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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터진 중국판 ‘보도지침’ …기사 삭제에 인터넷 공개 맞불

인터넷에 유포 중인 남방주말 원래 편집 지면 사진. 당초 하이난항공 부실 관련 기사는 B9, B10 두 면에 걸쳐 게재 예정이었으나 최종 검열에서 삭제됐다. [인터넷]

인터넷에 유포 중인 남방주말 원래 편집 지면 사진. 당초 하이난항공 부실 관련 기사는 B9, B10 두 면에 걸쳐 게재 예정이었으나 최종 검열에서 삭제됐다. [인터넷]

중국 시사 주간지 남방주말(南方周末)이 신년사 무단 교체로 인한 파업사태 5년 만에 또다시 필화(筆禍) 사건에 휘말렸다. 입사 14년 차인 황허(黃河) 남방주말 기자가 지난 8일 자신의 SNS에 두 편의 기업 탐사 기사와 취재 수기를 게재한 것이 발단이 됐다. 그가 SNS에 기사를 게재한 것은 전날 지면에 앉혔던 기사가 검열로 삭제된 것에 대한 항의다. 이번 사태로 인해 돤궁웨이(段功偉) 남방주말 총편집(주필)이 면직되고 전임자인 왕웨이(王巍) 남방잡지사 총편집이 남방주말 총편집을 겸임하고 있다고 홍콩 명보가 복수의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10일 보도했다.
 
1980년대 한국 군사정권의 보도통제 가이드라인으로 인한 발생한 ‘보도지침 사건’과 유사한 기자의 사건이 벌어진 셈이다. 남방주말은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취임 이듬해이던 2013년 신년호에 실린 신년사 “중국의 꿈, 헌정의 꿈”이 돌연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가까이 꿈에 다가가 있다”는 글로 교체되자 파업으로 검열에 항의했던 진보적 매체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방중 당시 중국 언론 중 유일하게 인터뷰를 했으나 당국의 불허로 해당 지면이 백지로 나간 적도 있다.
 
“중대하고 대중의 이익과 관련된 팩트와 진상은 발생과 동시에 공개해야 한다. 이는 기자의 천직이며 공민의 본분이다.” 황허 기자가 SNS에 공개한 ‘하이난항공 탐사보도 수기’ 중 소제목은 ‘기자의 천직’이다. 언론 자유도 최하위 국가인 중국이지만 황 기자는 기자의 사명과 시민의 알 권리를 강조했다. 2005년 남방주말에 합류한 황 기자는 그동안 핑안(平安)보험, 바오넝(寶能)과완커(萬克)의 적대적 인수합병(M&A) 배후 스토리 등 굵직한 경제 현안을 추적해 왔다.
2013년 10월 남방주말 파업을 지지하는 시위자. [중앙포토]

2013년 10월 남방주말 파업을 지지하는 시위자. [중앙포토]

 
그는 편집부 간부로부터 기사 삭제 소식을 듣자 곧 남방주말에 보낸 원고를 철회하고 판권을 포기한 채 타 매체 게재를 허가했다. 회사에는 해당 기사를 실적과 평가에 포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방주말 회사 규정에 따르면 지면에 게재되지 않은 기사도 기자 평가에 포함되며 원고료도 받을 수 있다. 이번 결정은 그가 8년 전 겪었던 비슷한 경험 때문에 쉽게 내릴 수 있었다. 그는 당시 ‘핑안(平安) 보험 성공 막후의 절묘한 기술’이란 기사를 작성했으나 삭제 당했고, 상부에 하소연했지만 결국 흐지부지하게 마무리되고 말았다.
 
