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빵에 진심을 담다

대전은 일본 통치 시절 철도역 때문에 생긴 도시다. 이후 경부선과 교차하는 철도 노선으로 교통 요지가 됐다. 대전을 거쳐가 보지 않은 대한민국 사람이 있을까. 나이 지긋한 세대라면 “잘 있거라 나는 간다~”로 시작하는 ‘대전 블루스’를 무심코 흥얼거렸을 게다. 요즘엔 많은 회사들이 이른 새벽 대전역에서 전국회의를 한다. KTX가 닿는 지역이라면 어디서나 1시간 남짓이면 모일 수 있는 덕분이다. 그렇게 전국에서 모인 이들이 긴 줄을 서가며 사들고 가는 대전의 명물이 있다. 바로 성심당의 ‘튀김소보로’ 빵이다.
 
대전에서 이 빵은 ‘튀소’란 보통명사로 통한다. 맛은 독특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빵의 으뜸이 단팥빵과 소보로 빵 아니던가. 빵 덕후들이 자신있게 꼽는 대구의 삼송빵집과 군산 이성당에서도 단팥빵과 소보로 빵은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 기름에 튀긴 도너츠의 식감을 더했다고 생각해보라. 하나라도 마다하기 어려운 맛을 동시에 즐기는 흐뭇함이 괜찮다.
 
소문으로만 듣던 ‘튀소’를 먹어봤다. 한 입 베어 무니 “으흠~”하는 감탄부터 나온다. 기름에 튀겨진 소보로의 돌기가 쿠키마냥 바삭거리고 부드러운 빵의 조직감과 함께 씹히는 팥의 단맛을 거부할 도리가 없다. 실천하기 어렵다는 적당한 상태의 조화가 빵 속에서 이뤄진 듯했다.  
 
적당하게 씹히는 식감, 단팥빵의 맛있는 변형
옛 기억의 그리움으로 가끔 단팥빵을 찾는다. 빵이 다 똑같지 않다. 상태는 씹어보면 안다. 찰기와 부드러움이 다투지 않아야 좋다. 여기에 곁가지로 붙은 씹는 감촉과 기름기가 단팥빵의 맛을 더한 것이 ‘튀소’다. 대개 여러 개를 섞으면 서로의 장점보단 단점이 도드라지게 마련이다. 이상하게도 튀김소보로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 같은 친숙함으로 다가왔다.
 
우리 입맛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빵이 나온다는 건 좋은 일이다. 일본인들은 포르투갈에서 받아들인 빵의 제법을 자기화 시켜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정작 유럽에선 이런 빵을 보기가 쉽지 않다. 어디서 왔는지 얽매일 필요가 있을까. 바탕에 현재의 관심을 더해 시대에 안착시키는 반복의 시도만이 중요할 뿐이다.
 
일본인은 서구에서 빵을 받아들였지만 주식은 아니었다. 빵은 처음부터 기호식품이었던 셈이다. 빵에 찹쌀떡에 들어가던 단팥을 넣게 되는 건 자연스럽다. 일본의 팥소는 앙금만 쓴다. 그들의 단팥빵을 우리가 받아들였다. 비슷하지만 변화가 생긴다. 앙금으로 굳힌 팥소 대신 통팥을 그대로 쓰는 투박함이 내용이다. 열악한 여건과 싼 것을 선호하는 대중이 선택한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출발엔 이유가 있다. 하지만 반복으로 익숙해진 입맛은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나간다. 빵에 들어간 팥은 껍질이 적당하게 씹히는 것이라야 한다는 믿음 같은 것 말이다.
 
난 성심당의 튀김소보로는 속성적으로 단팥빵의 변형으로 본다. 껍질이 씹히는 팥소에 익숙한 우리 입맛에 소보로의 형태를 입혀 튀김의 색깔로 마감시킨 단팥빵이다. 정작 만드는 이의 설명은 엉뚱하다. 초콜릿 입힌 빵을 생각했는데 만들자마자 팔려나가 더 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는 것. 결국 튀김소보로는 미완성의 상태로 완결 지어진 새로운 빵인 셈이다.
 
튀김소보로는 우연의 산물이다. 과거 제빵 기술자들의 심술은 유명했다.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구성원 전체를 빼 다른 업소로 옮기는 일이 많았다. 갑자기 닥친 공백에 당황한 성심당 대표 임영진은 평소의 생각을 빵으로 만들었다. 낡은 습성의 관성 대신 불안한 자유의 시도가 오히려 새로움으로 바뀐 역설이다.
 
