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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전자영주권·법인세 0 도입…에스토니아에 돈이 몰렸다

케르스티 칼리울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이 11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세인트존스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케르스티 칼리울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이 11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세인트존스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혁신 비결은 여러 전자제도를 도입해 국가 체계를 간소화한 것입니다. 전자서명 등 여러 혁신적 제도를 통해 국내총생산(GDP) 2~5%가량의 비용 절감 성과도 거뒀습니다.”
 
케르스티 칼률라이드(49) 에스토니아 대통령은 ‘북유럽 디지털 강국’의 지도자답게 디지털 혁신에 대한 설명에 막힘이 없었다.  
 
그는 디지털에 맞는 법 체계 구축, 규제의 최소화, 정부와 민간의 밀착 협력, 국가 차원의 디지털 교육 등을 디지털 혁신의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중앙일보는 평창 겨울올림픽 참석을 위해 최근 방한한 칼률라이드 대통령을 11일 단독 인터뷰했다. 1991년 독립 이후 한국과 수교를 맺었던 에스토니아 정상이 한국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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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한 한국 정부와 디지털 분야 협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는 국가 차원의 암호화폐와 관련해 “에스토니아 정부는 암호화폐 발행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을 찾은 소감은.
“많은 한국 사람들이 우릴 환대해준 점에 기쁘게 생각한다. 올림픽을 개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평창올림픽은 매우 체계적인데다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6일 청와대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참석을 위해 방한한 케르스티 칼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6일 청와대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참석을 위해 방한한 케르스티 칼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번 방한에서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한국에 대한 인상은.
“문재인 대통령, 남경필 경기도지사와의 회담은 유익한 시간이었다. 특히 에스토니아의 전자영주권 제도가 한국에서 널리 인식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전자영주권과 관련해 앞으로 협력할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와 유럽의 정보기술(IT) 선도국인 한국, 에스토니아가 협력한다면 IT의 중요성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을 것이다.”
 
-방한 첫 일정으로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조만간 실현될 협력 방안은.
“우선 민간 합동 벤처 설립이 활발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에서도 신청 가능한 에스토니아 전자영주권을 통해 현지에 회사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 거리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다. 또 이번 방한에서 경기 판교에 위치한 스타트업 두 곳을 직접 들려봤다. 에스토니아의 기업 육성 시설과 공유할 것이 적지 않아 보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지난 20여년 간의 디지털 혁신이 인상적이다. 짧은 기간에 이룬 비결은.
“에스토니아는 디지털 투자에 앞서 법 체계부터 갖춰나갔다. 또 시민들에게 정보가 잘 관리된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예컨대 정부가 관리하는 시민 정보를 함부로 들여다 보는 건 에스토니아에서 범죄 행위다. 개인 정보를 다루는 공무원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만약 누군가 내 정보를 들여다봤다면 자동으로 이메일 알림을 받게 된다. 이처럼 기술 발전에 앞서 법 체계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측면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에스토니아 유전자 은행을 살펴보겠다. 세계적으로 이런 은행은 흔치 않다. 민간 은행이지만 정부가 도입한 전자서명과 검증을 거쳐야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정부가 도입한 전자 제도는 공공·민간 부문에 동시에 적용되고 있다. 두 부문은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정부기관이 시민에게 같은 정보를 두 번 이상 요청하지 못하도록 한 ‘질문은 한 번만(Only once)’ 정책은 디지털이 행정을 최소화하는 사례로 꼽히는데.  
 
“그렇다. 당신이 공무원에게 집 주소와 자녀관계 관련 정보를 답했다면 이 정보는 정부의 통합 DB에 저장된다. 이후엔 타 정부기관을 방문할 때 같은 정보를 재차 제공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이 정책을 더욱 발전시킬 계획이다. 앞으로는 연금 등을 수령할 에스토니아 시민은 이와 관련된 자신의 정보를 정부에 제출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미 정부가 세금 기록서 등을 통해 연봉과 자녀 수를 파악해 연금액을 추정하기 때문이다.”
 
케르스티 칼리울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 장진영 기자

케르스티 칼리울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 장진영 기자

 
-디지털 혁신의 최대 장점은.
“경제적 효율성과 그 효과다. 많은 자원을 아낄 수 있고, 공공 서비스 제공도 효율적이다. 예컨대 에스토니아 시민은 어느 지역에 있든 동일한 공공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전자서명 도입만으로 GDP 2% 정도의 비용을 아끼는 효과를 냈다. 시민들의 정부기관 방문 횟수를 획기적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민간 부문 발전으로 이어진 ‘디지털 샌드박스’도 마찬가지다. 자유롭고 안전한 디지털 공간을 만든 덕분에 GDP 5%만큼의 비용 절감 효과를 냈다.”‘
 
-전자대사관 제도도 눈길을 끈다.
“전자대사관은 에스토니아의 ‘국외 DB’라고 할 수 있다. 해외서 이런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선 특별한 법적 조건이 필요하다. 그래서 또 다른 IT 혁신국가인 룩셈부르크와 정부간 협약도 체결했다. 정부 데이터 사본을 현지에 보관하기 위해서다. 또 핀란드와 DB 공유를 통해 양국 국민이 상대국의 공공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했다. ”
 
-디지털 혁신으로 부패가 줄었나.
“물론이다. 에스토니아 사회는 투명성에 대한 기대 수준은 매우 높고, 각종 부패 지수는 상대적으로 낮다. 정부가 ‘질문은 한번만’ 정책으로 업무 횟수를 줄임으로써 공무원들의 착오를 줄인 것도 한 요인이다.”
  
-디지털 혁신 과정에서 장애물은.
 
