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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싫어, 일 안 하는 게 더 행복” … 백수 선택한 청년들

2030 ‘그냥 쉬었음’ 69만명, 그들의 속사정
이달 초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미술관에서 열린 ‘돈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돈백전)에서 관람객들이 ‘잭팟’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젊은층이 크게 호응한 전시다. 김경빈 기자

이달 초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미술관에서 열린 ‘돈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돈백전)에서 관람객들이 ‘잭팟’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젊은층이 크게 호응한 전시다. 김경빈 기자

지난해 12월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냥 쉬었음’이라고 답한 2030 청년 인구(만 15세~39세)는 69만4000여 명. 청년 실업률(9.9%)과 함께 역대 최고치였다. 이들의 또 다른 이름은 ‘니트족(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다. 통계청 고용 지표상 이들은 전체 청년의 3~4% 정도다. 하지만 해마다 늘고 있다. 기성세대는 “사지 멀쩡한 젊은이들이 도대체 왜 일을 안 하느냐”고 답답해 하지만 ‘백수’도 할 말은 있다. 중앙SUNDAY는 지난해 12월 기준 ‘쉬었음’에 해당하는 청년 4인을 만났다. 사연은 천차만별, 백수 라이프에도 흙수저와 금수저가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다.
 
내가 이기면 누군가는 상처
방 밖으로 나가는 것 힘들어
지난해 12월은 지금까지 내 인생하고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그간 살면서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돌이켜 보면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하고 잘 못 어울리고 소심했어요. 엄한 아버지는 매를 자주 드셨고 학교에선 왕따를 당했죠. 저도 평범해 지려 노력 많이 했어요. 경영학과를 중퇴했는데 20대 초반엔 회계사 시험 준비도 해봤어요. 인간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으니 자격증을 따면 좋겠다 했는데 전 늦어지고 어린 친구들이 치고 올라오고. 내게도 문제가 있어서 적응을 못한다고 생각하니 우울증도 왔어요.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경쟁이 싫어요. 내가 이기면 누군가는 지고 상처 받아야 하잖아요.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 채로 남아있자, 그래서 집에만 있어요. 사회에서 나를 받아주고 써줄까 그런 생각도 있고…. 건설 일용직,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해보긴 했는데 오래 못 버티고 그만뒀죠.
 
매일 오전 5시쯤 잠들어서 낮 12시쯤 일어나요. 오전 6시에 일 나가는 엄마와 안 마주치려고요. 방 안에선 주로 컴퓨터 게임을 하는데 8시간 넘길 때도 있어요. 영화도 보는데 10년 간 1000편은 넘게 봤어요. 어느 날부턴가 혼자라도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쓰고 있어요. 지난해엔 글을 모아 독립출판도 하게 됐죠. ‘부모님 고생 그만 시켜라’는 욕 댓글도 많이 달려요. 취업이든 연애든 노력해서 쟁취하는 또래들이 대단하게 느껴져요. 그 평범한 삶, 저도 절박한데….
 
주유소 등 닥치는 대로 알바
어딜 가도 퇴짜, 유기견같아
마지막으로 일했던 건 지난해 5월이었어요. 한강 유람선 선착장에서 경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어느 날 잘렸어요. 중학교 검정고시 출신이라 30대가 되니 어딜 가도 받아주지 않더라고요.
 
사실 어머니 얼굴을 몰라요. 두 살 때 부모님이 이혼했고 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셨다는 것만 알아요. 9살 무렵 고아원으로 갔는데 거기서 형들한테 많이 맞았어요. 결국 14살 때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기 시작했죠.
 
20대 때는 하루에 소주 5~6병을 마셨어요. 거리에선 그렇게 해야 하루가 지나가요. 술 때문에 혈관 종양 수술도 받았어요. 전재산이 5만원이었는데 수술비를 지원받아 목숨은 건졌어요. 그 이후로 주유소, 노래방 카운터 알바 닥치는 대로 다 했어요. 지금 사는 종로 쪽방에 들어간 지는 7~8년 됐고요. 하루에 8000원씩 보증금이 없어서 노숙인들이 많이 이용해요.
 