경험의 반복만으로 얻을 수 없는 창의성은 우연한 계기로 빛을 보았다. 사람들은 못 보던 빵에 열광했고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 튀김소보로는 약 40년 전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지는 성심당의 간판 상품이다. 그 동안 판매된 양은 어림잡아 5000만 개가 넘는다. 작은 빵집의 규모로 이 어마어마한 실적을 올렸다는 건 놀랍다.  
 
1사람당 3개씩만 … 밤에 굽는 빵은 배고픈 이웃 위한 것
대전의 원도심이라 할 대종로 일대는 예전에 비해 쇠락했다. 둔산 지구로 옮아간 핵심 도시기반과 상권 때문이다. 손질하지 않은 옛 건물이 널려있고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적다. 한 때의 영화를 기억하는 세대의 탄식과 우려만 넘친다. 그런 원도심의 가운데에, 붉은 벽돌로 리노베이션 되었을 뿐인 성심당이 옛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
 
바로 이곳에서 놀라운 일이 종종 벌어진다.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는 이들의 행렬 때문이다. 네 시간 마다 새로 튀겨낸다는 ‘튀김소보로’가 나오는 시간이 되면 건물 주변은 북새통을 이룬다. 끝없이 몰려드는 인파가 원하는 것은 바로 ‘튀소’다. 채 제 차례가 오지 않는 이들을 위한 배려로 한 사람당 세 개만 팔기도 한다. 내가 찾았던 시간은 평일 한낮인데도 매장을 꽉 메운 사람들로 버글거렸다. 성심당 주변의 모습만 보면 원도심의 위기를 말하는 동네 주민들의 이야기가 머쓱해진다.
 
성심당 대표에게 물어봤다. 그토록 많이 팔리는 빵이라면 규모를 늘려 많이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대답은 단호했다. “공장 규모로 빵을 만들면 맛을 지킬 수 없어요.”
 
성심당은 매장 안에서 직접 구운 빵만 내놓았다. 가게가 문 닫기 직전 인 저녁 9시까지 계속 새로 빵을 굽는 걸 보고 놀랐다. 남을 지도 모르는 빵을 왜 굽느냐고 또 물어봤다. 배고픈 이웃들에게 나눠줄 것이라 괜찮다고 했다. 팔리는 만큼 무상으로 나누어주는 빵의 양이 엄청나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다.
 
성심당 주변의 몇 건물은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과 한과 취급점 ‘옛 맛 솜씨’로 채워진다. 성심당 거리라고 해도 좋을 골목은 젊은이들의 활기로 가득하다. 사람을 만나 밥 먹고 이야기하며 즐기는 멋진 공간이 대전에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의 인테리어와 널찍한 간격으로 놓여진 테이블에서 읽혀지는 배려가 따뜻하다. 건물 기둥에 미슐랭 가이드 ‘그린’명판이 눈길을 끈다. 유명 식당을 자리매김하는 레드와 달리 그린은 꼭 가보아야 할 명소를 뜻한다.
 
성심당 창업주는 한국전쟁으로 함경도 함주에서 월남한 실향민이다. 흥남부두를 떠난 미군 철수선엔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과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함께 탔다. 피난 동기라 부를 수 있는 이들 세대의 생존기는 우리 현대 역사의 공통된 내용을 담고 있다.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가던 열차가 고장 나 연착된 대전에 눌러앉았다. 먹고 살기 위해 역 앞에서 찐빵을 쪄 팔기 시작한 것이 성심당의 출발이다.
 
카톨릭 신자였던 창업주는 평생 나눔을 실천했다. 신의 가호로 살게 된 고마움을 모두의 양식으로 돌려주는 의식이라 할 만했다. 고인의 뜻은 가업으로 이어져 행동의 실천이 끊이지 않게 됐다. 빵집의 이름을 성인의 마음이라 할 ‘성심당’으로 지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자꾸 늘이는 회사. 직원이 행복해야 빵도 맛있다는 회사. 유명세를 이용한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이지 않는 회사. 투명한 경영으로 세금을 잘 내는 회사. 대전의 빵집으로 남아야 한다는 고집을 버리지 않은 회사….
 
성심당을 직접 찾아가 보기 전엔 괜찮은 빵집 정도로 생각했다.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빵이란 인간의 양식이었다. 먹는 일보다 더 성스러운 행동은 없다. 내 입 만큼 남의 입을 채워주는 나눔의 실천이 더 큰 상징으로 불어날 수 있음을 알았다.
 
 
윤광준 :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