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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권 중용 외교관, 바뀌면 찬밥 … 수십년 경륜 활용 못해

[위기의 외교부] 베테랑 씨가 말랐다
2018년 대한민국 외교안보 현실은 ‘바람 앞의 촛불’(문재인 대통령, 1월 22일 발언)이다. 지금 ‘바람 앞의 촛불’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외교부 장관-안보실 1·2차장-외교부 1차관-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차관보로 이어지는 외교라인이 지키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 위기가 최고조에 이른 현재 총성 없는 전쟁터를 뛰어다니는 대한민국 대표선수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문재인 정부 첫 외교라인을 두고 출범 당시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08년 이후 일선을 떠났거나 외교부 내 외곽을 돌다 9년 만에 최일선에 복귀한 국가안보실장과 2차장, 유엔 인권·여성 전문가인 외교부 장관, 남북군사회담 전문가인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 1차장, 4강 외교 실무 책임자인 북미(미국) 또는 동북아(중국·일본) 국장을 거치지 않은 차관보 등 핵심부가 전략 마인드, 전문성, 풍부한 현장 경험을 갖춘 대한민국 베스트냐는 것이다.
 
‘쪼개 쓰기’ 인사 관행 갈수록 심해져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15년 동안 세 번의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외교부 핵심 인력의 부침사(浮沈史· 그래픽)를 조사한 결과 전 정권에서 중용됐던 핵심 인력은 다음 정권에서 대부분 배제되는 이른바 ‘쪼개 쓰기’ 인사가 일종의 관행이 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25년 이상의 풍부한 현장 경험과 인맥을 갖고 있는 핵심 인사들이 외교 일선에서 사라졌다.
 
2003년 일부 외교부 간부의 대통령 폄하 발언 투서 사건으로 시작된 노무현 정부 외교안보라인 내 ‘자주파’(균형외교 중시)와 ‘동맹파’(한·미 동맹 중시)의 갈등은 주요 동맹파 외교관들의 핵심 보직 배제로 이어졌다. 김숙(외시 12기)·위성락(13기)·조현동(19기) 등 외교부 내 북미라인이 대표적 사례였다.
 
2008년 10년 만에 보수정권이 등장하자 상황은 역전됐다. 한·미 동맹 복원을 중시한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 핵심 인력을 배제하고 홀대받던 한·미 동맹파를 중용했다. 윤병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수석(10기)은 정권교체 후 보직을 주지 않는 바람에 정년(60세)보다 5년 빨리 은퇴했다. 외교부 내 ‘자주파’ 핵심 중 한 명이었던 남관표(12기)는 이때부터 9년 동안 외곽을 돌아야 했다. 다른 자주파 외교관들은 외교부를 떠나 민간으로 이동했다. 또 외교부 내 워싱턴·재팬 스쿨의 수장이었던 심윤조(11기)와 박준우(12기)는 대사를 두 번 지내 은퇴 예정이었다곤 해도 새 정부에서 장·차관 또는 4강(强) 대사 등 정무직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반면 노무현 정부 당시 제주도 국제관계자문대사로 사실상 좌천됐던 김숙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국정원 1차장, 주유엔 대사를 거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고 위성락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주러시아 대사를 맡았다. 조현동은 청와대 수석실 선임행정관-북핵기획단장-주미국 대사관 정무공사로 근무했다.
 