지난해 일이 끊기고 나선 집에만 있었어요. 학교를 안 다녀서 만날 친구도 없어요. 1월 말쯤 모아둔 돈이 떨어져서 다시 구직하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2월부터 서울역 노숙인 다시서기센터에서 자활 근로를 하게 됐어요.
 
부모님 계시고 가정을 이룬 또래들을 보면 부러워요. 앞으로도 혼자일 것 같아서 동물을 키우려고 해요. 가끔 유기견들을 보면 꼭 나 같아요. 기댈 곳 없고 갈 데 없는 마음을 나는 알거든요. 개를 키우려면 집에 볕은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지난해부터 주택 청약 저축통장을 붓고 있어요.
 
야근 밥먹듯해 내 삶이 없어
엄마·아빠도 퇴사한다니 반겨
평범하게, 남들만큼 노력하며 살아왔어요. 고3 땐 원형 탈모가 올 정도로 공부했고 서울 소재 인문대학에 진학했죠. 어렸을 때 사업하는 아빠를 따라 중국에 몇 번 오간 적 있고 교환학생도 다녀와서 중국어를 잘하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졸업할 때쯤엔 항공승무원 공채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지원하는 곳마다 계속 떨어지는 거예요. 외모가 중요한가 싶어 다이어트도 미친 듯이 했어요. 키가 165㎝인데 44㎏까지 뺐거든요. 너무나 간절히 바라는데 안 되니까 받아들이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결국 타협하고 2016년 8월쯤 항공사 관리직으로 들어갔는데 몸과 마음이 더 지치는 거예요. 주말에도 근무를 하고 야근은 밥 먹듯, 내 삶은 없었어요. 결국 9개월 만인 지난해 5월 회사를 나오게 됐어요.
 
“돈을 벌여야 되는 집이 아닌데 왜 바로 취업하느냐”고 했던 엄마 아빠는 퇴사한다니 더 반겼어요. 너무 힘들어했더니 쉬라고. 스페인 여행 등을 하면서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했죠. 그 과정에서 제 주변과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됐어요. 앞으론 편한 마음으로 대학원 진학 준비를 하려 해요. 저는 ‘엄카’(엄마카드)를 쓰는데 뮤지컬·영화를 보고 친구들 만나는 데는 부족하지 않아요.
 
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7급 대신 서울에서 근무하는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요. 저희 세대는 눈이 높지 않아요.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일과 삶의 균형) 있는 직장을 바라는 것 뿐이죠.
 
대기업 4년 다니다 그만둬
각자 다른 삶 존중해줬으면
성격이 평온한 편이에요. 학창시절 노력하긴 했지만 운도 따라서 한 번에 서울대에 입학했고요, 학과도 ‘취업 깡패(취업이 잘된다는 뜻)’ 이공계열이었어요. 졸업 때인 2012년 한 대기업에 어렵지 않게 취직을 한 거 같아요.
 
하지만 전혀 보람을 느낄 수 없었어요. 하루하루 소모되는 느낌, 사무실에 의미 없이 앉아 있는 느낌이었어요. 참 이상하죠. 남들은 다 들어가고 싶어 하는 ‘신의 직장’이었거든요. 흔히 말하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기업 문화도 크게 없었어요. 그런데도 저 뿐만 아니라 입사 동기들도 전부 “그만두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살았어요. 결국 입사 4년 4개월 만인 지난해 3월 회사를 나오고 말았습니다.
 
주변에서 이후 “그래도 남자가 일은 해야지”란 말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 저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모님이 없었더라면 과감한 퇴사가 불가능했을 거라 생각해요. 지난해 한창 비트코인 열풍이 불 때 저도 혹 했는데, 부잣집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재테크는 효도란 말이 떠오르더군요.
 
확실한 건 회사 다닐 때보다 아무것도 안 하는 지금이 훨씬 행복지수가 높다는 거예요. 한동안 부탄·일본·터키·미얀마·태국 등 여행을 계속 다녔거든요. 사진도 많이 찍고요. 한국은 삶의 정답이 정해져 있는 느낌이에요. 우리 또래조차 ‘다른 삶’을 ‘틀린 삶’으로 여기죠.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해 줬으면 좋겠어요.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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