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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들, "아이들 키우려면 친정엄마 도움 절실한데…"

“죽기 전에 소원이 있다면 딱 하나 뿐이에요. 우리 부모님 모시고 와서 함께 사는 거예요”
 
12년 전 한국으로 시집온 중국 출신 왕혜연(36)씨는 서울 노원구에서 남편 박모(51)씨와의 사이에서 초등학교 6학년 아들(12)과 4학년 딸(10)을 낳고 단란하게 살았다. 왕씨는 2007년 남편을 따라 중국 옌볜에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한국에 온 지 2년 만에 귀화해 대한민국 국적과 이름까지 취득했다.
중국 출신 결혼 이주여성 왕혜연(36)씨. 최규진 기자

중국 출신 결혼 이주여성 왕혜연(36)씨. 최규진 기자

 
한때 신혼의 꿈에 부풀었던 왕씨의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에서 왕씨를 기다린 건 중풍을 앓고 있는 시아버지와 지적장애 2급 장애인 아주버님(남편의 형)이었다. 남편은 "잠깐만 머물다가 가시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상 '식모살이'나 다름없는 삶이었다. 왕씨는 눈앞이 깜깜했지만 10년간 시아버지와 아주버님의 병시중을 들며 적극적으로 봉양했다. 서울시가 2011년 왕씨에게 '효부상'을 표창할 정도였다.
 
왕씨가 친정집에 처음 사정을 말한 건 2008년 둘째를 임신할 무렵이었다. 왕씨는 임신으로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중국에 있는 부모님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왕씨의 초청으로 방문 동거 비자(F-1-5)를 받아 한국에 온 아버지(67)는 딸의 사정을 알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왕씨의 아버지는 4년간 한국에 머물면서 왕씨와 함께 손주를 돌보고 집안일을 도왔다. 친정 부모님의 도움으로 왕씨의 결혼 생활은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왕씨 아버지는 중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비자 기간이 만료돼 더는 연장·발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였다. 법무부 출입국 관리소는 왕씨에게 "자녀들의 나이가 5세를 넘겨 더는 초청비자의 발급이나 연장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왕씨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다. 한국에서 효도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우리 친아버지를 모시고 올 수 없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왕씨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3월 남편 박씨가 간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당장 생계를 책임지게 된 왕씨는 장례식을 치를 틈도 없이 밤낮없이 일해야 했다. 낮에는 화장품 방문판매원으로, 밤에는 여관 청소 일을 하며 손에 쥐는 돈은 월 80만원 남짓. 그 사이 왕씨의 아버지는 4년간 사돈(시아버지)의 병수발을 돕다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지만 치료를 마치지 못하고 귀국해야 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이주여성상담센터에서 만난 왕씨는 “결혼 전까지 이런 현실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왕씨는 당장 매일 홀로 남겨져 있을 자녀 생각에 막막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아이들이 밥도 혼자서 못 차려 먹고 가스불도  못키는데 이대로 죽을 생각마저 해봤다”며 “한국이 외국인한테 너무 모질게 구는 것 같다. 고향에 계신 아버지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법무부 “5세 미만 손주 양육 목적으로만 최대 4년 10개월 체류 가능” 
 
왕씨와 같이 친정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결혼 이주민들은 ‘외국인 배우자의 부모·가족 방문 동거 비자’를 받아 가족을 초청할 수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결혼 이민자의 부모님 초청 비자 자격은 '손주가 5세 미만·양육 목적 최대 4년 10개월까지’다. 이를 초과할 경우 외국인 가족은 3개월간 체류할 수 있는 단기 관광 비자(C-3)로만 입국이 가능하다. 
법무부 관계자는 결혼 이민자의 부모 초청 비자 자격 요건을 5세로 제한한 이유에 대해 “정부의 보육료 지원사업의 보육료 지원 연령(만 5세)과 동일하게 적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규정이 장기 체류로 인한 국내 귀화 등을 제한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내 장기 체류·귀화 목적이 아닌 경우 초청 자격에 제한이 없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부분의 결혼 이주민 가족들은 왕복 항공권이나 체류 비용 등 경제적 사정을 이유로 단기 방문은 지속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결혼이민자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싶어요'라는 글에 1만명이 넘는 찬성이 이어졌다.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여성 웬티현(39)씨. 최규진 기자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여성 웬티현(39)씨. 최규진 기자

같은 날 서울 이주여성상담센터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민 웬티현(39)씨는  “우리 가족은 장기체류로 영주권이나 귀화 신청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고향의 국적을 버리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결혼 9년 차인 웬씨 부부는 맞벌이 가정이다. 남편은 지방에서 휴대전화 케이스 판매업을 하면서 일주일 동안 나가 있는 경우가 잦다. 웬씨는 홀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초등학교 2학년 딸(10)을 보살펴야 하는 셈이다.
 
웬씨는 2010년과 2011년 각각 친정 부모님 초청했지만 2016년 자녀의 나이에 관한 규정이 추가되면서 더는 연장이 불가능해졌다. 그는 인터뷰 다음 날 당장 부모님이 출국해야 한다고 전했다. 웬씨는 “앞으로는 항공권 비용 때문에 부모님을 모실 수 없게 됐다”며 “최소한 부모님이 딸이 다 클 때까지만 연장 신청을 자유롭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채희 서울 이주여성상담센터장은 “가족 초청 비자는 이주 여성들에게 가장 큰 문제로 규정 자체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한국인 여성과 달리 부부의 나이 차이가 크게 나면서 여성이 가장 역할까지 맡는 경우가 많아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규진 기자 choi.kyujin@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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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