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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를 끊는 건 욕망을 줄이는 수련

지난해 국내에서 출간된 『퇴사하겠습니다』가 한국 사회에, 적어도 출판계에 미친 영향은 크다. 아사히 신문 기자였던 저자가 나이 쉰에 사표를 던지기까지의 사연을 담았는데, 퇴사를 통해 회사와 일, 나와의 관계를 재정립하자는 취지가 이목을 끌었다. 무엇보다 퇴사 그 자체가 하나의 콘텐트가 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책 이후 퇴사를 제목에 내세운 단행본은 물론이고 아예 전문 잡지까지 등장했으니 더 말할 게 없다.
 
신간은 그 후속편이면서도 영화로 치자면 메이킹 필름에 가깝다.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저자가 어떤 일을 겪고 행해 왔는가를 소상히 밝힌다. 그 핵심은 다름아닌 ‘전기 끊기’였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그는 ‘개인적 차원의 탈원전 계획’을 결심한다. 편리하고 쾌적한 내 삶이 원전 주변 주민들의 위험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자각에서다. 일단 집에 있는 가전들을 하나씩 처분하기 시작하는데, 강도를 높여 가는 체험 자체가 흥미진진하다. 과연 저자가 살림살이의 미니멀리즘을 넘어서 ‘제로이즘’으로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 거기에 과연 나라면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감정 이입까지 겹쳐지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나 TV 없이 사는 건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도 해볼 만한 초급 수준. 다음은 청소기와 전자레인지다. 의외로 빗자루와 걸레가 코드를 이리저리 뽑았다 빼야 하는 청소기보다 수월하다는 게 저자의 소감이다. 전자레인지 역시 냉동밥이나 데우는 용도라면 전날 미리 해동해서 쪄 먹으면 해결된다. 또 전기담요 대신 탕파(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넣고 열기로 몸을 데우는 기구)로 몸을 데우며 겨울을 난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냉장고까지 버리는 대목은 심히 극단적이다. 요술상자처럼 뭐든 저장해두던 먹거리들을 어쩔 것인가. 냉동밥을 쟁여둘 수도 없고 반찬은 죄 쉬어버릴테니 말이다. ‘에이, 없애는 건 말도 안돼’ 혼잣말을 하는 순간, 저자는 냉장고 코드도 예외없이 뽑아 버리는 클라이막스를 택한다.
 
하지만 궁하면 통하는 법. 저자는 에도 시대에 쓰던 나무 밥통을 들여 밥을 보존하고, 채소는 모두 말려 두면 오래 먹을 수 있다는 걸 터득한다. 된장과 말린 채소를 넣고 끓는 물만 부으면 된장국이 된다는 레시피는 과연 정말 그런지 한 번쯤 따라해 보고 싶을 정도로 혹하다.
 
전기 짠순이의 미션은 성공적이다. 33㎡(약 10평)짜리 집, 도시가스도 끊고 전등과 라디오·노트북· 휴대전화만 남긴 채 필요할 때만 휴대용 버너를 꺼내 쓰는 삶, 무엇보다 전기료는 매달 150엔(약 1490원)만 내면 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남루해보이기까지 하는 미니멀리스트로 달라지면서 삶은 오히려 더 풍요로워진다.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손발로 해결하며 스스로 세상에 서 있다는 성취감, 그리고 깜깜한 빛의 결핍 속에서 다른 감각들이 깨어나는 또다른 즐거움을 맛본다. 무엇보다 냉장고에 음식을 쟁여두지 않으며 ‘언젠가’ 풍족해질 미래에 미련을 두지 않게 된다. 물질로부터의 자유가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로, 결국엔 월급으로부터의 자유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쓸쓸한 생활(寂しい生活)’이다. 당연히 필요해 보이는 3종 기본 가전도, 넓은 집도, 심지어 직장도 없이 휑하다는 의미일 터다. 하지만 저자의 속내를 그대로 옮기자면 이런 부제를 붙여보고 싶다. ‘쓸쓸한 생활: 그렇지만 생각보다 재미있고 무엇보다 속 편한 인생’이라고 말이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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