외교부 핵심 인력의 ‘쪼개 쓰기’ 인사 관행은 같은 보수정권끼리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김숙과 위성락은 물러났고 김규현(14기)·조태용(14기)·김홍균(18기) 등이 중용됐다. 이명박 정부의 홀대에 와신상담했던 윤병세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에 투신했고 정부 출범과 함께 외교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윤 장관은 4년3개월 동안 장관을 맡으면서 부(部) 역사상 처음으로 ‘외교 수장(首將)’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지난해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전(前) 또는 전전(前前) 정부 핵심 외교관을 배제했다. 60세 정년을 넘긴 김규현과 조태용은 물론 정년이 4년 남은 김홍균은 대사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은퇴해야 했다. 또 이명박 정부에서 중용됐던 장호진(16기)과 조현동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본부 대기 상태가 됐다. 조만간 보직을 받지 못할 경우 은퇴해야 한다. 또 박근혜 정부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실무 책임자였던 이상덕(22기)은 싱가포르 대사로 근무하다 지난 1월 돌연 귀임 명령을 받았다. 반면 노무현 정부에서 17대 국회의원(비례대표)을 지냈고 캠프 외교안보 자문그룹인 ‘국민아그레망’의 좌장 역할을 했던 정의용(7기)과 남관표는 각각 국가안보실장과 2차장으로 부활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17일 중앙SUNDAY에 “세대교체 차원에서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 외교안보 현실은 5년마다 수십 년간 현장을 누빈 외교관들을 갈아치울 만큼 녹록지 않다”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경험과 인맥이 사장되고 결국 외교 역량의 약화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갑자기 중량급 외교관 된 경량급 선수들
‘쪼개 쓰기’ 인사 관행이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자질 약화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통상 전문가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국제법 전문가인 남관표 안보실 1차장은 9년 만에 외교안보 일선에 복귀했다. 정 실장은 2008년 17대 국회의원 임기 만료와 함께 현장을 떠났다. 남 차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서울·부산시 국제관계자문대사와 헝가리·스웨덴 대사를 지냈다. 본부 근무 경험이 없다는 의미다.
 
현 정부의 외교부 주요직에 임명된 첫 인사들도 과거에 비해 약하다는 평이 많다. 윤순구(22기) 차관보는 박근혜 정부에서 행자부와 국방부 국제정책관, 주이집트 대사를 지냈다. 오영주(22기) 다자외교조정관은 강경화 장관이 유엔에 근무할 당시 유엔 차석대사를 지내 강 장관과의 인연이 깊지만 다자외교의 총괄 사령탑인 본부 국제기구국장을 지내지 않았다. 대국회 업무를 맡는 서정인(22기) 기획조정실장은 남아시아태평양국장을 지낸 동남아시아 전문가다. 여기에 이수훈 주일본 대사와 노영민 주중국 대사는 해당 국가와 인연이 없고 일본어와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교수와 전직 정치인이다.
 
현 정권에서 유임된 임성남(14기) 1차관, 박근혜 정부에서 북핵기획단장과 청와대 외교비서관을 지낸 이도훈(19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북미국장과 북핵기획단장을 지낸 신재현(21기) 외교정책비서관 등이 정의용 실장을 보좌해 현재 한국 외교를 끌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탱크 운전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탱크부대장을 맡기면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며 “외교는 국가 존망의 키를 쥐고 있다.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그동안 쌓았던 현장 경험과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정치권에서 찾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권교체 때마다 인사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반복되다 보니 아예 여의도로 향하는 ‘정치외교관(poli-diplomat)’이 부쩍 늘었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홍준표·반기문·안철수 후보 캠프에 참여한 전직 외교관이 대략 300명은 넉넉히 될 것”이라며 “유례가 없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권종락(5기) 전 케냐 대사가 대통령직인수위를 거쳐 외교부 1차관에 임명됐다. 박근혜 정부에선 윤병세·심윤조·박준우가 캠프 참여 등을 통해 각각 외교부 장관, 19대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복귀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지난해 말 첫 공관장 인사에서 ‘국민아그레망’에 참여한 조병제(15기) 전 대변인과 신봉길(12기) 전 외교안보연구소장이 각각 국립외교원장과 주인도 대사로 현업에 복귀했다.
 
외교관의 정치화는 ‘자기 식구 챙기기’ 조직문화가 강한 외교부에선 단지 전직 외교관만의 현상이 아니다. 익명을 원한 한 본부 외교관은 “대선 당시 예전에 모셨던 선배들로부터 정책보고서 작성, 현황자료 제공 등의 요구가 많았다”며 “최근에도 줄긴 했지만 이런저런 ‘요청’이 들어오는데 거절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 외교관은 “요즘 후배들을 사석에서 만나면 ‘외교관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검찰처럼 줄을 잘 서야 한다’ ‘현 정부에서 잘나가는 사람과는 오히려 거리를 둬야 한다’ 등 이런저런 얘기가 많이 나온다”고 전했다.
 
 
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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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