이번에 검열당한 기사는 미국에 도피 중인 부호 궈원구이(郭文貴) 정취안(政泉)홀딩스 회장이 폭로한 하이난항공(海南航空)의 과도한 부채에 관한 것이다. 국영 기업과 지방정부의 과도한 부채가 촉발할 수 있는 중국의 금융 위기와 해당 기업 막후의 정권 실세와 관련성도 불거지면서 이번 사태의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황 기자가 동료 왕웨이카이(王偉凱) 기자와 ‘하이난항공 다시 유동성 위기’, ‘하이난항공 위기의 역사’ 두 편을 공동으로 취재했다. 앞에서는 최근 불거진 하이난항공의 유동성 문제를 고발했다. 하이난항공이 올 1분기에 150억 위안(2조5900억원)의 자금 부족에 직면할 것이며 상반기에 약 1000억 위안(17조3000억원)의 자산을 매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블룸버그와 로이터가 지난달 말 이미 보도한 바 있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2000년 이후 하이난항공이 자기 자본 능력을 훨씬 넘는 과도한 부채를 기반으로 확장해 온 과정을 분석했다. 하이난항공은 지난해 국가 금융의 ‘디레버리징’ 정책과 해외 인수합병(M&A) 감독을 강화하는 새로운 정책에 따라 부채 거품이 터질 위기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또 2008년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중국 정부의 4조 위안(약 698조원) 규모의 부양책과 각 지방정부와 은행이 펼친 ‘양적 완화’ 정책이 하이난항공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여건을 만들어줬다고 풀이했다. 하이난항공이 공개한 지난해 1~11월 부채 총액은 6375억 위안(약 110조원)에 달하지만, 본사가 위치한 하이난 성 정부의 지난해 지역총생산(GDP)는 4462억 5400만 위안(약 77조원)에 불과하다. 또 과도한 부채 등의 요인으로 상하이 A주에 상장된 하이난항공 계열의 하이항촹신(海航創新)과 하이웨구자(海越股價) 주가가 2015년 최고점 대비 60% 폭락했으며, 다른 자회사 7곳은 이미 거래정지를 당했다고 지적했다.
 
하이난항공의 운명은 지난해 6월 22일 전환점을 맞았다. 중국 은행감독위원회(은감위)가 대형 은행을 대상으로 하이항·완다(萬達)·안방(安邦) 등 해외 기업 인수 합병(M&A) 주력기업에 대한 해외 투자 대출의 리스크 조사를 지시하면서다. 하이난항공의 성장 모델이었던 사통팔달의 융자 채널이 하나하나 교수대의 올가미로 변했다. 
 
황 기자는 글로벌 기업 인수합병의 큰손으로 활약한 중국 기업의 배후에는 자산평가액과 진짜 시장 가치의 차이를 알 수 없게 만든 ‘하이항 모델’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완다·푸싱(福星)이 모두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성장했으며 여기에 국가개발은행, 지방정부, 외국계 투자은행이 모두 모종의 역할을 해왔다는 논리를 펼쳤다.
 
해외 중문 사이트 ‘장외루’의 하이항 폭로 기사에 붙은 네티즌 댓글. 궈원구이의 폭로가 모두 사실이며 중국인만 알 수 없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넷 캡처]

해외 중문 사이트 ‘장외루’의 하이항 폭로 기사에 붙은 네티즌 댓글. 궈원구이의 폭로가 모두 사실이며 중국인만 알 수 없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넷 캡처]

네티즌의 지적도 의미심장하다. 해외 중문 뉴스사이트 ‘장외루(牆外樓)’가 전재한 황 기자의 하이항 기사에는 “원래 궈원구이가 말한 것은 모두 근거가 있었다”며 “검열 장벽 안의 백성만 이를 몰랐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황 기자는 또 중국이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20년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1980년대 말 똑같이 30년 동안 고속성장과 맹렬한 해외 인수합병을 겪었던 일본 경제 역시 ‘일본은 다르다’며 낙관론을 펼쳤다”며 “일본 경제가 과열했지만, 과열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일본의 자산 거품은 ‘다르다’고 했지만, 결론은 거품은 거품일 뿐, 어떤 다른 점도 없음을 증명한다”고 지적했다. 
황 기자는 수기 마지막 문장에서도 경제 위기의 감시자 역할을 강조했다. “나는 하이난항공이 제2의 리먼 브러더스가 아니라고 믿는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과 리스크는 어디에서도 올 수 있다. 여전히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계속 지켜봐야 한다.”
 
1984년 광둥(廣東)성 공산당 기관지 남방일보 계열로 창단된 남방주말은 신문의 감독 기능과 법치 정신, 인문정신을 중시하는 보도를 강조하면서 지식계와 문화계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번에 돤궁웨이 주필을 대신해 투입된 왕웨이 총편집은 2013년 기자 파업 사태를 수습했던 인물이다. 당시 교체된 신년사를 쓴 것으로 알려진 퉈전(庹震) 당시 광둥성 선전부장은 중앙 선전부 부부장을 거쳐 지난해 19차 당 대회 대변인을 맡은 뒤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뽑혔다. 퉈전 후임자였던 신하이슝(愼海雄) 광둥성 선전부장은 지난 9일 중국중앙방송국(CC-TV) 사장에 임명됐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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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