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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면박, 외국선 무시, 조직은 뒤숭숭 … 틸러슨 굴욕

[오영환의 외교노트] ‘왕따’ 신세 미 국무부 수장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지난해 12월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과의 오찬 회담 뒤 기습 질문을 받았다. 한 기자가 “내년 1월로 유효한 사표를 이미 제출했는가”라고 묻자 “어처구니없다(ridiculous)”고 말했다. 유튜브 영상을 보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틸러슨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러면서 다시 “어처구니없는 질문”이라고 중얼거렸다. 그 17일 전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방미 중인 파예즈 사라지 리비아 총리와의 회담 직전에 한 기자가 “백악관 일부 인사가 당신이 사임하기를 원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틸러슨은 두 번이나 “터무니없다(laughable)”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외국의 정상과 카운터파트를 안방으로 불러들인 미 외교 수장의 일대 수모다. 11월 말 틸러슨 경질설이 돌면서 빚어진 일들이다.
 
여기에 국무부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예산 삭감과 틸러슨의 조직 재편(redesign)으로 직원들의 이직·이반이 심하다. 트럼프의 일방주의 노선에 대한 반발도 강하다. 지난 1일에는 국무부 서열 3위인 토머스 섀넌 정무차관이 사의를 표명했다. 섀넌은 34년간 근무한 베테랑 직업 외교관이다. 틸러슨은 “그가 ‘걸어 다니는 사전’이라는 점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미국 최대 석유화학기업 엑손모빌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외교 경험이 일천한 틸러슨에게 섀넌은 보물 같은 존재였다. 가뜩이나 차관은 여섯 석 가운데 네 석이 공석이다. 1월에는 주한대사로 내정된 빅터 차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가 낙마했다. 존 필리 파나마 대사도 사직서를 냈다. 각각 트럼프의 대북 정책과 이민 규제 정책에 대한 이견 때문이었다는 보도다.
 
펜스 부통령, 매티스 국방 발언에 무게
미 국무부가 기능 부전에 빠졌다. 해체되고 있다는 자조조차 나온다. 당면 과제인 대북 정책에서 틸러슨의 존재감은 엷다. 트럼프의 트윗에 휘둘리기 일쑤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언급이 풍향계일 때가 더 많다. 국가안보회의(NSC) 멤버인 세 사람 간 노선 대립이나 영역 싸움 때문이 아니다. 틸러슨과 국무부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좌표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정책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트럼프가 아시아 순방 당시 밝힌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은 국무부 작품이 아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년 전 중국의 해양 진출과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견제하기 위해 내놓은 구상을 백악관이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국무부의 굴욕이다. 2차 세계대전 후 해리 트루먼 행정부의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지구촌에 자유 민주주의·무역 체제 구축에 나선 이래 국무부와 국무장관이 이렇게 왜소해진 적은 없었다.
 
틸러슨 국무부의 난맥상은 외부 정세 때문이 아니다. 내부에서 비롯됐다. 첫째는 트럼프·틸러슨과의 관계다. 틸러슨은 취임 전 트럼프를 알지 못했다. 입각의 계기는 보이스카우트 커넥션이었다. 보이스카우트 출신인 틸러슨은 2010~12년 미국 보이스카우트연맹 총재를 지냈다. 당시 연맹 이사인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이 트럼프 당선 후 틸러슨을 국무장관으로 추천했다. 당초 트럼프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인 존 볼턴 전 유엔 대사나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미 시사주간지 뉴요커). 트럼프·틸러슨 관계는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인사·정책·개인적 감정이 얽히고설켰다. 틸러슨의 첫 좌절은 인사에서 시작됐다. 취임 직후 엘리엇 에이브럼스 전 국무부 차관보를 부장관으로 택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에이브럼스가 대선 기간 트럼프를 비난하는 칼럼을 썼다는 이유였다.
 
NBC 방송이 10월에 뒤늦게 폭로한 7월 상황은 차라리 한편의 코미디다. 틸러슨이 그달 20일 국방부 안보관계회의 후 사적 대화에서 트럼프를 멍청이(moron)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틸러슨은 그 나흘 후 트럼프의 보이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연설에도 격노했다. 트럼프는 청소년들 앞에서 워싱턴 정가와 주류 언론, 야당을 비난했다. 틸러슨에게 보이스카우트는 오늘날의 자신을 만든 원점이다. 트럼프 연설 당시 아들 결혼식 참석차 고향인 텍사스에 머물던 틸러슨은 워싱턴으로 복귀하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펜스·매티스의 만류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때 두 사람 간 감정의 골이 결정적으로 깊어졌다고 한다.
 
