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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선녀 옷 훔쳐 강제 결혼한 나무꾼은 성범죄자다

기자
손민원 사진 손민원
손민원의 성·인권 이야기(2)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젊은이와 노약자, 비장애인과 장애인, 남자와 여자. 모두 다른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들의 인권 이야기, 폭력예방, 성 평등 교육을 통해, 나와 이웃 모든 사람이 가진 자유, 평등, 존엄에 대해 공감하는 힘을 키우기를 소망한다. 강의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목소리를 글을 통해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동화 '선녀와 나무꾼'. 동화 속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이 동화는 나무꾼의 시각으로만 서술돼 있다. [사진 유튜브 캡쳐]

동화 '선녀와 나무꾼'. 동화 속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이 동화는 나무꾼의 시각으로만 서술돼 있다. [사진 유튜브 캡쳐]

 
‘성’ 관련 강의를 할 때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자주 비유로 들곤 한다.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사슴의 목숨을 구해 준 노총각인 나무꾼은 사슴에게 “선녀와 결혼해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싶다”는 소원을 말했고, 사슴은 나무꾼에게 선녀의 날개옷을 훔친 후 선녀와 결혼해 아기 셋을 나을 때까지 날개옷을 절대 돌려주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착한 나무꾼은 아이 둘을 낳은 뒤 선녀에게 날개옷을 돌려주었고, 선녀는 아이 둘을 양팔에 안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우리는 이 동화를 읽으면서 선녀와 헤어진 나무꾼이 너무 불쌍하다며 무척 마음 아파했다. 이 동화는 착한 일을 하면 선녀와 같은 예쁜 아내를 얻을 수 있고, 효도도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동화다.


나무꾼 시각만 강조한 ‘선녀와 나무꾼’
그럼 이제 동화에 등장하지 않는 또 다른 선녀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옷을 일방적으로 훔친 나무꾼, 자신과 언니들이 목욕하는 모습을 몰래 살펴본 나무꾼,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깊은 산속 외딴곳에서 노모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선녀. 
 
이 나무꾼은 선녀와의 혼인 과정에서 선녀에게 자신과 결혼해 줄 수 있는지 동의나 허락을 구했는가? 동화 속의 내용을 잘 살펴봐도 이 동화는 나무꾼의 시각으로만 서술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동화 제목이 ‘선녀와 나무꾼’이지만 그 속에 선녀는 없다.
 
이 동화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의 우리 사회는 가해자의 시선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엔 무척이나 야박하다. 더욱이 ‘성’과 관련된 문제가 벌어질 때는 피해자의 관점이 아닌 가해자의 관점으로 문제를 들여다본다.
 
영화 '도둑들' 중에서 금고를 터는 장면. 도둑이 집에 들어와 물건을 훔쳐갔다면 가해자가 전적으로 '도둑놈'이라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다. [중앙포토]

영화 '도둑들' 중에서 금고를 터는 장면. 도둑이 집에 들어와 물건을 훔쳐갔다면 가해자가 전적으로 '도둑놈'이라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다. [중앙포토]

 
만일 도둑이 집 안에 들어와 패물을 훔쳐갔다면 이 사건의 가해자가 전적으로 ‘도둑놈’이라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다. “왜 도둑이 들어오도록 문에 잠금장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나?” “그러니 도둑의 피해에 대해 입을 다무세요”라고 피해자에게 말했다간 정신병자로 취급된다. 그러나 유독 ‘성’과 관련한 사건에서는 피해자로부터 폭력의 이유를 찾는 것이 허용되는 게 우리 사회다.
 
‘여자가 알아서 조심해야지’ ‘당신이 무언가 여지를 줬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이만한 일에 네가 너무 예민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거야’ ‘남자의 성적 충동은 통제하기 어려워’ ‘사나이가 그럴 수도 있지’…. 이렇듯 성 관련 사안에는 늘 피해자에게 폭력의 책임을 돌리는 말이 따라다닌다. 이런 고질적인 통념은 가해자에게는 힘을 실어 주고, 피해자에게는 책임을 전가해 고통이 배가된다.


