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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에는 목숨 건 '종남'세력이···김여정 선봉 세운 이유

‘평양 정상회담’을 제안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친서(親書)에 가려 간과했던 사실이 있다. 바로 김여정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방한 기간 내내 반복적으로 강조했던 말이다.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남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가운데) 등 참석자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하고 있다. 20180210  /청와대사진기자단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남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가운데) 등 참석자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하고 있다. 20180210 /청와대사진기자단

 
'40일 전'에 어떤 일이?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대표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남북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하여”라는 건배사를 했다. 그러자 대표단장인 김영남은 “불과 40여일 전만 해도 이렇게 격동적이고 감동적인 분위기가 되리라 누구도 생각조차 못 했다”고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북한 대표단을 만난 뒤 오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회동은 오전 11시부터 2시간50분간 이뤄졌다. 왼쪽부 터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문 대통령,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특사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북한 대표단을 만난 뒤 오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회동은 오전 11시부터 2시간50분간 이뤄졌다. 왼쪽부 터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문 대통령,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특사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 자리에서 ‘김정은의 특사’라고 밝힌 김여정도 같은 말은 했다. 그는 “한 달 하고도 조금 지났는데 과거 몇 년에 비해 북남관계가 빨리 진행됐다”고 했다.
 
 다음 날인 11일. 김영남은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최한 오찬에서도 “40여일 전까지만 해도 놀랍고도 감동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리라 누가 생각했었냐”며 “조국통일의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 민족적인 화합의 역량을 힘 있고질서 있게 기울여 나가자”고 말했다.
 
 이들이 강조한 ‘40일’ 또는 ‘한 달 반’ 전의 사건은 지난달 1일 김정은의 신년사를 뜻한다.
 
김정은, 신년사와 '우리 민족끼리'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다”며 “민족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우리 민족끼리 해결해 나갈 것이며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내외 반통일세력의 책동을 짓부시고 조국통일의 새 역사를 써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신년사를 기점으로 남북 대화와 북한의 올림픽 참가, 단일팀 구성, 예술단 공연 등이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11일 오찬에 참석했던 김덕룡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중앙일보에 “북한 대표단의 발언에서 이번 남북 대화를 김정은의 치적으로 돌리고 싶어한다는 의도가 분명히 보였다”고 말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종남(從南) 세력'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 트랩까지 영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 트랩까지 영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남북은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그러나 보수 정부가 들어선 뒤 남북 교류 자체가 사실상 단절돼왔다.
 
과거 정상회담에 깊숙이 관여했던 한 당국자는 사석에서 “한국에 종북(從北)으로 불리는 세력이 있는 것처럼 북한에도 종남(從南)세력이 존재한다”며 “종남 세력은 한국과의 경제협력과 교류를 포함한 대화파를 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종북과 종남의 결정적인 차이는 북한에서 대화를 의미하는 종남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8·15 축전 북측 대표단 일행이 17일 청와대를 방문, 노무현 대통령과 오찬을 같이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 백낙청 남측 민간대표단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 노 대통령, 김기남 북측 대표단장, 임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안경호 북측 민간대표단장. 뒷줄 왼쪽부터 천해성 NSC 국장, 김수남 내각사무국 부부장, 이종석 NSC 사무차장, 최승철 아태위 부위원장, 이현 아태위 참사,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 [중앙포토]

8·15 축전 북측 대표단 일행이 17일 청와대를 방문, 노무현 대통령과 오찬을 같이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 백낙청 남측 민간대표단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 노 대통령, 김기남 북측 대표단장, 임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안경호 북측 민간대표단장. 뒷줄 왼쪽부터 천해성 NSC 국장, 김수남 내각사무국 부부장, 이종석 NSC 사무차장, 최승철 아태위 부위원장, 이현 아태위 참사,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 [중앙포토]

 실제로 지난 2008년 최승철 북한 통전부부장이 총살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금철 내각책임 참사 등 11명도 처형되고, 그들의 가족들은 모두 정치범 관리소로 보내졌다. 최승철은 2007년 정상회담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인물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대표적 종남 세력이다. 
 
청와대 못 갔던 '실세 3인방'
 
고위 당국자는 “지난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당시 북한은 황병서ㆍ최룡해ㆍ김양건 등 ‘실세 3인방’을 한국으로 보냈지만,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며 “북한이 그 정도의 실세를 보냈다는 것은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피력했다는 뜻인데 우리 정부가 이를 사실상 걷어차 버린 셈”이라고 말했다. 
4일 오후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을 찾은 북한 최고위급 대표단이 정홍원 국무총리 등과 함께 2014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을 관람하던 중 기립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정홍원 국무총리, 김관진 국가안보실장,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당 비서,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 [사진공동취재단]

4일 오후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을 찾은 북한 최고위급 대표단이 정홍원 국무총리 등과 함께 2014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을 관람하던 중 기립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정홍원 국무총리, 김관진 국가안보실장,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당 비서,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 [사진공동취재단]

 
 당시 3인방으로 분류됐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의 파트너로 정상회담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는 인천 아시안게임 때 시도했던 남북 접촉에 실패한 이듬해인 2015년 사망했다. 북한 매체는 그의 사망 배경을 ‘교통사고’라고 밝혔지만, 정확한 사망 원인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청와대 들렀다가 왔소?"
 
 북한에서 남북 대화는 ‘최고 지도자’의 결정 없이는 진행될 수 없다. 대선이 있던 지난 2007년에는 당시 여당의 고위 정치인들이 잇따라 북한을 방북했다.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차 남북 정상회담 사흘째인 2007년 10월 4일 오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차 남북 정상회담 사흘째인 2007년 10월 4일 오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당시 방북했던 한 인사는 본지에 “북한에서 최승철을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오기 전에 청와대에는 들렀다가 왔느냐’고 묻길래, ‘그냥 왔다’고 답했다”며 “그랬더니 ‘청와대에 안 들렀다면 정상회담 같은 말을 꺼내지도 말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여동생 보낸 김정은의 '역 벼랑끝 전술' 
 
김정은은 이번에 자신의 여동생 김여정을 특사로 보내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김여정은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북남 수뇌부의 의지가 있다면 분단 세월이 아쉽고 아깝지만 빨리 진행될 수 있다”며 “대통령께서 통일의 새 장을 여는 주역이 되셔서 후세에 길이 담을 자취 세우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자신의 여동생을 보냈다는 것은 사실상 김정은이 직접 나섰다는 뜻”이라며 “만약 이번 대화 제의가 무산된다면 그 책임 역시 자신이 고스란히 질 수밖에 없는 김정은식의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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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