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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죽음은 식탁 위 가족 대화에서 시작된다

웰다잉 실천하려면
“고인은 가족에 둘러싸인 채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서구사회 주요 인사들의 부고는 이렇게 한결같다. TV나 영화, 연극도 서민들의 모습을 비슷하게 그려낸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시청한 프랑스 방송의 코미디는 말기환자의 고통 없는 죽음을 일상의 대화로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갔다. 생사를 맞이하는 그들의 생활방식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형 종합병원의 중환자실 풍경은 이와 사뭇 다르다. 어느 중환자실 수간호사가 심포지엄에서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작가나 연출자들은 말기환자들이 벌이고 있는 사투를 매우 낭만적으로 표현한다. 마침내는 그들이 평안하게 눈을 감는 장면을 연출한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맞고 있는 죽음의 현실은 아직도 거칠고 고통스럽다. 말기환자는 여전히 신음하거나 의식을 잃은 상태이며 가족은 정신적 갈등의 터널에 갇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우리의 이런 아픔을 어루만지며 또 다른 시대의 사람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거라고 해석한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존엄은 추상적이다. 머릿속에만 넣어두면 잡히지 않는 무지개 같은 것이고, 가슴에 담고 행동에 옮기면 바로 우리 앞의 현실로 나타난다.
 
내가 어느 공공도서관에서 웰다잉 강의를 할 때 16세 소녀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저를 오랫동안 보살펴 주신 할머니가 연세가 많으셔서 마지막을 편하게 모시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가족과 함께 이런 강의에 모시고 오고 싶어요.” 다른 모임에서도 앳된 학생들을 가끔 만난다. 나는 그들이 죽음 이야기를 찾고 있음을 알아챘다. 가족행사 등에서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삶의 종착점’이라는 화제에 가까이 가고 싶어 하는 것이리라.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의 길에서도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존엄을 더듬고 있다.
 
우리는 더 똑똑하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 죽음이라는 거북한 주제를 화제에 올리고 마음속 불안감을 털어놓으며 나름의 견해를 다져 가는 게 그 첫 단계다. 서구사회에서는 이런 대화를 위해 많은 사례를 건져 올릴 수 있는 문화가 축적돼 있다. 우리는 그런 걸 생각조차 하기 싫어한다. 지성인들조차 연명지상주의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웰다잉에 얽힌 생각의 씨앗을 뿌릴 텃밭이 부족해 황량하기 짝이 없다. 집안의 어른이 먼저 열심히 살다 평안하게 세상을 하직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가족과 대화를 나눌 여유를 가진다면, 그리고 이를 자신의 생사 문제로 옮겨갈 지혜가 있다면 그는 웰다잉을 위한 첫 과정을 통과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지난해 11월 웰다잉법에 의해 설치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찾아 정부 공인 서류에 서명한 뒤 확인증을 받았다. 우리 가족은 내 판단을 존중한다. 아내와 딸이 말기환자로 세상을 떠난 과거의 경험이 우리들 삶의 스승이 되었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이 의향서는 절대적으로 내 죽음의 존엄을 지켜줄 것이다. 가장 중요한 두 번째 과정을 넘어섰다. 나는 가족들과 이 의향서에 밝힌 뜻을 지키겠다는 ‘가족서약서’를 만들었다. 세 번째 과정도 밟았다. 죽음에 대한 솔직한 대화와 제도에 의한 절차에 따라 가족들은 생사 코드를 일치시켰고, 내 뜻은 그대로 관철될 것이다.
 
 
최철주 웰다잉 강사, 전 중앙일보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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