“별다른 장애물은 없었다. 1991년 국가 독립 당시 국토 면적에 비해 관공서가 충분치 않았지만 관공서를 새로 짓기 어려웠다. 그래서 디지털 공공 서비스로 눈을 돌렸다. 이는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민간 부문과 협력도 순조로웠다. 곧 전자 세금제도가 도입됐고, 시민들도 전자 신분증을 이용하기 시작하는 등 변화가 퍼졌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90년대는 인터넷 보급 초기인데. 
“90년대 후반쯤 정부는 학교·도서관 등에 빠르게 컴퓨터를 보급했고, 각 공공시설에 무료 인터넷을 제공했다. 에스토니아 독립 당시 국민들의 임금은 매우 낮았다. 몇 달 이상을 일해야 냉장고·세탁기 등을 구매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느새 이들의 관심이 컴퓨터로 쏠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디지털의) 사회적 중요성이 커진 것이었다.”
 
 
-전자영주권을 도입한 배경은.
“91년 독립 이후로 에스토니아 정부는 시민 보호에 많이 신경 썼다. 이런 면에서 전자영주권은 종이여권처럼 상대방 신원을 확인하는데 쓰인다. 우린 이를 외국인에게도 확장했다. 전자영주권을 이용하면 에스토니아에 방문하지 않아도 회사를 세울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법적 공간을 제공할 뿐이다."
 
케르스티 칼리울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이 11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세인트존스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케르스티 칼리울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이 11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세인트존스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법인세가 ‘제로 수준’이란 점도 독특하다. 세수 감소 우려가 있을텐데.
“에스토니아는 조세피난처가 아니다. 우린 기업의 투자에 따른 이익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을 뿐이다. 다만 그 수익을 쓰는데(consumption) 있어 세금을 부과한다. 특히, 주주 이익 배당 시에 20%를 부과하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수준으로 본다.”
 
-에스토니아는 독립 이후 규제완화를 강조해왔는데. 
“에스토니아가 독립 이후 도입한 단일세(flat tax) 등은 ‘간소화 정책’이란 특징이 있다. 에스토니아 정부가 정책 간소화에 힘쓰는 건 국민이 최소 비용을 들여 공공 서비스를 누리도록 하려는 목적이다. ”
 
-규제를 최소한으로 한다는 의미인가. 
“예를 들어보자. ‘질문은 한번만’ 정책은 일종의 룰(원칙)이다. 또 타인의 정보 DB를 들여다보면 안된다는 것도 원칙이다. 원칙은 간소화를 위해 도입된 것이다. 규제를 하려는 취지가 아니다.”
 
-디지털 혁신은 많은 스타트업 유치로 이어졌다. 벤처사업 장려는 왜 중요한가.
“‘스카이프(인터넷 전화 기업)’는 에스토니아의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이다. 기업 규모가 커지며 수익이 늘었고,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도 점차 증가하면서 노하우가 기업·사회 전반으로 퍼졌다. 이런 식의 기업 유치가 경제 성장을 유도하게 된다. ”
 
-에스토니아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IT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학교교육에서 사이버 건강관리(Cyber hygiene)를 특히 강조한다. 군사 용어인 사이버 보안과 비슷한 개념으로 보면 된다. ‘인터넷을 이용하는데 있어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가르침으로써 국민이 사이버 안전에 신경쓰도록 한다. 지난 2015년엔 대규모 정전사태를 초래한 우크라이나 발전시설 해킹사태가 발생했지만 에스토니아에선 별다른 사고가 없었다. 국민들이 디지털 정보를 잘 관리한 덕분이다. 이런 점에서 에스토니아의 IT 교육은 조기 지진경보체계와 흡사하다.”
 
-평소 해킹 위협은 어떻게 대응하나.
 
“무엇보다 국민이 사이버 보안을 잘 지켜야 한다. 평소 길을 건널 때 차를 조심하는 것처럼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정부도 관련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에스토니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 합동사이버방어센터(NATO Cooperative Cyber Defence Centre of Excellence, CCDCOE)를 탈린에 유치했다. 한국 정부와도 협력 중이다. 나토가 운영하는 세계 최대 규모 방어 훈련인 ‘락드 실즈’에 한국 정부가 참여할 수 있도록 협약을 맺었다.” 
 
-세계적으로 암호화폐 논란이 뜨겁다. 에스토니아는 에스트코인(estcoin)을 발행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는데.
“에스토니아 정부는 그 어떤 암호화폐를 발행할 계획이 없다. 에스트코인은 화폐가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토큰이다. 에스토니아는 EU 소속 국가다. 최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유로화만이 유일하다’고 강조한 것처럼 유로화만이 우리의 화폐가 될 것이다. 에스트코인은 국민이 서로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로 자리잡을 것이다.”
 
-한국처럼 에스토니아는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여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에도 당당히 목소리를 내는데.
“에스토니아는 28개 EU 국가 및 나토 동맹국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이런 유대관계는 국제법과 자유 민주주의 등의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디지털 혁신을 추구하는 한국 정부와 사회에 조언을 한다면.

“조언보다는 에스토니아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에 주력하고 싶다. 다만 전자영주권 등으로부터 배우길 희망한다면 에스토니아 정부는 언제든 조언을 아끼지 않겠다.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인 한국 정부와 협력을 이어가길 희망한다.”
 
만난 사람=이상렬 국제부장, 정리=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대통령=에스토니아 역사상 최연소이자 최초 여성 대통령. 2016년 10월 임기를 시작했다. 당시 에스토니아 의회가 수차례 표결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당선자를 내지 못하자 원로회의가 그를 대통령 잠재 후보로 적극 지지했고, 결국 대통령에 선출됐다. 1990년대 말 마르트 라르 총리의 경제자문관을 역임하며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개혁을 주도했다. 지난 6일 방한 당시 인천공항에서 점퍼·청바지 등의 수수한 옷차림으로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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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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