안보관계회의서 “트럼프는 멍청이”
10월은 둘 간에 긴장의 나날이었다. 대북 정책을 둘러싼 파열음도 흘러나왔다. 트럼프는 1일 트위터 글에서 “‘리틀 로켓맨(김정은)’과 협상을 시도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틸러슨을 비꼬았다. 전날 중국을 방문한 틸러슨이 “북한과 대화할 수 있고 대화한다”고 한 직후였다. 대통령의 공개 면박으로 틸러슨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됐다. 12월에도 같은 상황이 재연됐다. 틸러슨은 12일 “전제조건 없이 기꺼이 북한과 첫 만남을 하겠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곧바로 “북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는 바뀌지 않았다”고 밝혔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다음날 백악관 입장을 부연했다. “북한에 압력을 최대한 높이는 것을 포함해 미·일 정상 간 생각은 100% 일치한다”고 했다. 동맹국 정부 대변인이 상대 외교 수장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한 셈이다.
 
여기에는 틸러슨의 관리형 업무 스타일이 한몫한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책이 아닌 조직 재편에 두고 있다. 그는 9월 “국무부를 보다 효율적인 조직으로 만드는 것이 재임 중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조직 슬림화는 불가피하다. 2018년 회계연도(2017년 10월~2018년 9월) 국무부 예산은 전년 대비 31% 삭감됐다. 틸러슨은 올 10월까지 국무부 직원 2000명을 감축할 계획이다. 그렇다 해도 본연의 외교가 뒷전으로 밀린데 대한 미국 조야의 비판은 거세다. 18세기 말 토마스 제퍼슨 초대 국무장관 이래 국무부는 미 외교 안보의 중심축이었다. 틸러슨은 주요 외교정책 연설을 한 적도 없다. 지난해 9월에는 이란 핵 합의 당사국 외무장관 회의 도중 향후 이란과의 관계에 대해 “나는 모른다. 나는 외교관이 아니다”고 해 구설에 올랐다. 지난해 10월까지 틸러슨의 해외 순방은 같은 기간 오바마 행정부의 힐러리 클린턴, 존 케리 국무장관의 절반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틸러슨의 관리 능력이 평가받는 것도 아니다. 조직 재편 과정은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직원들의 이직은 위험 수준이다. 지난해 10월까지 고위 외교관 100명이 국무부를 떠났다. 국방부로 치면 4성 장군 60%가 전역한 비율이라 한다. “틸러슨이 미 역사상 최악의 가장 파괴적인 국무장관”이라는 전직 국무부 직원의 혹평이 나왔다. 반면 주요 직책은 채워지지 않고 있다. 지난 13일 현재 국제기구를 포함한 대사직 183곳(대사 교환하지 않는 5개국 제외) 가운데 35곳이 공석이다(미 외교협회). 16곳은 지명은 했지만, 상원 인준을 받아야 한다. 정권 출범 1년이 넘었는데도 51개 대사직이 비었다. 북핵 정책 라인은 주한대사를 새로 지명해야 한다.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과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후보가 지명됐지만, 인준 절차가 남아 있다. 23개 차관보도 공석이나 대행 체제가 적잖다. 고위직 공석은 업무 공백을 부르고 있다. 전례 없는 악순환이다.
 
러시아와 내통 의혹 트럼프, 경질은 부담
향후 관심은 틸러슨이 언제까지 자리를 지킬지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올 2~3월 경질에 무게가 실렸다. 후임으론 마이크 폼페오 중앙정보국(CIA) 국장, 니키 헤일리 유엔대사가 거명됐다. 일본서도 그런 관측이 강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사임을 밀어붙이지 않고 있다. 대선 기간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에 국무장관 경질은 큰 부담이다. 틸러슨도 스스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원칙주의자로 알려진 그는 자존심이 강하다. 창피는 겪을 대로 겪었다.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당분간 ‘인내 싸움’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잖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새해 들어 기류가 바뀌었다. 틸러슨 경질설은 잦아들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미국 NSC 내 역학 관계는 곧 국제 정치다. 누가 대통령의 귀를 잡을지, 정책을 주도할지는 초미의 관심사다. 2003년 아들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개전 과정은 좋은 사례다.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의 강경파 네오콘이 현실주의 노선의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압도했다. 지금 국무부는 만신창이이고, 장관은 NSC의 아웃사이더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반석(磐石)이고, 현역 육군 중장인 허버트 맥매스터 안보보좌관의 입김은 커지는 추세다. 예측 불능은 트럼프의 DNA다. 평창올림픽 와중에 미국의 대북 정책이 어떻게 가닥을 잡을지 NSC 내부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주목된다.
 
 
오영환
군사안보연구소 부소장·논설위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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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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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