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중앙시평] 북한판 트로이 목마

김병연 서울대 교수 경제학부

김병연 서울대 교수 경제학부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와 오찬을 한 적이 있었다. 대북정책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그에게 물었다. ‘한국 엄마가 공공장소에서 버릇없이 구는 아이를 어떻게 다루는지 본 적이 있습니까?’ 없다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한국 엄마는 일단 사탕을 줘 달랩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는 크게 혼냅니다. 미국 엄마는 밖에서나 안에서나 똑같이 훈육합니다. 차이가 있지요. 하지만 성인이 되면 한국인이나 미국인이나 똑같이 어른처럼 행동합니다. 북한도 한국 엄마처럼 다뤄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보다 적극적으로 대북 관여를 할 때라는 뜻이었다. 주러 대사를 지낸 베테랑 외교관인 버시바우가 머뭇거리자 옆에 있던 외교관이 대신 답했다. ‘교수님, 우리 유치원엔 아이들이 너무 많아 사탕을 주기 시작하면 더 울고 난리 납니다. 사탕이 아무리 많아도 모자랍니다.’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지만 추가한다면 이럴 것이다. ‘원칙대로 확실히 혼을 내야 유치원이 돌아갑니다.’
 
북핵 문제 해결이 최우선 정책 순위가 된 이상 미국이 이를 대충 덮고 지나갈 가능성은 작다. 미국은 군사조치까지 동원해서라도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된 빅터 차를 낙마시킨 것이다. 군사옵션을 단지 협상카드로만 쓰려 했다면 ‘코피 터뜨리기’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그를 낙마시킬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는 상황에 따라 미국이 실제로 군사조치를 시도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다만 현 단계에선 강력한 대북제재를 통해 북한을 비핵화 협상으로 끌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평창올림픽으로 마련된 남북대화 분위기가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북·미 대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남북대화-북한 도발 중지’는 가장 약한 고리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지하는 대가로 ‘제재 완화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는 미국 대신 남한이 주도적으로 나서기를 원할 것이다. 남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자체를 완화할 힘은 없다고 하더라도 여러 명분을 만들어 제재에 구멍을 만들어 주기를 기대할 수 있다. 한·미 군사훈련도 시늉만 내도록 요구할 수 있다.
 
김병연칼럼

김병연칼럼

북한이 이러한 요구를 한다면 우리 정부는 분명히 거절해야 한다.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때, 한·미 동맹이 이완될 때 가장 큰 피해를 볼 나라는 한국이다. 제재는 전쟁을 막고 평화적으로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고난도 행군’이다. 이 행군에서 한국이 이탈하는 조짐만 보여도 제재 효력은 반감된다. 그 경우 북·미 간 협상은 시작조차 할 수 없거나 시작되더라도 결렬될 가능성이 크다. 핵동결·비핵화를 위해서는, 협상을 하지 않을 경우 잔혹한 경제적 대가가 김정은을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의 선의(善意)에 기대다간 오히려 전쟁으로 갈 가능성만 키울 수 있다. 이것이 대화를 하더라도 제재 강도를 낮추지 말아야 할 절실한 이유다.
 
우리 정부는 북한 정권의 행태를 철저히 학습해야 한다. 2014년 아시아게임 폐막식 때 북한 실세 3인방이 갑자기 한국을 방문한 것도 경제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북한 수출의 40%를 차지하던 무연탄 가격이 2011년에 비해 2014년엔 절반으로 떨어졌다. 필자의 추정에 따르면 경제성장률도 2012~2013년 평균 3% 정도에서 0%로 추락했다. 경제와 외화벌이에 비상등이 켜지자 일본·러시아의 관심을 타진하다가 실패하니 한국에 온 것이다. 이번 평창올림픽 참가도 마찬가지다. 북한 참가의 일등 공신은 김정은의 선의가 아니라 경제제재다. 한국이 대화만을 통해 참가를 설득했다면 북한은 막대한 경제적 지원과 정치적 양보를 요구했을 것이다.
 
김정은은 김여정까지 투입해 제재의 판을 크게 흔들어 보려 한다. 그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던 남한과의 대화는 물론 문재인 대통령을 북한에 초청하기까지 했다. 북한 상황이 절박해졌다는 신호다. 그러나 북한이 요구할 경제제재 완화는 ‘트로이 목마’다. 이를 수용한다면 한국이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북한 선수와 응원단에 대해선 마음을 더 열자. 포용하고 힘껏 격려하자.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고 자유와 번영의 길이 있다는 영감을 선물로 주자. 그러나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서는 냉정해야 한다. 핵 문제가 해결의 길에 들어서지 않는 한 평창 이후도 이전과 달라질 것이 없다. 가면 뒤 김정은의 민낯을 바로 봐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오영환 부소장 : oh.younghwan@joongang.co.kr (02-751-5515)
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