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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가득 모듬전에 밥알동동 막걸리

그는 광고대행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연말연시가 가장 바쁘다. 광고주(기업)는 연휴 시작 전에 1차 제안 발표를, 연휴가 끝나는 다음날 결선 발표일을 잡기 일쑤다. ‘이번 설은 무사히 넘어가려나?’ 하던 차에 광고주에게 전화가 왔다. 젠장. 설 지나고 PT가 잡혔다.
 
그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해주는 전 생각이 간절한데…명절 내내 일해야 할 것 같아요. 일만 하기엔 억울하고 저녁때라도 잠시 가서 전에 막걸리 한 잔 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안타까운 마음에 영업하는 곳을 수소문하다 제대로 된 곳을 찾았다. 반포에 위치한 한식주점 ‘담은’. 고속터미널역 8-2번 출구로 나서 바로 앞 쇼핑타운 지하로 들어서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평범한 주점처럼 보이지만 속은 알차다. 어떻게 알고 왔나 싶을 정도로, 저녁때면 손님으로 꽉 찬다. 옥호인 ‘담은’은 각각 ‘맛있을 담(䐺)’과 ‘초대할 은(䭡)’에서 따왔다. 즉 ‘맛있는 초대’라는 뜻.
 
“반포는 제가 나고 자란 곳이에요. 이 동네에 오래 살았지만 친구들과 막걸리를 즐길만한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2012년 ‘담은’을 오픈했는데, 어느덧 6년차가 되었네요.” 정재훈(35) 대표는 대학 시절 호텔 경영을 전공하고,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스위스와 호주에서 공부했다. 서비스업에 자질이 있다는 걸 느끼고 이후 호텔 업계에서 경력을 쌓았다. 5성급 호텔에서 레스토랑의 식음 기획, 서비스를 담당하며 현장 경험을 체득했다. 이후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호텔을 나왔고, 집 근처 상가에 자리가 난 걸 우연히 보고 ‘여기다’ 싶어 자리를 잡았다.
 
그는 ‘셰프’인 동시에 ‘소믈리에’다. 외식업은 공부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해 틈틈이 짬을 내 교육 기관을 찾아갔다. 막걸리 학교, 한국가양주연구소, 궁중음식연구원 등등. 한식을 배워 직접 개발한 음식을 내놓고, 술을 배워 페어링 스킬을 더했다. 꾸준히 노력한 끝에 숭실대에서 키키자케시(사케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했고, 2016년 열린 제7회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경기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또한 서비스의 달인이기도 하다. “호텔에서 배운 노하우가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손님 제스처나 표정만 보면 뭘 원하는지 바로 알아요. 손님이 달라고 하면 그건 이미 서비스가 아니에요. 손님이 뭔가를 달라고 하기 전에 알아야 진짜 서비스죠.”
 
재미있는 해석인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단골이 많던데 그것도 노하우가 있는 건가요?” “좋은 손님을 더 잘해주면 좋은 사람들이 더 오게 되더라고요. 무조건 다시 가게를 재방문하게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요. 어설프게 잘하지 않고 제대로 정성을 쏟아서 저희 가게를 잊지 못하게 만들죠. 그런 분들이 2번, 3번 계속 찾아오고 단골이 되셨어요.”
 
음식은 전을 포함해 안주류가 다양하다.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전을 계속 개발하다 보니 육전부터 녹두전·야채전·김치전·동태전까지 전만 10종이 넘었다. 술은 탁주(막걸리)부터 약·청주, 증류주까지 40여 종 구비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각각의 전에는 어떤 술이 어울릴까? 전통주 소믈리에의 선택은 이랬다. 우선 냉이 달래전은 봄 내음이 가득했다. 매콤한 특제 간장 양념장에 콕 찍어 한입 베어 물고 ‘봉평 메밀 막걸리’를 쭉 들이켰다. 단맛이 과하지 않고 전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입안에 봄이 찾아온 듯하다.
 
다음은 박대전. 계란 옷을 입은 박대 3마리가 다소곳이 접시에 담겨 나온다. 살을 발라 먹어야 하는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하지만 건강한 술안주로 이만한 음식이 없다. 여기에는 충남 논산의 ‘왕주’가 함께했다. ‘궁중술’을 상징하는 왕주는 종묘대제에서 지금도 사용된다. 국화·구기자·솔잎 등 갖은 재료가 어우러져 은은한 향을 뽐낸다.
 
육전은 ‘담은’에서 꼭 맛보아야 할 메뉴로, 이곳에서는 ‘돈 담은 육전’이란 재미있는 이름으로 판매한다. 돼지고기 등심을 24시간 동안 특제 소스에 재워 숙성한 뒤 건져 물기를 제거하고 부쳐낸다. 고기가 두툼하지 않고 얇아 한 입씩 베어먹기 좋고, 전혀 기름지지 않다. 함께 나오는 해초 장아찌는 별미. 담백한 육전에 새콤달콤한 바다의 맛을 더해준다. 곁들인 술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8호 김택상 명인이 최근 새로 선보인 ‘삼해탁주’. 맑은 술에 가까운 탁주다. 단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신맛, 쓴맛이 적당히 느껴지는 드라이한 맛이다.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주당들에게 이미 입소문이 났다.
 
대망의 피날레는 모듬전. 접시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두부·호박·소시지·맛살·김치·동태·고기로 부친 전이 푸짐하게 담겨 나왔다. 비 오는 날이면 눈앞에 계속 어른거릴 비주얼이다. 여기에 밥알이 동동 떠있는 ‘정고집 동동주’를 곁들이니 전이 나인지, 내가 전인지 모를 정도로 술술 들어간다. 이밖에 대왕문어숙회·백순대·명태회야채무침·조개술찜·김치전골도 인기다.
 
참! 담은에서 막걸리를 테이크아웃할 경우 40% 할인 가격에 살 수 있으니 나홀로 명절을 보내야 할 분들은 참고하셔도 좋겠다. 부디 맛있는 전과 전통주와 함께 푸짐한 명절 보내시길.
 
 
이지민 : ‘대동여주도(酒)’와 ‘언니의 술 냉장고 가이드’ 콘텐트 제작자이자 F&B 전문 홍보회사인 PR5번가를 운영하며 우리 전통주를 알리고 있다. 술과 음식, 사람을 좋아하는 음주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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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