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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표 암호화폐 나올까?] 블록체인 기술의 안정성 입증이 급선무

각국 중앙은행들, 법정화폐의 디지털화 연구 한창 … 현금 대체엔 시간 걸릴 듯
 
하루 차이를 두고 미국과 유럽의 국제금융계 거물들이 암호화폐에 관해 상반된 시각을 보였다. 2월 6일 어거스틴 카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은 독일을 방문해 “비트코인은 버블, 폰지 사기, 환경 재앙을 합쳐 놓은 것”이라며 “암호화폐가 제도권 금융에 깊게 파고들면 세계 금융 안전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BIS는 각국 중앙은행의 협력을 돕는 국제기구로 1930년에 설립됐다. 이와 달리 2월 7일 미국 상원의 은행·주택·도시문제위원회 청문회에선 암호화폐 규제 당국 수장인 제이 클레이튼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과 크리스토퍼 지안카를로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의장이 암호화폐·블록체인·암호화폐공개(ICO)를 두고 예상보다 우호적인 발언을 했다. 이들이 관장하는 선물·증권·법정화폐가 뒤로 갈수록 보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런데 가장 보수적인 각국 중앙은행이 지금 푹 빠져있는 게 있다. 바로 암호화폐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은 몇 년 전부터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 그중에서도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에 관해 연구와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스웨덴·네덜란드·에스토니아·캐나다는 이를 실험 중이고 미국·러시아·영국·일본·중국도 연구 중이다. 한국은행은 1월 9일 ‘가상통화 및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 공동연구 태스크포스’를 가동했다. 한국은행이 암호화폐가 아닌 디지털 화폐라는 말을 사용하기로 한 것은 블록체인을 활용할지 아닐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국 조폐국의 로열 민트 골드는 화폐?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이라는 BIS 사무총장 말과는 언뜻 상반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카르스텐스 사무총장이 말한 암호화폐와 중앙은행들이 빠져있는 암호화폐에는 일반 사람들이 보기엔 미미하고 금융계 사람들이 보기엔 막대한 차이가 있다. 발행처가 중앙은행이냐 아니냐는 차이다. 이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돈의 구분법을 먼저 알아야 한다. 통화는 크게 4가지 형태로 분류한다. 발행자(중앙은행과 그 외), 형태(전자적 혹은 물리적), 접근성(범용 혹은 제한적), 송금 메커니즘(중앙화 혹은 분산화)이다. 예컨대 비트코인은 민간 발행자가 전자적 형태로 발행해 범용적으로 쓸 수 있는 분산화된 암호화폐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암호화폐(CBCCs, Central Bank Cryptocurrencies)는 중앙은행이 전자적 형태로 발행해 범용적 혹은 제한적으로 쓸 수 있는 분산화된 암호화폐다. 한국은행의 관계자는 “최근 영국 조폐국에서 만든다는 로열 민트 골드는 화폐가 아니라 자산증권 표시를 기술적으로 한 것으로 금 거래에 분산원장 기술(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암호화폐라는 것은 통화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블록체인 상에서 구현한다는 것일까? 먼저 중앙은행이 어떤 일을 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관리하는 게 1차 목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1년 한국은행법을 개정하면서 설립 목적에 금융 안정을 추가했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은 유통되는 화폐량인 통화 공급에 대한 유일한 통제권을 가진다. 통화 공급을 통제하는 수단은 크게 세 가지다. 시장에서 정부 채권을 구입하거나 매각해 그만큼의 화폐 유통량을 줄이거나 늘리는 공개시장조작,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길 때 이자율을 조정하는 할인율 조정, 시중은행이 대출을 하지 않고 보관해둬야 할 지급준비율 조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정부 부채는 달러를 발행해 갚으면 된다고 해서 논란이 된 화폐 발행 수익은 정부 지출 비용을 조달하는 방법 3가지 중 하나다. 정부는 소득세와 같은 조세를 걷거나, 일반으로부터 차용하거나, 화폐를 발행해 지출 비용을 조달한다. 화폐 발행은 일반적으로 전체 비용 조달에서 한자릿수 이하의 비율을 차지한다. 이 때 얻은 수입을 화폐주조세(seigniorage)라고 한다. 봉건영주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중세시대 봉건영주가 자신의 영지에서 화폐를 주조하는 권한을 가졌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암호화폐가 적용되기 쉬운 부분은 지금까지 설명한 금융정책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일종의 통화 도매상처럼 중앙은행이 시중은행과 거래하는 돈은 지금도 사실상 전자화폐화 되어 있다. 실제 현금이 오가지 않는다. 민간은행이 예금을 받고도 대출해주지 말아야 하는 일정량의 지급 준비금은 중앙은행이 발행한 전자화폐지만 범용성이 떨어지고 블록체인 기반인 개인 대 개인의 거래가 아니다. 하지만 이 지급준비금은 일부만 수정해도 가장 쉽게 암호화폐로 만들 수 있다. 지난해부터 캐나다 중앙은행이 시뮬레이션 중인 CAD코인, 싱가포르가 실험중인 암호화폐 결제 시스템은 대표적인 도매 거래다. 캐나다 달러의 코인이라는 이름처럼 중앙은행 암호화폐에 비트코인과 같은 형태의 별도 토큰이 필요한 이유는 분산원장 시스템인 블록체인에 통화를 올려놔야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나다·싱가포르·영국 중앙은행은 블록체인이 아직 법정화폐를 안정적으로 거래하기엔 충분히 발전하진 않았다고 판단해 도입을 미루고 있다(BIS 2017년 가을 분기별 리포트).
 
