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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샷] 미술실 옆 복도에 열었던 제자 갤러리

기자
더오래 사진 더오래
58년 개띠, 내 인생의 다섯컷 (35) 박영일
한국 사회에서 '58년 개띠'는 특별합니다. 신생아 100만명 시대 태어나 늘 경쟁에 내몰렸습니다. 고교 입시 때 평준화, 30살에 88올림픽, 40살에 외환위기, 50살에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고도성장의 단맛도 봤지만, 저성장의 함정도 헤쳐왔습니다. 이제 환갑을 맞아 인생 2막을 여는 58년 개띠. 그들의 오래된 사진첩 속 빛바랜 인생 샷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봅니다.
 
사촌 형수 소개로 만난 이가 지금의 아내이다. 당시 31세, 수원의 신설학교인 동성여중에 발령받고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는 미술 교사가 중앙 현관, 교장실, 복도 환경을 모두 맡아 꾸밀 때였다. 실 경력 3년이 채 되지 않을 때였다. 혼자서 이 업무를 해냈고 거기다가 개교 기념미전도 열었다. 
 
1학년 학생들의 작품만으로 전시했는데 오픈하기 전날 마무리하느라 학교 가사실(준비실)서 꼬박 밤을 새웠다. 지금도 그때의 푸르스름한 하늘빛을 잊지 못한다. 이런 바쁜 시간이 지나자 외로움이 나에게 엄습해왔다. 그때 지금의 짝, 이미우를 만난 것이다. 
 
충남 태안이 고향인 나는 고향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결혼식을 하기 전 천리포수목원에 가 야외 촬영을 하였다. 그때는 야외촬영이 흔하지 않았던 때라고 생각이 든다. 당시 설립자인 뮐러(한국명 민병갈) 씨가 우리 보고 하룻밤 묵고 가라 했던 것이 기억난다. 현재 천리포수목원은 태안의 대표적인 관광코스가 되었다.
 
88 서울올림픽이 열리는 해 우리 결혼을 했고 이듬해 첫 아이가 태어났고, 2년 후 둘째가 태어났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미술관에 많이 데리고 다녔다. 사진은 둘째 예원이가 생일날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려 할 때 큰 아이인 성빈이가 폭죽을 터뜨리려고 해서 아내와 처제가 눈을 감고 겁을 먹고 있는 장면이다. 
 
당시 나는 학교 일과 근무지역인 지역 미술협회 사무국장 일을 맡아 내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을 거의 갖지 못했는데 두고두고 아내에게 원망을 듣고 나 자신도 후회하고 있다. 큰 애 입에서 ‘아빠하고 운동해 본 기억’이 없다고 하여 아이한테 실망하기도 했지만 할 말 하는 요즘 예들로서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내도 조금 섭섭한 일이 있으면 그때 일을 꺼내 나를 공격하지만,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문산중에 근무하던 그때는 개교 이래 교내미전을 처음으로 개최하였고, 대외활동으로 파주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향토작가초대전을 기획하고 전시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나는 천생 미술 교사이다. 교직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나름대로 정성을 쏟아 왔다. 그중 하나가 학생들 작품을 전시하게 한 일이다. 군을 제대하고 복직한 대광중에서 수업 결과물로 학생미전을 연 것을 시작으로 동성여중, 문산중, 백신고, 오마중 등에서 꾸준히 전시를 이어왔다. 
 
그리고 성사고에서 근무할 때는 미술실 옆 복도에 갤러리를 조성하여 ‘5분의 행복전’을 기획, 전시하였고 그해 여덟 번의 전시를 열었다. 다음 근무 교에서도 중앙현관에 갤러리를 조성하여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하였는데 그때는 교육부의 예산지원을 받아 미술동아리 활동을 활성화 시킬 수 있었다. 
 
미술부 학생들과 시내 갤러리에서 사제동행전을 열고, 함께 오페라를 감상하기도 했다. 그때 지도한 학생이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진학하여 다시 만났고, 이번 입시에 홍대에 수시로 합격하여 보람을 느낀다. 퇴임하기 전에 제자들과 사제동행전을갖는 게 내 소박한 꿈이다.
 
승진을 준비해 온 나는, 중학교로 옮겨 오랜만에 담임을 맡게 되었는데 그때 한 학생이 여러 명의 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받았다. 그 학생의 부모님이 담임교사가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그런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항의했고, 또 한 여학생은 반 남학생이 몰래 핸드폰으로 자신을 찍었다고 하여 학부모님이 크게 항의를 해 온 것이다. 
 
내가 사과를 하고 수습이 되었으나 그로 인한 충격이 작지 않았다. 명퇴할 생각도 들었다. “그래 1년 쉬면서 생각해보자!” 마침 학습연구년제가 시행되고 있어서 문화예술교육 관련 계획서를 제출하여 통과되었다. 그때 우연히 케냐에 교육 봉사를 가게 된 것이 내 인생에서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내가 방문한 나이로비 인근의 공립학교에서 내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케냐 아이들의 밝게 웃는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게 된 것이다. “그래! 내 일은 우리 아이들에게 케냐 아이들처럼 웃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야!” (사진은 나이로비에 있는 아프리카 UN 사무국을 방문한 키베라 초등학생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다)
 
현재 큰 애는 컴퓨터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 게임을 좋아했고, 버려진 컴퓨터를 분해하고 조립하더니 컴퓨터의 구조나 작동 원리를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초등학생부터 일반인까지 컴퓨터 학습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고 보람도 느끼고 있다. 
 
둘째는 어렸을 때부터 아토피가 심하여 무척 힘든 시기를 보냈다. 지금은 마술같이 완치되어 감사함을 느낀다. 수학을 전공한 아이는 교사가 되기 위해 교직을 이수하였다. 졸업 후 1년 정도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는데 그때 아이들이 좋아 꼭 수학교사가 되겠다는 동기를 부여받았다고 하였다. 
 
작년 1년 동안 독서실과 노량진에 있는 학원에 다니면서 준비했는데 1차서 탈락한 것이다. 둘째가 너무 힘들어해서 합격하든지 떨어지든지 합격 발표 이후 가족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지난해 말 KTX를 타고 간 곳이 강릉! 안목 해변의 카페에서 우리는 충분한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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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