피해자서 폭력 이유 찾는 우리의 ‘성’ 감수성
이렇듯 오랜 세월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통념은 피해자가 받는 고통을 밖으로 ‘아우팅’ 하기를 멈추고 속으로 ‘꾹, 꾹~’ 참게 한다. 왜냐고? 직장이 전쟁터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나만 참고 넘어가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피해자가 성희롱을 공식화하는 순간부터 조직의 명예를 실추시킨 ‘골칫덩이’로 몰리고, ‘작은 일에 예민하다’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 가해자뿐 아니라 직장 동료들에게까지…. 학교에서만 ‘왕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직장 내 ‘왕따’로 또 다른 피해를 겪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좀 더 조심할걸’ ‘모든 것은 내 탓이야’라고 자신을 자학하면서 우울감, 자책감, 자존감 저하 등 더 큰 상처가 남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이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다. 이렇듯 1차 피해의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2차 피해라고 부른다.
 
'내가 조심할걸', '모든 것은 내 탓이야' 라고 자신을 자학하며, 우울감, 자책감, 자존감 저하 등의 더 큰 상처가 남을 수 있다. 이런것들이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다. [중앙포토]

'내가 조심할걸', '모든 것은 내 탓이야' 라고 자신을 자학하며, 우울감, 자책감, 자존감 저하 등의 더 큰 상처가 남을 수 있다. 이런것들이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다. [중앙포토]

 
경찰이 피해자의 말을 성 통념에 따라 불신하거나 법정에서 판사가 가해자의 미래를 걱정하고 피해자의 행실을 비난하는 일(“그날 입었던 원피스가 노출이 많던데, 평상시도 이런 옷을 즐겨 입으시나요?” “주량은 얼마나 되시나요?” “나이트클럽, 이런 데 자주 가시죠?”),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는 것, 언론에서 사건을 선정적으로 표현해 사건 자체의 초점을 흐리는 것, 동료에게 듣는 말("일을 제대로 해야지" "저 사람과 같이 일하기 정말 힘들어" "데리고 있기 힘든 팀원이야" "외국 대학 다녔다고 건방지고 말이야"). 이런 것이 모두 2차 피해다. 2차 피해는 결국 1차 피해를 해결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를 지속시키고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을 어렵게 한다.
 
2012년 발생한 르노삼성 성희롱 사건은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2차 불이익 조치가 집약적으로 나타난 대표적인 사례다. 근무평가에서 최고등급(SP)을 받은 피해자는 같은 해 상사로부터 “마사지해줄게”,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고 하는 성희롱을 당했다.
 
그 후 2014년 피해자는 상사와 면담에서 성희롱 이야기를 하자 외려 퇴직을 종용당하기에 이르고, 피해자는 이에 반발해 공식적으로 인사팀에 피해를 호소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인사팀에서는 업무배치 전환, 부당징계, 직무정비, 대기발령, 최하위 인사 고가를 주는 한편 피해자를 두둔한 동료 직원에게까지 징계, 대기발령, 직무정지를 내렸다.
 
결국 피해자는 사내에서 문제 해결이 안 되자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함께 고용노동부에 고소고발장을 냈다. 1심 판결에선 가해자의 불법행위는 인정하나 회사의 책임은 부정했다. 이에 항소해 2심에서는 “성희롱 예방교육 도입 후 사내 성희롱 발생은 그 자체로 직무위반에 해당한다”며 피해자에게 불리한 처우나 업무배치가 잘못됐음을 인정했다.


대법원, 가해자에게 손해배상 판결
성희롱은 개인 간의 일이 아니라 회사가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대처해야 할 일이다. [중앙포토]

성희롱은 개인 간의 일이 아니라 회사가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대처해야 할 일이다. [중앙포토]

 
그리고 지난해 12월 27일 르노삼성 성희롱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의미 있는 판결이 있었다. “회사가 성희롱 사건 피해자와 피해자를 도운 동료에게 불리한 인사 조처를 했다면 불법행위다. 그러므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발표됐다. 4년 6개월 동안이나 되는 긴 투쟁의 결과물이다.
 
이 판례는 앞으로 성희롱 사건에 따른 불이익에 대응할 수 있는 좋은 선례가 될 수가 있다. 성희롱은 개인 간의 일이 아니라 회사가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대처해야 할 일임을 분명하게 하는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백 후 연일 성폭력 사건 기사가 보도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성희롱, 성추행의 상처를 가슴속에 꽁꽁 간직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 아무리 법을 바꾸고 제도를 강화해도 ‘나무꾼’이 한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을 인식하지 않는 한 성폭력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성적으로 희롱하거나 대상화하는 언행을 당연시하는 사회문화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이런 변화에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끼고 갈등도 생기겠지만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손민원 성·인권 강사 qlover@naver.com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news.joins.com/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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