 
스웨덴 e크로나는 ‘현금 없는 사회’ 기반용
기술에 대한 의구심 탓에 중앙은행 암호화폐가 당장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법정화폐의 디지털화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년에 걸쳐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변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현재 블록체인 기술은 에너지 소비가 과하고, 거래처리가 비효율적이며, 거래의 우선순위가 경제적 유인에 따라 정해진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중앙은행이 직접 암호화폐를 발행하면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현재 다른 암호화폐들의 단점인 투기적 성격이 없어질 것”이지만 “이는 기술적으로 암호화폐 시스템이 완벽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행이 장기적으로는 (암호화폐를) 발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직접 금융 소비자들과 만나는 중앙은행의 소매 부문이라 할 수 있는 영역에는 암호화폐가 쉽게 적용될 수 있을까? 중앙은행의 소매 부분이라고 표현한다면 어려울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현금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대표적인 게 스웨덴 중앙은행인 스베리어릭스은행이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e크로나다. 블록체인 기술 사용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 미 연준에 제안된 Fed코인도 있다. 캐나다 경제학자인 JP 코닝은 2014년 자신의 블로그에서 중앙은행이 직접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를 발행하라고 제안했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를 누구나 만들 수 있는데 반해 Fed코인은 오직 중앙은행만 만들 수 있다. 미 연준은 아직 이 제안에 응하지 않고 있다. 사실 스웨덴의 e크로나는 분산원장 기반의 암호화폐라는 점보다는 북유럽 국가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현금 없는 사회’ 쪽에 더 비중을 둔다. 현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지난 5년 간 크게 줄어든 사회 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스위시라는 모바일 전자 결제 애플리케이션(앱)을 스웨덴 국민의 절반인 500만 명이 사용 중이다. 현금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3분의 1로 줄어들어 2017년 1.2%에 불과했다. 덴마크도 현금 없는 사회에 관심이 많다. 덴마크에서 경영학 공부를 하고 돌아온 양석원 열린옷장 사외이사는 “덴마크에선 단스크 뱅크라는 모바일 페이를 주로 쓴다”며 “홈리스(노숙자)들에게 태그로 기부금을 줄 수 있는 실험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금을 대신하는 중앙은행 암호화폐의 장점은 화폐 발행 비용이 덜 들고, 은행 등 금융회사가 현금 결제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이 줄어들며,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난제를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점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6년 10월 발표한 ‘KERI 브리프 - 현금 없는 경제: 의미와 가능성’ 보고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저물가·저금리가 지속되면서 통화정책이 먹히지 않는 한계상황을 ‘마이너스 금리(Zero Lower Bound)’로 돌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이너스 금리는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아니라 은행이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릴 때 금리를 마이너스로 한다는 의미다. 미국 클리블랜드 중앙은행은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발권력을 동원해 달러를 마구 찍어 시장에 공급하는 양적완화 대신 금리를 마이너스 5~6%로 조정했으면 위기에서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인플레이션 전망: 서비스 가격 책정에서의 필립스곡선 효과). 재정정책에서도 중앙은행 암호화폐는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고 보고서는 전망한다. 현금 거래로 가려진 지하경제나 조세회피 의도를 원천 차단해 정부가 약 20조~64조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소영 교수는 “통화량 측정 등 효과를 즉시 알 수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 암호화폐 시스템이 기술적으로 완벽하다면 통화정책을 쓰는 데도 암호화폐가 더 쉬운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단점도 존재한다. 일반 은행에 예금된 돈이 쉽게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암호화폐로 교환되기 때문에 이 암호화폐 수요가 늘어나면 민간 은행에서 뱅크런(지급준비금보다 더 많은 예금 인출이 일어나는 것)이 더 쉽게 생길 수 있다. 현금·비트코인 등 민간 발행 암호화폐 시스템에서는 가능한 익명성 확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단점으로 꼽힌다. 사람들은 돈 거래를 하면서 때로는 익명성을 필요로 한다. 거래 당사자들 외에 제3자가 자신이 거액의 돈 거래를 했거나 거액의 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암호화폐를 발행할 수 있을까? 한국은행의 한 팀장은 “스웨덴은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 같은 데 사실 뭐가 더 좋은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암호화폐를 발행하면 화폐 발행 비용은 줄어들겠지만 해킹 가능성 등을 점검해야 하기 때문에 시스템 운영 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는 사람들이 지급 수단으로 쓰는 민간의 신용카드 시스템 등에 문제가 생길 경우 업무 연속성을 확보하는 차원 정도로 보면 된다.”
 
 
화폐 발행 비용 줄겠지만 시스템 운영 비용 늘 수도
 
시큰둥한 한국은행은 둘째 치고라도 일단 중앙은행이 암호화폐를 발행할 수 있으려면 김소영 교수가 주장했듯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는 게 급선무다. 홍기훈 교수는 “(한국은행이 암호화폐를 발행하는 게) 불가능할 이유는 없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블록체인이 현재 우리가 가진 기술보다 우월함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규제당국의 역할이 아니라 블록체인산업과 연구자들의 몫이다. 이들이 블록체인의 우월성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사회의 주요 인프라인 화폐 시스템을 의미도 모호한 혁신이라는 이름의 기술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플랫폼에 맡기는 위험과 비용을 감수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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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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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