 거래 자체는 공개적이다.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동의에 의해 거래가 성립되기 때문에 공개된 거래원장에 기록이 남게 되고, 한번 기록이 남으면 위·변조가 현재까지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파인이 기부한 내역은 언제든 누구나 확인 가능하다. 한 가지 더 이점이 있었다고 하면 중간에 송금 수수료를 물지 않아서 그가 기부하겠다고 약정한 돈 전액이 그대로 기부됐다. 그리고 모든 게 신속했다. 만약 현행 법 체계에 따라 기부금을 운영하려면 승인받는 데만 해도 꽤 시간이 걸렸을 테다. 정관부터 정하고 이사를 선임하는 등의 서류 작업도 적지 않다. 파인애플 펀드가 지원 대상을 결정할 때 그 흔한 이사회조차 열리지 않았다. 파인은 “자신의 직감(gut)에 따랐다”고 말했다.
 
비트코인의 투기 열풍에 가려져 있지만 블록체인 기술에 내재된 장점들이 가장 잘 구현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요르단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아즈락이라는 난민 캠프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온 1만여 명의 난민들이 철조망으로 격리된 채 무더위와 모래바람, 쥐와 뱀전갈과 싸우는 곳이다. 세계식량기구(WFP)에 따르면 여기 난민 캠프의 슈퍼마켓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쓰인다.
 
슈퍼마켓에 물건을 사러 온 난민들은 일단 스캐너에 자신의 홍채부터 스캔한다. 난민들은 대부분 신분증이나 여권처럼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가 없어 홍채로 식별된다. 필요한 물건을 고르면 그 홍채와 함께 물건 내역이 블록체인으로 보내지고, 거래가 확인되고 기록되면 인증이 이뤄지고 영수증이 발급된다. WFP는 이렇게 하면서 난민들에게 원조금의 이중지급을 막을 수 있어 원조금의 98%가 기대대로 쓰인다고 한다. 수수료로 나가는 돈도 없고 기부자들은 자신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언제든 확인 가능하다. 요약하면 기부금의 송금 등 행정비용이 절감되고 기부자와 모금기관, 수혜자가 연결되며 기부금의 집행 동의와 투명한 공개가 가능하다.
 
최근 한국의 언론 보도를 보면 기부에 대한 부정적 기사가 부쩍 많아졌다. 어금니 아빠 사건의 영향이라고도 하는데 최근 기사제목들이다. ‘못 믿을 기부 대신 어려운 친구 밥 사주겠다’ ‘내가 기부하기 싫은 이유’ ‘줄어들고 있는 나눔의 손길’ ‘연말 기부포비아/ 내가 낸 기부금,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모른다?’ ‘꼼꼼하게 기부하자…기부자 신뢰잃은 최악의 뉴스들’
 
실제 기부자도 감소 추세다. 국세청에 신고된 국내 기부자수는 2016년 71만 5260명으로 2012년 88만6617명에 비하면 4년만에 17만명이나 줄어들었다. 특히 2015년이후 1년만에 6만8722명이나 감소해서 낙폭이 가파르다. 이유 중 하나는 투명성일 것이다. 기부한 돈이 실제 필요한 곳에서 쓰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름다운재단이 매년 조사하는 ‘기빙 코리아 2016’에 따르면 기부자들이 기부처를 결정할 때 고려요소로 51%가 기부단체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꼽았다. 그리고 기부 참여 확산을 위한 개선사항에서도 기부자의 58.6%가 기부단체 투명성 강화를 꼽았다.
 
투명성을 보장하는 블록체인 기술, 요르단 사막에서만 쓰일 일은 아닌 것 같다.
 
 
홍은택
카카오메이커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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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